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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2주차 후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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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곰곰이 작성일13-05-17 15:18 조회4,20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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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학 2학기 2주차>
 

<소문옥기진장론> p140
풍은 모든 병의 우두머리가 됩니다.(백병지장) 지금 풍한의 사기가 사람에게 침입함에, 사람의 잔털을 모두 곧추서게 하고 피부의 주리가 닫혀서 열이 나게 되는데 땀을 내서 사기를 발설시킬 수 있습니다. 혹 비증이나 불인(풍중경락마비) 및 종통(풍역관절)이 되기도 하는데 찜질이나, , 침으로 사기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소문맥요정미론> p194
병이 이루어지고 변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풍이 이루어지면 오한발열이 되고, (표열증)이 이루어지면 소중(다기다열)이 되고, (거슬러오르다, 졸도)이 이루어지면 전질(간질)이 되고 풍이 오래되면 손설(설사)한다.
 

<소문학론>
학질(말라리아, 열성전염병)이 처음 생길 때는 먼저 호모에서부터 일어나고(풍사습표) 기지개(기를 끌어올림)와 하품(기를 내림)을 하다가 추위로 떨면서 턱을 딱딱 부딪치고 요척이 모두 아프며, 한기가 없어지면 내외가 모두 열이 나고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며 갈증으로 찬 물을 마시려 합니다.
 

<소문거통론>
한기가 경맥의 바깥에 침입하면(위기를 치니까) 맥이 한해지고, 맥이 한해지면 오그라들고(수인구급) 오그라들면 맥이 구부러져 급하게 되고, 구부러져 급하게 되면 밖으로 소락을 당깁니다. 그러므로 갑작스럽게 아프게 되나 열기를 얻으면 통증이 바로 그칩니다  
이하 줄임 ^^:;
 
우리가 다 외우고 시험봤던 내용들이 황제내경에 다 들어있네욤^^
 

<암송 2학기 2주차 -소시호탕 by 본초팀>
마황탕, 계지탕은 감기 초기에 쓰는 것으로 서로 차이가 있다면 땀이 나지 않을 때는 마황탕, 땀이 날 때는 계지탕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기가 좀 더 심화(반표반리, 사기가 중간 쯤에 들어 와 있는 것)되었을 때에는 뭘 쓰면 좋을까요? 소시호탕을 쓴다고 합니다. 소시호탕의 주 특징은 한기와 열기가 오락가락할 때, 흉협고만(흉협부가 그득하여 편안하지 않음), 간기울체로 인한 우울, 초조, 불안 등의 증상에 씁니다. 땀을 내지 말고, 토하지 말고, 설사하지 않는 삼금탕(三禁湯)이라 합니다. ? 몸이 허한 허증이니까
 

시호, 황금- 청열작용, 한열왕래에 해열작용
인삼- 식욕증진, 소화 흡수 기능 강화
반하- 조습화담, 강역지구, 진해거담
감초- 모든 약을 조화 시킴
생강- 반하의 독성 중화, 소화액 분비 촉진
대추- 모든 약 조화, 자윤 작용 (속이 더부룩할 때는 안 좋다.)
 

3학년분들이 들어오는 암송 시간이 설명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어요~ 그러나 3학년들처럼 되려면 엄청 공부해야할 것 같은 불편한 진실^^
 

<2주차 글쓰기 수업-성장을 멈춰라 (Tools for conviviality, 공생을 위한 도구)>
감이당의 공부를 소비하십니까? 생산하십니까? 하는 질문에 저는 허~쩝쩝 참 낭비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탁 선생님의 강의가 끌렸던 것은 제가 물음표는 가지고 있되 대면을 하지 않았던 학교와 전문가의 근본적 독점의 내용이 저의 묵힌 질문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과거 환경단체를 그만 둔 이유 중에 하나가 전문가 그룹에 대한 실망감이었거든요. 환경 문제에 있어서 환경영향평가등의 사전 조사는 전문가들의 말 한마디가 자연의 생명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개발이라는 거대한 화차를 견디지 못하고 환경단체를 그만 둔 이후로는 제 삶에 대한 가치를 묻지 않았는데 존엄성이라는 말이 어느 학인의 에세이에서 머릿속에 들어오더니 이번 강의에서 또다시 떠오르네요. 요약을 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50%의 녹취풀기가 되었습니다.
 

성장을 멈춰라 -이반 일리히
1973년에 발행된 책인데, 40년 전 책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고 있다.
이반 일리히는 1926년생이다. 1992년도에 암 진단을 받았는데 일체 암치료를 거부하고 10년후에 죽었다. 그는 모든 현대 의료 시술을 반대한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오해 없기를. 그의 생각은 현대 의학이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아주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을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고통을 완화하거나 고통과 더불어 사는 다양한 지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은 통증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려하고(통증클리닉), 세균을 박멸하려고 한다. 진단도구가 발전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암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립선암과 갑상선암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암들은 치명적이지 않고 모르고 살아도 알고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주체적인 사람도 일단 수술을 하게 되면 평생 환자로 살아가야 하는데, 예를 들면 갑상선암 환자의 경우는 평생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평생을 환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반은 암 때문에 죽었으나 암환자로 살기를 거부했기에 일체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러고도 10년을 더 살았다.
 

