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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3학기 2주차 수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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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례 작성일13-08-02 16:42 조회4,7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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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주차 수업 후기를 담당했는데 늦게 올리는 것을 알고 노바디민님이 미리 수업후기를 올려 주셨네요. 저는 수업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데 주력해서 쓰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장황하게 길게 썼네요. 읽어보시고 수업과 상이한 내용이 있거나 의문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얘기해 주세요. 더운데 공부하시느라 수고가 많은 감이당 2학년 모두 화이팅입니다!
  
7 23일 화요일 (의역학 수업) -----도담 선생님
본초문답 7
황기은 모두 북방 水中陽氣를 받고 자란 것이다. 북방(만리장성 이북)에서 나는 것들이 기운을 더 잘 끌어 올린다. 황기는 뿌리가 수 까지 자라는데,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서 땅속 황천의 를 끌어올려 싹과 잎을 길러 낸다. 는 곧 이니, 수를 끌어 올리는 것은 기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뿌리 속이 성글고 통로가 큰 황기는 水氣를 많이 끌어당기기에, 가 강성해서 補氣를 잘하는 것이다. 여기서 황천이란 땅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는 개념적 의미이며 망자가 쉬는 곳이다. 천지의 陽氣는 모두 땅속 황천의 수중에서 지표면으로 나온다.
반면, 인체의 陽氣는 신과 방광, 기해 속에서 나와서, 삼초 유막(삼초를 나누는 막으로 대개 횡경막을 말함)을 돌아 폐로 올라와 호흡이 되고, 皮毛에 분포되어 위기가 되는데, 이들 역시 모두 水中地氣일 뿐이다.
 
황기의 겉껍질은 紫黑色으로 의 중간색인데, 황기가 水中의 양기를 받았기에 이러한 수와 화의 중간색을 띠는 것이다. 三焦相火는 수중의 양으로 소양이라고 한다. 황기는 속의 삼초 같은 통로를 통해 水泉의 기를 빨아 올려서 싹과 잎을 틔우는데, 이것은 水中을 받아 틔우는 것이다. 따라서 황기는 수와 화의 중간색을 띠고 삼초에 좋은 약이 되는 것이니, 그 기의 유사함이 이와 같다.
 
황기는 補氣, 補裨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물길을 내고 땀구멍을 막아주어 氣虛自汗에 좋다. 의 역할로 위궤양, 피부상처, 담음에 좋다.
 
본초문답 8
육계는 남방에서 자라서 地二를 받았기에 血分에 들어가는 것이다.
중경의 腎氣丸은 육미지황환과 부자, 육계가 들어가는 약으로서 여기서 부자는 化氣작용을 하며 육계는 혈맥을 통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육미지황환은 숙지황, 산약, 산수유로 三寶를 삼고, 목단피, 복령, 택사로 三使를 삼는다. 동의보감의 신기환과는 다르다.
인체의 腎中一陽에서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콧구명에서 빨아들인 天陽心系를 거치면서 心火으로 끌어내린 후에, 이들이 腎水를 데워 氣化시키면 가 올라와 입과 코로 나오는 것이다. 중경의 신기환은 숙지황, 산약, 목단피, 산수유를 많이 써서 를 만들고, 복령, 택사로 利水시킨 다음, 육계로 心火를 끌어내려 腎水와 만나게 하고, 부자로 腎陽을 자극하여 기화시킨 것이다. 육계가 化氣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원리 때문이다. , 중경이 육계를 오묘하게 잘 쓴 것이지, 육계 자체가 화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육계 하나만 쓰면 약성이 대부분 혈분으로 가 버린다. 육계는 계피로서 化血하는 작용이 있고 신장과 방광으로 들어가고, 계지는 化氣하는 작용이 있어 기운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心肝의 혈분으로 들어간다.
 
