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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껄껄선생이라오 (2차시) - B조 안은숙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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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화노인 작성일13-03-11 17:08 조회3,49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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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껄껄선생이라오 (2차시) - B조
10시 암송을 시작으로 수업을 열었다.
p276~278 ‘나를 비워 남을 들이네’ 쌤이름은 잃어버렸지만 전문을 외우셨어요^^
고쌤 말하시길 전문을 다 외우는 것도 좋지만 부분을 외우면 시간 소모량이 적다. 한 줄 외웠다면 그 다음 단락을 외우는 데는 제곱의 시간이 걸린다. 안보고 쓸 수 있어야 보고 틀리면서 쓴다. 암송도 이정도면 됐어! 그러나 사람들 앞에 서면 당황하여 틀리게 된다. 그러면 자책을 하게 된다.
암송하는 문장의 길이에 맞추어 시간 투자를 더 해야 한다.
자다 일어나서 해도 저절로 나오게 할 수 있도록.
그 원리를 알면 된다.
고혜경쌤 p234 ‘대처 문채의 극치가 이보다 더 지날 것은 없었다.’
장경석쌤의 암송이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연암의 다양한 글쓰기를 읽었다.
보통 에세이라는 것이 소재가 다루는 방향이 다양하구나! 이것이 연암 글의 특징이다.
글들을 보면 연암의 인생을 따라 갈 수 있다. 철학이 담겨 있고, 누구랑 놀았는가 알 수 있다.
다른 소설가의 글을 보아도 소설가를  알 수 있나?
그런데 연암은 자기의 삶에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된다. - 대화가 그냥 드러나 있다. 묘지명에도 그러하다. 그래서 전혀 색다른 묘지명이 나오게 된다.
연암은 18세, 19세에 대운이 바뀌었다. (子水 대운이 들어왔다)
‘바뀌다’란 굉장히 크게 바뀐 것이다. 변화를 넘어 가는 것. 이것이 없이 변화가 오지 않는다.
이때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심하게 앓고 과거를 그만 두게 된다.
유람 생활. 30~40대에 백탑청연시절에서 친구들과 즐겼다. 이서구,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홍대용, 유언호, 백동수등
18세기 지성사가 펼쳐진다. 혼자서 움직인게 아니다. 지식이 흘러 다닌다.
지성이 유동한다는 걸 너무너무 잘 보인다.
(친구들 이야기)
-이서구: 집안이 좋다. 조선 4대 시인 중 한 사람(이서구, 유득공, 이덕무, ?)
         관료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유언호: 연암의 절친. 개성 유수 시절이나 미관말직 시절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며 그래서 연암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글을 남기지 않아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명재상이었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연암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암글과 평전안에 굉장히 많은 글이 실렸다. 정조가 아끼는 대신으로 계속 발탁이 되었으며 홍국영의 견제를 알려주어 연암을 연암골로 피신하게 하고 의식주를 해결해 준 친구이다.
연암이 50대에 관직에 나갈 때에도 유언호가 추천하였다.
 
홍국영이 자멸하고 연암이 돌아왔다.
중국 열하로 떠났다(40대 중반)
이때 황제가 유독 조선 사신단을 접견하였다. 황제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재앙이다. 무박 사흘동안 가서 황제를 접견하고 티벳 법왕까지 만났다. 당시 티벳 법왕은 황족들조차 쉽게 만나지 못했다. 이 또한 조선 사신단에게는 재앙이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불교는 이단이었으므로 정치적으로 위험했다. 강제로 법왕에게 끌려가서 황금 불상까지 선물로 받았다.
온갖 에피소드가 생기는 것을 연암이 지켜보았다.
자기는 감독처럼 전체를 보며 즐기고 있었다.
연암의 ‘열하일기’ 다산의 ‘목민심서’는 읽지 않고 국민들이 떠받드는 고전이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제목 자체가 좋다.
‘열하일기’는 44세에 열하를 다녀와서 3년 동안 고쳐 썼다. 이때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내기도 했다.(홍대용, 정석채등)
50대에 관직에 나가 10여년을 했다. 형님과 자기의 모든 것이라고 하는 친구들을 계속 보내며 그 상실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우울증이 더했다. 그럼에도 명랑함과 유머를 잃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내공이 깊다라는 것이다.
정조의 죽음으로 돌아와서 생을 마감했다.
 
