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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2주차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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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바디민 작성일13-07-31 22:30 조회3,5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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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학수업]

천궁 - 파혈 활혈 주단계는 천궁은 모든 기를 풀어준다고 했다.

단삼 - 사물탕 먹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당귀 - 혈의 명약 소음인에게 좋다.

복령 - 총명탕에 복신이 들어가 있는데 복신과 복령이 비슷하다.

맥문동 - 가래가 잘 안나올 때

목단피 - 혈액순환

육계 - 화혈, 신장 동맥의 확장

계지 - 화기


계지가용골모려탕 [계지, 작약, 생강, 대추, 감초, 용골, 모려]

실정한 남자는 아랫배가 당기고, 음경의 끝이 차고, 어지럽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맥이 극도로 허약하고 느리며, 곡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설사하고 빈혈이 있으며 정력이 약하다. 맥이 모두 허풍선이 같으면서 약간 긴장된 사람은 남자는 실정되고 여자는 몽교를 하게 된다. 반드시 계지가용골모려탕을 쓴다. -금궤요략-

신경증, 불면증 소아야제증,소아야뇨증, 안면피로, 탈모증, 우울증, 심동계, 건망증, 다몽에 좋다.


[글쓰기수업]


공생자 행성


1. 마굴리스의 공생 진화에서 독특한 점은 ‘아름다운 공존’이 아니라는 점. 공생의 기원은 소화불량 상태. 장기적인 동거는 공생 발생을 낳고, 이 공생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런 동거가 창조적 종으로 탄생하기 까지, 어쩌면 길고 길었을 소화불량 상태를 겪었어야 했다. 마굴리스는 말한다. 타자란 언제나 우리에게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그런 존재며, 타자와의 공전은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 타자와의 마주침만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변화시킨다. 소화불량이란, 두 개체들 사이에 어떤 공통의 영역이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컨대, 공생 가능한 두 생명체가 선재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소화불량 상태를 그냥 견디기만 한다고 해서, 새로운 몸, 새로운 기관,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소화불량은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공생 진화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화불량이 공생 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생명체들 간의 끊임없는 실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변모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계속되는 실험이 공생진화를 만들어낸다. 공생진화의 창조성이란, 이 생명체들이 자기 존재를 변화시키면서, 공생의 새로운 양식을 창안해내는 것의 다름 아니다. (cf. 탐욕과 공생진화) <수업자료>


2. 베르그손은 생명을 “자신이 마주한 장애물을 삶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라고. 공생진화란 소화불량의 타자라는 장애를 삶의 수단으로 바꾸는, 요컨대 자기존재 변신을 만들면서 새로운 개체로 태어나는 일이다. (cf. 물질과 기억) <수업자료>


공생자 행성에서 말하는 공생의 기원이 소화불량 상태라고 합니다. 그리고 타자와의 공존은 절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에어리언과 같이 사는 정도의 불편한 관계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전 초등학교 첫 등교가 생각났습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설사를 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저에겐 낯선 학교라는 존재와 만나는 순간이 바로 소화불량이었습니다. 그 후 12년을 학교에 다녔습니다. 처음엔 설사를 할 정도로 긴장하고 학교가 불편했지만 나중엔 집처럼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편한 곳이 되기까지 전 계속 설사를 했지만요. 익숙해진다는게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친구를 사귀게 되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도 하지만 아마도 친구와 노는 재미에 학교에 다녔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은 말이죠.


자신이 마주한 장애물을 삶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을 학교와 연결해보면 학교에 보통 공부하러 가지만 사실 공부를 싫어하고 다른데 관심이 많은 학생들도 학교에 갑니다. 전 학교는 당연히 공부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안에는 공부만 하는 학생만 있는 게 아니라 찐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고 연애에 소질이 있어 이성을 사귀러 가는 친구도 있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을 웃기게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이 단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각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 장애물을 삶의 수단으로 바꾼다는 건 그 장애물이 원하는 것을 꼭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맞는 것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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