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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2학기 5주차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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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트타임백수 작성일22-06-05 17:15 조회276회 댓글5건

본문

 

오전에 씨앗문장 발표하면서 여러분들의 사연을 들으며 어느 정도까지 나를 내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많이 나를 드러낼수록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것이 어떤 분들에게는 꺼내고 싶지 않은 아픔을 끄집어내어 더 고통스럽게 하는 수순을 거쳐야 하기에 쉽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것은 충분한 의미와 보람이 있는 일이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후수업에서는 데이빗봄 다큐에 대한 영상을 공부했습니다. 주로 본문의 내용을 번역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대략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는 반면 정말이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봄과 크리스티나무르티의 대화 중에서 비탄은 나의 비탄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대목)도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정리해 봤습니다.

 

봄이 공산당이라는 오해로 인해서 미국에서 추방당해서 브라질에서 교수를 하다가 이스라엘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고 나서 영국으로 넘어가서 크리스티나무티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자역학은 파동함수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고, 봄은 실험의 조건에 따라서 전자가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봄은 잘 알고 있었다. 봄의 인터뷰 내용 난 어렸을 때, 초기에 과학은 인류에 이익을 주는 원천이 되리라고 확신했어요. 이 질문에 접근하기 위해 과학을 넘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학적 충동(impulse)만으로는 인류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단지 살펴보고 있었어요. 내가 영국 브리스톨에 있었을 때 말이죠

 

전자의 활동에 관한 연구인 양자역학에서, 매우 신비한 속성이 있는데, 이것은 전자의 변화를 관찰하는 바로 그 행동이 전자를 변화시킨다는 것인데, 관찰장치와 관찰되는 대상 사이에 어떠한 연결이 있다는 매우 신비로운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무르티는 인간의 정신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습니다. 가정이나 태도 등 내적인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은 그것을 보는 것은 그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마치 화를 내는 내 자신을 보면 화가 가라앉듯이) 관찰자의 내면의 감각은-들여다보고 있는 내 자신-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포리즘적 형식으로 관찰자가 관찰대상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이 말은 봄이 물리학에서 작업하는 영역으로 가져왔는데, 이 질문들을 인간의 경험, , 역경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다. 봄이 물리학에서 밝히고자 했던 전체성에 대한 감각을 완성시키는데 있어서 크리스티나무르티가 알아챈 것 같다고 느꼈다.

 

크리스티나무르티는 봄이 사유의 본성, 실체의 본성, 의식의 본성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느꼈습니다. 떨어질 수 없는 전체로 보이며, 정지되거나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접히고 펼쳐지는 연속적인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거대한 질문(우리는 누구지? 우리는 어디에서 왔지?) 에 대한 대답을 줄 것이라고 느꼈던 정통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둘 다 그들의 각각의 배경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크리스티나무르티는 <신지학 협회>에서 양육하였는데, 이 협회사람들은 남 인도의 해변가에서 있던 14살 소년이 세계의 스승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며 그를 입양한 것이다. 크리스티나무르티가 신지학협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처럼 봄이 정통과학에 대한 의문을 품은 것은 비슷하다.

 

봄과 크리스니타무르티가 대화를 조금 했을 때 크리스티마루르티가 일어나더니, 즐거움과 열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당신 그걸 아는군요“ , 봄은 크리스티나무르티 학교의 이사가 되었다둘은 시간의 종말, 마음의 본성, 우주의 질서 등에 대해서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들은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는 책으로도 나왔다고 한다. 이들은 25년에 걸친 대화, 질문과 대답를 통해 끊임없는 탐구를 하며 어떤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을지 상상해보니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크리스티나무르티는 세상과 공유할 엄청난 영감이 있었으나, 자기 혼자서 꺼낼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자기에게 질문을 해줄 사람들이 필요했고, 그것에 깊이있게 파고 들어 질문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역할에 있어서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봄은 최고였다. 봄도 어느 정도까지는 크리스티나무르티에게 유사한 역할을 하게 했다. 크리스티나무르티는 봄으로부터 질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다른 맥락에서는 나오지 않았을 질문을 봄과 크리스티나무르티의 만남을 통해 질문 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였던 것이다.