본초문답 9
天水를 받아 생긴 것은 氣分에 들어가고, 地火를 받아 생긴 것은 血分에 들어간다. 한 것은 氣分에 들어가고 한 것은 血分에 들어간다. 마늘은 하기에 氣分에 들어가서 淸竅로 가는데, 위로는 눈이 어두워지고 아래로는 소변에 냄새가 난다. 기운이 센 것을 먹으면 에서 문제가 생긴다. 고추는 하기에 血分에 들어가서 濁竅로 가는데, 위로는 입과 혀가 헐고 아래로는 대변 볼 때 쓰리고 아프다. 이 두 약재를 보면 기분에 들어가는 것과 혈분에 들어가는 것의 차이를 알 수 있다.
氣分에 들어가는 약으로 인삼과 황기가 가장 대표적인 약재이다. 이 외에 택사, 의이인이 있는데 모두 利水 작용이 있다. 택사가 의이인보다 더 강한 이뇨작용 하지만 의이인과 달리 살을 빼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
의이인은 열매라서 줄기 끝에 맺히기에 기화하면서 肺陽을 이끌고 아래로 내려가고, 택사는 땅속에 자라는 덩이줄기이기에 化氣하면서 腎陰을 이끌고 위로 올라간다.
의이인은 火氣를 죽이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염증치료도 가능하다. 따라서, 여드름, 사마귀를 치료하는데 좋다. 뚱뚱한 사람이 살 뺄 때, 농이 차 있거나 부종이 있을 때 의이인을 생으로 먹으면 된다. 다만, 체격이 마른 사람은 자제해서 먹어야 한다.  
 
백합潤肺 기능이 있어 폐에 열이 있어 얼굴이 빨개 지거나 말을 많이 해서 목에 피가 나는 경우(백합+해모) 좋은 약이다.
 
종유성肺氣를 눌러 내리는 작용이 있다.
 
맥문동 천문동은 백합과이면서 백합보다 많이 쓴다. 특히, 맥문동은 潤肺 기능이 있어, 가래가 잘 안 나올 때 쓰면 좋다. 
 
용골은 포유동물의 뼈를 주로 쓴다. 嗔心安神 효과가 있다. 계지탕+용골+모려로 쓰며 신경성 탈모에 좋다.
 
복령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곰팡이류이다. 평이한 약으로 , 에 모두 쓸 수 있다. 소나무의 精汁이 뿌리로 흘러 내려가서 생긴 것인데, 소나무의 을 얻어서 木性이 있기에 疏土할 수 있고, 흙이 뭉친 것 같으면서 하고 하기에 주로 渗利시켜 行水할 수 있으며, 서로 붙어 있지 않는데도 그 기가 스스로 위로 올라가 싹과 상응하기에 化氣해서 위로 올라가 益氣할 수 있다.
그 효과로는 이뇨작용, 健脾和胃(배가 어디가 출렁거리면 복령을 쓴다), 寧心安神, 小便不利, 水腫脹滿, 痰飮咳逆(담음으로 인한 기침 가래), 설사, 심계 불안, 불면, 건망 치료가 있다.
 
혈분에 들어가는 약재들은 모두 地火를 얻어 생기는데, 당귀와 천궁 같은 것이 있다. 는혈에 명약으로 몸이 냉하면서 어혈성이 있는 여성에게 좋다. 대표적인 약이 사물탕, 당귀사역탕이 있다. 辛苦하고 溫熱하기에 바로 心火의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름기가 많아서 즙을 만들어 내고 辛溫해서 心火의 작용을 돕기 때문에, 견줄 만한 약재가 없을 정도로 生血하는 효과가 강력하다. 월경을 조절하고(월경량, 월경주기, 월경통), 생리통을 멎게 한다. 당귀는 토종 보다는 중국산 일본산이 약효가 더 뛰어나다.
 
천궁가 훨씬 더 辛苦해서 木化이 더욱 강렬하고 질 또한 부드럽거나 기름기가 적다. 모든 울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이 안되고 손발이 저린 소음인에게 좋다.
 
홍화는 차가운 성질이 있어 많이 쓰면 안 된다. 몸에 열이 있고 허리도 아프고, 어혈이 있고, 몸집이 있는 중년 여성에게 좋다. 산후에 오로가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쓰기도 한다. 破血의 기능이 세다.
 
목단피는 모란의 뿌리로서 중하초의 혈을 泄血한다.
 
도인은 씨앗으로 生氣 작용이 있다.
 
