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 깨지고 돌아오다 (목감 1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이한주)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목성.png

왕창 깨지고 돌아오다 (목감 1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이한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보행자 작성일13-04-19 11:46 조회4,324회 댓글6건

본문

 
<글쓰기의 존재론 감이당 목요감성 1학기 후기>
                                          
 
              처참히 깨지고 돌아오다.
 
 어제 감이당에서 1학기를 정리하는 에세이 발표가 있었다. 주제는 ‘나는 왜 글쓰기를 하는가’이었다. 한 학기 동안 동서양 선현들의 글을 읽고 그를 통하여 ‘나는 왜 글쓰기를 하는가’를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다양한 글을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이것이 바로 진정한 공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모두들 자신의 글을 드러내놓으며 참 많이 부끄러워하셨다. 또한 그것은 내 안의 나를 정면으로 직시해야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고통스런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을 가지고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내가 알고 있었던 세계가 아주 좁디좁은 세계였음을 깨닫게 하는 참 공부의 시간이었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더 공부가 되는 시간이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위로까지 받을 정도로 스승과 도반들에게 무참히 깨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제 아침, 정말로 감이당을 가기 싫었다. 이 쓰레기 같은 글이란 걸 들고 비싼 차비를 들여서 간다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화살처럼 꽂힐 비난들을 생각하니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모두 공부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리고 어떤 비난과 질책을 받더라도 절대 변명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하하하, 그런데, 역시나, 곰샘의 말씀이 귀에 쟁쟁 울린다.
“자폭하려고 왔구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감정의 시간이 비단 며칠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곰샘의 코멘터리의 핵심은 항심이었다. 어제는, 최근 몇 달 그 항심을 잃어버리고 멘붕 상태에서 지냈던 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결혼 하고 20년, 남편과의 사이에 끊임없이 불화를 제공하는 원인의 맥을 끊는 사건이 몇 주 전에 있었다. 지금 그 일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동안의 공부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놓았던 나의 큰 콤플렉스인 열등감이 잔잔했던 수면 위로 들끓어 올랐다. 그 뒤로 하루하루가 멘붕이었다. 온전히 정신 줄을 놓은 상태로 매일이 계속 되었다. 역시 가라앉혀 놓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완전한 비우기가 아니면 모든 공부는 또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으나 내 안에 있는 열등감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두 달을 감이당을 다녔으나 무슨 공부를 했는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부를 하고 난 뒤 기차를 타고 돌아오며 새로운 앎에 대한 희열로 머리가 가슴이 뜨거워진 시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억들은 온데간데없고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도반들 뒤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데다 열등한 나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 때, 머리를 불쑥 처든 열등감은 일단 튀어보고 싶다는 자아와 협동이 되어 자판 위의 나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편일률적인 형식의 에세이는 쓰지 않을 테야! 남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나의 머리를 지배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봐서도 이런 글은 한 번도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의 공감을 이끌어 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매분 매초 이건 아니야 하는 마음이 부지런히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저장을 잘못하여 글의 3분의 2가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이런 골 때리는 사건이......
 
 글을 올려야 하는 시간은 3시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를 어쩌나 하다가 마음을 담담히 가라앉히고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졸렬한 글쓰기 실력은 제쳐 두고서라도 하얘진 머릿속은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았다. 글을 올려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지난주에 곰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글쓰기가 하기 싫어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말라고. 내가 지금 그 마음인데......나의 이런 마음을 어떻게 미리 아시고......흑흑흑.
 
 
 
 할 수 없이 쓰다만 글을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올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나를 덮친 절망감......
어쨌든 쓰레기 글이라도 인쇄는 해가야 할 듯해서 인쇄를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복사기도 문제를 일으켰다. 처음부터 왠지 작동이 느리던 복사기가 인쇄를 4분1을 남기고 잉크 배출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구인회 도반에게 도움을 청했다. (흔쾌히 도와주었던 나의 도반, 촉촉미란 사랑해!) 생쇼도 이런 버라이어티한 생쇼가 없었다.
 
 
 모든 사건의 출발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동안의 공부를 통해서 나의 열등감이 어느 정도는 해체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나의 가족 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무의식의 어느 층계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머리를 내밀 기회만 엿보고 있는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인하여 그것이 나를 어떤 형태로 뒤 흔들어 놓는지도 알게 되었다.
 
단지 튀어보겠단 욕심만으로 글을 썼고, 그렇게라도 쓴 졸렬한 글이 날아가고, 하얘진 머리는 제쳐두고 손으로만 다시 글을 쓰고, 쓰레기 글을 외면한 복사기는 문제가 생기고...... 알고 보니 이 모든 상황이 현재 나의 마음의 거울이었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비겁했다. 그것이 바로 생쇼의 상황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던 것이다.
 
에세이 발표가 끝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어김없는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완전히 늘 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비록 몸은 그러하였지만 머리는 점점 맑아지고 가슴은 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맑고 밝은 에너지가 물씬물씬 나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에세이 발표를 하기 전, 나를 직시하지 않았고 초점도 불분명했던 글에 대하여 스승과 도반들의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절대로 변명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주와 세운과 월운을 들먹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는 내게 곰샘은 호통을 쳤다.
“천지를 등 쳐먹지 말고 나이 값 좀 하고 살아라!”
 