p381 ‘이름을 숨기지 말고’ 당대 꽤 유명한 유한준(창해)이 자신의 시를 평가해 달라고 보낸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너무나 솔직하게 평가했다(악플?)
연암에게 배우겠다하면 잘 된 것인데 유한준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원수가 되었다. 배움의 자세가 있으면 그 말이 더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유한준은 연암에게 배우려고 한 게 아니라 인정을 받으려고 한 것이다.
50대 면천 군수시절 연암의 옷 입는 것을 오랑캐의 옷(호복)을 입는다.라는 소문을 근처 연암의 질투자들이 냈다. 이것을 빌미로 유한준이 ‘열하일기’를 오랑캐의 글을 썼다고 시기했으나 그대로 묻혔다.
1801년 연암은 아버지 묘를 제대로 이장하려고 했다. 36년전에 쓴 묘인데 그때 동네 유지 아들과 불량배가 개입되어 영조에게까지 알려져 크게 화가 되었었다. 연암은 ‘이것은 시비를 따질 일이 아니다’라며 가묘를 썼다. 그 후 30년이 지나 정말 좋은 곳을 찾아(편하게 쉴 수 있는 곳) 아버지 묘를 옮겼다. 유한준이 제동을 걸었다. 다시 묘를 옮기기로 약속했는데 유한준이 먼저 아버지 묘를 파냈다. 연암이 물으니 ‘나는 파낼 굴(屈)자만 안다’로 대답하였다.
연암은 시비를 중단하고 원한은 이렇게 풀어지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자기 인생에 풀리지 않는 것이 어느 것에서 정화가 된 것이다.
유한준은 절친 유언호의 친척이었다. 이것 또한 대반전이다.
가문이 커지면 혈연도 원수가 된다. -가까운 사람도 적이 된다.
결국 적과 경계가 구별 되지 않는다. 선명하지 않다.
1805년에 중풍으로 마비되고 약을 끊고 죽음을 받아 들인다.
의료가 가해질수록 죽음에 대한 고통이 심하다.
가을에 조용하고 쓸쓸히 죽었다.
겉보기에는 정치적 연루가 안 된 것이지 안에서는 희노애락을 겪을 만큼 겪었다.
 
p379 ‘아이가 나비를 잡으려 하나’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는 광경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앞다리는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뻗치면서 두 손가락으로 집게를 삼고 살살 들어가다가 집을까 말까 할 때 나비는 벌써 날아갔습니다. 사면을 돌아보나 사람이 없으니까 씩 한 번 웃고 나서 부끄러운 듯도 하고 속이 상하는 듯도 합니다.
이것이 사마천이 글을 짓고 앉았는 때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동아시아 문학의 전반이 되는 고전이다.
나비를 잡는 어린아이 정말 절묘하다. 초긴장에서 안타까운데 부끄럽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는 사마천이 그 마음을 글로 쓰는 것이다.
대단한 사상과 뜻을 가지고 펼치는 것이다.
글은 펼치는 것이 아니고 쓰면서 구성을 잡는 것이다.
말로 하는 순간 이미 떠나버린다.
어떤 말도 내가 생각하는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다.
최대한 나비를 잡으려하는 그 마음, 그 순간만을, 다가가는 것을 글로 쓰는 것이다.
연암이 제일 글쓰기에서 해서는 안되는 것이 ‘진부함’이다.
진부한 글을 쓰지 않는 것. 글을 써보면 진부해 진다. 자기의 삶을 연결하지 않는다.
사기를 볼 때 다산은 ‘스토리를 보지 말고 연표를 옆에 두고 맞추어 가면서 봐라’했다. 연암과 너무 다르다. 두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가?
자기 마음을 계속 비춰 봐야 하는 것이다.
연암의 문장론을 많은 학자들이 썼으나 학자들은 다산식으로 썼다. 이것은 진부함이다.
한편한편 보면서 거기에 담긴 글을 써 본다거나 철학을 생각해야 한다.
 
질문
p365 '만일 갓을 쓰고......지금의 형편은 뒤끝을 깨끗이 하는 것이 제일이요. 뒤 끝을 깨끗이 하는 데는 머물고 떠나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뒤끝을 깨끗이 하는 것일까? 어떠한 여운을 남기지 않는 것. 그리움과는 다르다.
그러러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 다음주 과제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 읽어 오기 및 씨앗문장 쓰고 외워오기
 
◈ 당부 말씀
- 지금부터 기말 에세이를 생각하며 철저하게 나를 묻는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A4 5장 안팎, 10포인트, 바탕체
- 시간 운용을 잘해서 글쓰기 준비
- 인용문을 정확히 하고 인용문을 화두로 삼아 쓴다.(내것과 남의 것을 정확히 구분)
 
◈ 공지 사항
- 4월 18일~ 19일: 에세이 발표(1박 2일)
- 4월 25일: 기말 시험 및 암송 대회
- 1주 쉬고
- 5월 9일: 2학기 시작
 
-목성 매니저님 공지사항 확인해보시고 틀렸으면 수정해주시와요
 
댓글목록

생글님의 댓글

생글 작성일

감이당 공부를 처음 접하는 저에게 이러한 수업후기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네요. 제가 놓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문장 암송은 유년의 잃어버린 추억이면서 험준한 고지입니다. 그러면서 중년의 신나는 유희입니다. "제대로 암송도 못하면서..."라는 고미숙샘의 준엄한(?) 꾸짖음이 아프거나 부끄럽기보다는, 참으로 말갛게 와닿았습니다. 암송과 저 자신이 점차 하나가 되어가는 그 도정에서 공부길을 터득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때문이었을까요? 후후. 다른 샘들의 유려한 암송은 저에게는 마법이며, 위대한 음악입니다. 황홀한 선율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매시간 등장하는 샘들께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저도 언젠가는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급하게 고지를 점령하려는 무리수는 두지 않으렵니다. 아껴가면서 즐기고 싶은 유희이므로 그 과정을 충분히 누려보고 싶어요. 고미숙샘은 답답해 하시겠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