7 27일 토요일 /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근영 선생님
<서두>
Ø        우리는 개체를 어떤 범주에 두고 사고하는 것을 배워왔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판명한 것이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애매한 것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판명하게 파악하고자 한다. 과학이 맞는 이론인가는 내가 그 과학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느냐를 살피면 된다.
Ø        서양철학에서 영혼이라 말하면 이질적인 것들을 묶어주는 끈 같은 물질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의 체계로 묶여질 때 우리는 생명이라고 말한다. , 이질적인 것은 우리 밖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장기, 눈과 코, 입 등등 신체의 일부도 해당된다.
Ø        과학은 하나의 관점이다. 프레임은 자기파악을 위해서 필요하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그 프레임을 놓지 말고, 그것을 뛰어 넘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프레임이 볼 수 있어야 한다.
Ø        마굴리스의왜 공생할까?’에 대한 답은 혹독한 시련, 먹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될 수 있으면 혼자 살수록 좋다는 개인중심적이고 개체중심적인 관점이 전제되어 있다. 우리가 이 질문을 따라가 답하기에 앞서왜 존재는 따로 살아야 하지?’라고 전제를 달리 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답하기 전에 질문 자체를 상쇄시켜야 한다. 질문을 따라가 답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적 공부이다.
Ø        마굴리스의 견해는 위대하지만 우리 한데 남겨진 숙제가 있다. 다음 책(그 아름다운 공존)은 마굴리스의 견해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는 두 관점에 대한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 질문을 던져보아라
Ø        사람들은 가이아는 따로 있다는 생각한다. 하지만 가이아는 지금 내가 살고 잇는 삶 자체이다. 19세기 환경보호운동은 부르주아 계급에서 시작되었는데 엄청난 청교도주의에 가까웠다. 심지어 땅을 파는 것까지 가이아가 강간 당했다고 표현했다. 사실 현실의 대부분은 사람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런 운동을 할 겨를 없었다. 환경 운동의 담론의 지점을 먼저 생각해 봐라. 환경운동에 대한 담론을 바라볼 때 심정적은 것은 느끼지만 실제로 내 삶과 연결되는지 봐야 한다. 내가 자연에 대해 착취하는 것은 내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과 같다 우리 삶의 지표종은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보면 된다. 내가 내 삶의 태도를 바꾸면 옆에 이웃의 태도도 바뀌면서 그러한 관점이 자연으로도 전이된다. 옆에 사람과 맺는 관계를 치열하게 고민 하는 것이 환경운동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대동여지도상에는 현재 없는 물줄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상의 물길은 비가 오면 생긴다. 예를 들어 강남은 이전에는 비가 생기면 물에 침수되는 곳이었다. 현재는 많은 하수도 시설에 고비용을 투자해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되었다. 하지만 예전에 그곳은 자연적으로 논이 존재하는 곳이지 사람이 사는 공간은 아니었다. 우리가 그것을 보호한다는 환경운동을 말하기 전에 우리 삶이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먼저 봐야 한다.
Ø        모든 문제는 중독에 있다. 운동률이 중독되면 주위의 있는 나머지는 못 본다. 암은 다른 세포와 운동률이 다르다. 진화에도 퇴행진화가 있다, 그러므로 암도 진화의 퇴행진화의 한 유형이다 이전의 단계로 돌아가는 것, 즉 죽음이다. 암과 같이 사는 방법은 지금까지 속도와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 암은 수술로 표적 하지 못한다, 암의 원인 중 하나는 혹독한 시련이다. 따라서 방사선 치료 후 세포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암세포로 변한다. , 치료의 혹독한 시련이 암을 더 가속화시킨다. 이는 면역계가 자기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암 치료는 더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향으로 하면 좋은 것 같다. 암이란 복사용지 마지막 장이 안 떨어지고 남아서 계속 자기 복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남아서 기억하기 때문이다. 결코 망각하지 못한다.
Ø        지적으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극의 정도를 따라 간다. 중독은 신체적인 무감각으로부터 온다. 삶이 질적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면 한쪽으로 쏠린 방향으로 중독된다. 우리의 이질적인 신체는 각각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 기질적인 차이를 배치(disposition)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앎으로서 그 배치를 성찰하고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Ø        과학은 가장 일반적인 앎을 애기한다. 진정한 과학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가장 고유명사다운 것을 발명해야 한다. , 보편적인 일반 명사를 만드는 게 아니다.
 