 

봄과 크리스티나무르티의 대화

K : 비탄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것입니다.

B: 그렇죠 하지만 사람들은 감정을 개인적인 것으로 느끼죠.

K : .. 교육, 사회, 전통 때문에 슬픔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B :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전체에 내포되어 있어요. 우리는 사랑이 개인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사랑은 어느 누구에게 속하지 않아요. 그 다른 어떤 것들도 그렇듯이. 지구도 영국의 지구, 프랑스의 지구가 따로 있지 않죠. 나트륨은 나트륨이듯이, 마치 나트륨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각각의 나트륨이 다른 것이 아니잖아요.

 

이 대화는 불교적으로 무아와 연결되는 내용인 것 같다. 슬픈 드라마를 보고 눈물이 나는 것도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가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관계에서는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운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한데 나만 슬프고 외롭다고 느끼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현주소가 아닌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안타까운 감정이 들지만, 우리가 느끼는 안타까움과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그 수준을 비교하기 힘들 것이다. 소금은 다 같은 소금이다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라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 타인의 고통이 내 것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무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근본적으로 크리스티나무르티가 제시한 요점은 인류의 문제는 사유 그 자체, 의식 그 자체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무르티의 이야기를 듣기 이전에 봄은 가난은 인류의 중요한 문제이고 과학은 가난퇴치를 도울 것이라고 믿었다. (봄은 어린 시절 겪었던 불황, 가난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것이 그가 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진 이유이다.) 인간의 삶을 어떻게 하면 이롭게 할까?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끼? 를 고민했다. 하지만, 봄은 과학이 아무리 발전되어도 빈곤을 퇴치하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빈곤을 해결하더라도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티나무르티는 우리의 사유가 실제적 움직임이다라고 하였다. , 생각이 물리적 움직임, 생리적 움직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 큰 업적이다. 이러한 사유는 모든 문제의 배후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전체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유가 우리가 관찰하는 것에 참여하고 만드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볼 때, 너의 나, 너의 나라와 나의 나라 사이의 갈등을 이해할 때.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볼 때 특히, 사유가 어떻게 참여하고 작동하는지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크리스티나무르티는 제안하길, 조용히 있을 수 있다면 실체의 더 깊은 층위가 당신에게 열릴 것이다. 라고 했다. 그 상태에서 마음은 비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활동적인 상태입니다. 사유과정은 생각, 인식, 지식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지각, 의식, 주의 기울이는 것입니다. 어쩌면 진실에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 또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계속 움직이고 있다. 사유를 의도적인 생각, 인식, 지식과는 다른 차원으로 지각, 의식, 주의 기울임. 이 개념은 요즘 이야기하는 마음챙김이라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에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뭔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지만 안개처럼 그럴 듯해 보이는 것 같다.

 

봄은 크리스티나무르티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물리학적 주장의 기반을 탄탄하게 정립할 수 있었으며, 크리스티나무르티 역시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봄을 통해서 해낼 수 있었다. 목성에 참여한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봄, 크리스티나무르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질문을 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끼리 서로 생각을 나누고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탐구와 더 나아가서는 자기구원에 다다를 수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댓글목록

소민님의 댓글

소민 작성일

주연샘, 차분하게 정리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샘 말씀처럼, 저희 목성도 봄과 크리슈나무르티의 경우처럼 서로를 좀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몽구님의 댓글

몽구 작성일

주연샌. 수업시간에 흘린내용을 다시 떠올려 정리하게 되었어요.  덕분에요.  감사해요.  꾸벅

cvc13254님의 댓글

cvc13254 작성일

주연쌤 후기가 뭔가 감동적이에용....!ㅜ ㅅ ㅜ

김민정님의 댓글

김민정 작성일

주연샘이 정리해주신 걸 읽고나니 수업내용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김현옥님의 댓글

김현옥 작성일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