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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3학기 3주차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수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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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별똥 작성일13-08-05 21:26 조회3,5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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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생이란 비용과 이익의 계산 이전의 것으로 생명의 존재 양식을 가리킴. 공생은 생명을 가진 개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가지기 위해서는, 즉 생명의 조건이 공생이다.”<근영샘 강의록>
 

   
   관계는 존재에 선행한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 개체들 사이의 관계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 관계는 이익과 손해의 셈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함께 잘 묵고 잘 살아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태극 안에 음양이 공존하듯, 생명의 존재 자체가 공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이 가진 선물(잉여)을 나눔이 아니라, 단지 흘려보내는 것만으로 가능해진다. 먹으면 아래로 나오는 것이 당연하듯, 필요 없는 여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수승화강과 같이 생명의 생식과 순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잉여가,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물은 일방적이며, 이후의 보상과는 관련이 없다.”<근영샘 강의록>
   
  하지만 선물을 주고받는(공생) 관계가 생명의 조건이 될 정도로 능동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이 관계가 언제라도 조건 없이 시작하고 뒤끝 없이 끝날 수 있는 전제가 필요하다. 자유로운 밀당과 눈치보기의 열려진 과정 속에서만이, 반쪽 찾기와 같은 운 좋은 마주침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어제의 애인이 친구의 애인이 된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서로 맞지 않음을, 그리고 너가 그렇듯 나도 매일 변하는 걸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절친이 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끊임없는 만남과 이별 속에서, 반쪽을 찾기란 수많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역동적이면서 유동적인 과정이다. 내가 나를 잘 모르기에, 어쩌면 이 과정이 생명의 인드라망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 즉 어떻게 내가 한 생명으로 자리매김 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공생의 그 얽힘은 반드시 나 자신의 존재의 변이를 요구한다. 능동수송 과정으로의 변이란, 배설물에 대한 실험일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이것이 따르지 않는 공생은 탐욕이다.”<근영샘 강의록>
   
  통제와 관리가 아닌 자유로운 유영 속에 생명은 공생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다. 생명이 만든 수많은 네트워크, 이것이 환경이다. 이 네트워크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 이웃이 있음으로 고립이나 외로움과는 멀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이웃의 존재는 나에게 선물이며, 나도 역시 이웃의 선물이 된다. 하지만 이를 넘어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할 때, 그 이웃은 유용한 또는 불필요한 무엇이 될 것이다. 거래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그저 함께 있음으로 나와 너를 이루는 것, 이것이 생명이 만든 네트워크, 공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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