 
<본론>
공생, 그 불편한 진실에서 불편함이란 생물학계에서 불편한 지점과 공생 그 자체의 불편함을 염두 해 두고 하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종과 종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고 말한다. 종 사이의 윤리가 존재하고 서로 다른 종은 절대로 결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견해를 기독교가 계승한다. 반면, 다윈의 진화 생물학은 생명의 기원이 하나이다. 모든 종은 생명의 나무처럼 분화된다. 다윈이 생각하기에 종은 너무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다윈주의 혁명성은 시간에 따라서 종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가변성에 있다 이전의 종에 대한 관점은 불변에 있었다.
멘델은 종의 가변성을 말하는 다윈과는 다르게 종에는 고유한 불변의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인자를 유전자라고 칭한다. 멘델유전의 포인트는 부모에게 있는 것만 생기고 없는 것은 안 생긴다는 점이다. 그 이후 분자 생물학이 발전해서 염색체(염색되는 부분) 안의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하게 되고 핵 중심으로 유전을 해석하는 관점이 발전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중심이론이라고 하는데, DNA는 리보솜을 복제하고 리보솜은 세포의 생명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든다. 이것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으로 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진행되는 것도 발견되면서 점차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자크모노의 피드백 이론이다. , 세포질의 상태를 리보솜이 DNA에게 알려 주면 DNA는 안에 어떤 것이 켜질지 꺼질지 결정한다. 하지만 DNA 중앙체계는 변화지 않는다. 핵 중심의 유전학에는 어떤 변화에도 변화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우리는 그것을 실체라 부르는데 실체는 변할 수 없다. 그게 바로 DNA이다. 이는 신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핵 속에 갇혀 있는 신은 나약하다. 그 이후 메클린독의 점핑 유전자 이론이 나오면서 핵 속의 DNA가 날뛰기를 하면서 유전정보를 변화시킨다고 한다. 그 동안의 신이 불변한다는 관점을 바꾼 점에서 상당히 혁명적이다.
 
이상에서 주류 생물학계의 견해를 살펴 보았다면, 마굴리스의 비주류 견해를 살펴보자. 마굴리스는 세포질에 있는 세포 소기관들도 DNA처럼 자기 스스로의 법령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모계 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엽록체이다. 세포질 유전은 신라마르크주의라고 하는데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 유전을 이어받으면서도 약간 수정했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에 따르면 내가 열심히 운동해서 만들어진 체세포의 변화를 통해 획득한 형질은 아이에게도 유전된다고 주장한다. 라마르크는 유전에 있어서 시간 개념을 가지고 온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마굴리스가 주장하는 세포질 유전은획득된 것의 유전은 인정하나 그것은 생물의 형질이 아니다. 공생을 통해, 다른 생물 전체, 그들의 유전자 전체를 획득한다고 한다.
 
마굴리스의 생각으로는 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생을 전제로 한다고 믿는다. 종은 수시로 교배하지 못하지만 세균은 종이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합친다. 세균들이 서로 융합하여 식물과 동물의 조상들을 비롯한 더 큰 세포들을 만들기 전까지 종이란 없었다. 장기적인 공생이 처음으로 핵을 지닌 복잡한 세포를 진화시켰고, 거기에 곰팡이, 식물, 동물 같은 생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주류 생물학계는 세균이 신성한 종을 창조한다는 담론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세균들은 성과 유전자에 집착하지 않지만 인간은 경직되어 변이가 잘 안 된다. 그 예로 아이들이 태어나서 면역계를 가지기 위해 점차 세균을 늘린다. 이러한 활동은 10살까지 이루어 진다. 생명은 연약한 닫힌 계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콧물이 면역계를 열어주고 새로운 음식을 받아 들이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해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코찔찔이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한 현상을 약으로 차단해 버리면 성격이 예민해진다. 우리가 모유를 먹는 이유는 모유에는 세균이 많아서 면역계 형성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기원의 문제를 살펴보면 중요한 부분이 막이 생성되는 것이다. 개체중심에는 막을 경계로 외부와 내부가 있다. 내부가 먼저 있고 외부가 있다고 하는 것이 인과론적인 관점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내부와 외부는 함께 존재했다는 것이 연기론적 관점이다. , 내부는 갇혀 버린 외부이고 외부는 열린 내부이다. 가이아 이론의 핵심은 계의 어떤 한 부분을 관찰하면 다른 부분은 미루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기운의 운기를 살펴보면 그 계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가 속한 계의 기운을 바꾸기 때문이다.
 