로마에서 촉망 받는 신부였던 이반의 삶이 달라진 것은 푸에토리코 대학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부총장이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투자하는 게 의무교육(교육입국)인데 문맹을 없애고 생산력 있는 인간을 양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무교육제도가 빈곤의 문제를 해결했는가? 배움이 제도가 되는 것(학교 제도)이 다른 종류의 박탈과 빈곤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나라가 전체 인구를 원하는 만큼 교육 시킬 수 있을까?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교육을 가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학교를 갈 수 없는 나라들은 근대화된 빈곤과 박탈감에 빠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책이 Deschooling Society 이고 이 책으로 그는 유명하게 되었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교회는 영적인 구원을 받으려고 가는 곳이다. 교회는 영혼의 구원을 위한 영적인 Tool, 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제도화 되면서(의례포함) 교회에 가면 영적인 구원을 받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에 이 Tool이 인간을 지배하는 가치의 제도화가 되었다.
과거 장례 문화를 보면, 죽음에 대한 태도가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패턴이 똑같다. 사자를 떠나보내는 도구를 상품화(by 국가 또는 산업이 독점한 상품)에 의존하고 있다.
 

1968년 쿠바사태 이후 케네디는 <진보를 위한 동맹>을 제창하는데 근대 문명은 진보, 성장, 발전, 산업 사회로 표현된다. 이반 일리히가 1950년대부터를 두 번째 분수령이라고 하는데 왜인지는 모르나 추측은 할 수 있다. 1,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냉전시대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군비경쟁을 하는 것이었다. 산업 혁명 이후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폐해, 노동자의 비참한 삶 이런 것들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사회주의 국가가 더 산업생산력에 기초한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로는 1949년 트루먼 선언으로 나라들을 개발국과 저개발국(developed country/ underdeveloped country)으로 나눴다는 것이다. 나라들을 볼 때 그 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있는데 저개발국 아니면 개발국이라는 표상만 남았다. 저개발국의 방향은 개발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60년대 한국의 목표는 미국 중산층이 갖는 life style이 목표였다. 개도국이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진보라고 생각하였는데 당시 쿠바 사태를 보고 못 사는 나라를 원조해 주지 않으면 쿠바처럼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버린다며 케네디의 <진보룰 위한 동맹>에 바티칸이 화답해서 만든 게 평화 사절단이었다. 카톨릭 신자들이 헌신과 봉사로 교육 서비스, 의료서비스를 한 것이었다. 이반 일리히는 공개적으로 바티칸을 비난했는데 그것은 모든 나라의 고유한 장례문화를 파괴하고 다 장례식장을 짓자는 것으로 이반 일리히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이 일로 이반 일리히는 바티칸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즐겁게 살다 갔는데 자기가 가는 곳 어디나 기도가 필요하면 교회를 만들고, 교육이 필요하면 학교를 만드는 등 Tools for Conviviality를 만들며 살았다. 1부 끝.
 

질문이 있었어요. 당신은 감이당을 소비하는가? 생산하는가?
덜컥~하는 질문이었구요, 답은 각자의 가슴속에~
 

존엄하게 산다는 것, 나답게 산다는 것, 나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한다는 게 뭘까? 이런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치가 제도화되었다는 것!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도가 만들어낸 서비스를 통과하는 것, 병원에서 태어나 몸무게가 몇 킬로고....단계, 단계 착착 통과하는 것을 제도화’, ‘조작적 도구’(Multiplated tools)라고 하는데, 진보, 성장, 산업 사회는 이 Multiplated tools가 지배하는 사회이고 균형이 깨진 상황입니다.(쏠려있다. ? 어디서 많이 듣던 태과?) 이러한 사회의 문제점은 먼저 생태계의 파괴를 들 수 있고 둘째는 근본적인 독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근본적 독점의 예를 보면, 우리는 이동을 할 때 차가 아니면 안되는 걸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죠. 예전에는 길에 자전거, 자동차가 공존을 했어요. 모든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인간을 서비스에 의존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학교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란 순수한 열망을 학교가 독점해 버리면 사람들은 배움을 수업을 소비한다와 동일하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죠. 근본적 독점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겁니다. 몸의 능력이 바로 Tools for conviviality(공생을 위한 도구) 인데 내가 생존을 위해서 할 줄 아는 게 얼마나 있을까요?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지금은 매뉴얼을 따르죠. 매뉴얼, 표준, 커리큘럼은 반드시 전문가 주의를 가져오는데 전문가 서비스가 이 되고 우리는 의 관계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죠.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삶을 영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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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님의 댓글

곰곰이 작성일

어~ 더 긴데 짤리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