마굴리스의 공생 이론에서 현재 생물학계에 문제가 되는 것은 편모를 가진 유영성 세균과의 공생문제이다. 진핵세포의 편모와 섬모는 세포의 이동이나 세포 표면의 액체를 쓸어내는데 사용되며, 박테리아의 편모와는 매우 판이한 구조와 운동기작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굴리스는 세포의 운동성(세포분열)은 살아있는 스피로헤타들의 끊임없는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마굴리스가 심하게 얘기하는 것도 없지 않지만, 섬모와 편모가 합쳐져서 세포의 운동방식이 바뀌었다. 나팔관, 꽃게, 기관지에서 가래를 뱉는 것도 섬모의 운동이 관여한다. 미세소관도 편모 운동하는 세균들의 특징이 남은 것이다. 편모를 가진 유영성 세균과의 공생은 세포의 능동적 운동을 만들었으며 이는 물질이 알아서 스스로 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은 자체가 갖고 있는 기억이 있다. 우리는 운동을 물질 아닌 무엇으로 가정하지만 물질 자체가 운동계이다. 그렇게 되면 운동을 설명할 때 외부의 초월적인 힘이 필요 없다. 물질 자체가 기억이고 그 기억은 공생으로부터 왔다.
 
마굴리스의 공생 진화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의 탄생과 관련된다. 이러한 공생은 단순히 다른 종들이 같이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창발적인 종이 탄생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 공생을 통해서 다른 삶의 양식이 만들어 진다. 마굴리스 공생 진화의 독특한 점은아름다운 공존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기적인 동거는 공생 발생을 낳고, 이 공생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런 동거가 창조적 종으로 탄생하기 까지, 어쩌면 길고 길었던 소화불량 상태를 겪었어야 했다. 마굴리스는 말한다. 타자는 기본적으로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그런 존재며, 괴물이다.
지금 너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이 타자이냐. 보고 있는 타자가 진정한 타자이냐. 아니면 네가 투사한 타자이냐. 그는 이웃이 아니라 너의 형제이다. 정말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에어리언과 산다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다 뒤집어 엎고도 그를 만나겠는가? 내가 다 뒤집어진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같이 사는 것을 고민하지 않겠는가? 
탐욕은 나는 안 바뀌는 것인데 너만은 바뀌어야 한다는 데 있다. 소화불량이 공생 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생명체들 간의 끊임없는 실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변모시키는 과정이다. 모든 순간은 새롭게 발명해야 한다. 연애도, 결혼도 매 번 새롭게 명명되어야 하고 발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기 존재를 변화시키며 생명의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는 것이 공생진화의 창조성이다. 우리들은 공생이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고, 그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표상과 맞지 않을 때는 괴로워하게 된다.
 
자신이 마주한 장애물을 새로운 삶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생명이다. 마굴리스는 장애 및 선택압으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고 하지만, 다음 시간에 할 책은 생명은 잉여로부터 창조된다고 한다. 
장애물은 자기 자존감을 쓰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잉여의 관점은 서로에게 선물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에 공생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대기압이 이렇게 감싸주고 눌러주기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다. 때론 우정의 힘으로 공부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사랑. 기쁨. 재미로 정신 줄을 놓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내 경계가 무너지고 장애물을 넘어 간다. 자신의 삶에서 두 가지 방식을 다 실험해 봐라. 참고로 서양 진화론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압력이 오고 압력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나와 신체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신체를 집합적으로 창안해서 사용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집합적 신체의 리듬을 창안하는 게 의학이다. 신체의 이질적인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자기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자기가 소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표상 안에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며 진리로 제 3의 것을 창안해야 한다. 앎이 있어야 서로 잡아 먹지 않는 공생이 가능하다. 여기서 창안은 우리 스스로의 역량 실험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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