 감이당을 나설 때 한 대 쥐어박으려는 자세로 환하게 웃어주시던 곰샘을 와락 껴안으며 속으로 말했다. 나를 제대로 보는 기회를 주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분도 나의 마음을 읽으셨으리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시작했던 감이당 공부를 이제야 제대로 할 것 같은 느낌이다. 2학기가 기다려진다.
 
 
 
 
댓글목록

생글님의 댓글

생글 작성일

진주댁의 1차 에세이발표 후기  끊임없이 변하기를 갈망하면서도 한치도 변하지 않았던 나를 확인했던 장이었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가 얼마나 각양각색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장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너 이래도 안변할래?"하는 수련의 장이 진짜 펼쳐지겠구나, 를 예감했다.  사실 어제 오전에 에세이발표가 끝나자 벌써 내가 쓴 에세이가 부끄러웠다. 8주간의 1학기 수업을 바탕으로  포장하고 꾸민 그럴 듯한 욕망을 나열한 나의 에세이. 그 에세이를 쓸 때만 해도 난 치열하게 나를 탐구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에세이 발표가 시작되면서 그건 가짜였음을 통렬하게 깨주었다.  1박2일의 에세이 발표는 나를 장렬하게 전사시켰다. 1박2일을 마치자 이제 비로소 크리슈나무르티, 융, 장자, 껄껄선생의 말씀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글을 써야 나의 치유가 되고 구원도 된다! 다시 순수하게 글쓰기와 감이당공부와 마주하기를, 스스로에게 주문했다.  이제 더이상 '폼'을 잡지 않으리라. 변한 '척'도 하지 않으리라. 도망가지도 않고 너무 잘하려고도 하지 않으리라. 진정 뭇 시선에서 놓여 나리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껴안으리라  맨 마지막 발표 조의 은숙샘에게 "엄마는 나빠,라는 소리가 얼마나 아픈 소리인지 안다.  엄마는 엄마의 공부장에서 공부하고, 자식은 자식의 공부장이 있으면 되겠더라. 자식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망을 내려놓고 진솔하기를. . . "라는 주제넘은 소리를 하고 내려오면서 난 떨렸다. 얼마나 망설이고 또 망설이면서 말해버리기로 결정했던가.  간혹 바깥일을 가진 엄마에게 일어날 수 있는 통과의례와 같은 사건. 아이들은 똑똑한(?) 엄마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지희샘이 가졌던 엄마의 환상을 거의 모두 갖고 있다. 아이들은 그저 따뜻하고 부드러운 엄마이기를 바란다. '엄마'라는 단어가 가진 무한정의 애정에 기대고 싶어한다.  사춘기 이후에 변한 자식에게 그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아파했던 기억때문에 결국 은숙샘에게 한 소리는 나 자신에게 한 소리였다. 은숙샘을 보듬어주고 싶었던 것은 나 자신을 보듬어 준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과거의 흔적들을 껴안아주고, 흔쾌히 이별했다. 그런 계기를 준 은숙샘에게 감사하다.  이제 그것으로 마지막이다. 엄살부리지 말고, 어리광피지말고 "순도 100% 진솔"에, 아니 우선 "진솔할 수 있는 만큼의 진솔"에 다가가도록 수행해보리라. 오상아를 관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보리라. 실천한만큼, 수행한만큼 난 담백한 죽음을 맞으리라. 곧 담백한 삶이 되리라. 50대 이후의 나에게 감이당 공부는 정말 유효했다. 노후를 위한 공부보험 맞았다.  여러 선생님들의 지적과 조언은 결국 나를 다시 태어나게하는 거름이 되어 준, 1박2일의 대장정, 에세이발표가 끝났다.  아픈 소통의  나에게 '선'으로 다가온 귀한 체험이었다.  진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 후기를 작성하는 나로부터 새로운 나는 시작된다!

보행자님의 댓글

보행자 댓글의 댓글 작성일

진주에서 서울까지...... 쉽게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지요. 그것도 매주를......
두 달......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부의 장이 이미 길 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앞으로 천천히, 계속, 같이 가요, 선생님~^^

보행자님의 댓글

보행자 작성일

힘주시는 나의 도반들이이여! 감사합니다.
글고 땐구샘! 나는 땐구샘이 나의 어떤 메모를 좋았다고 하시는지 어제는 전혀 몰랐다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생각해 보니 이글이 아닌가하고 짐작이 되었소.


서울 감이당 공부를 시작한지 한달하고도 반이 지났다. 다산과 연암. 크리슈나무르티, 칼 융, 장자를 탐구 중이다. 그들을 관통하는 사유의 핵심은 변화이다. 그들을 들여다보고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나의 소리를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나와 타자, 나와 타자가 포함된 세계이다.


 며칠 전 둘째아이의 가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학교에서 받은 안내장이 두꺼운 노트 만큼이나 가득 들어 있었다. 한 장 한 잘 들추어보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남짓이 지났는데도 단 한 장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무료수업이나 대회 신청서 등 내용이 다양했다. 이미 신청 기간이 끝나 아무 것도 신청할 수가 없었다. 서서히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 했다.
이 녀석을 어떤 방법으로 혼내 줄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방법을 연구하다가 모든 원인이 가족들에게 무관심한 남편 탓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순간 화로 무장된 소용돌이 속으로 나의 인생이 통째로 억울하다는 감정이 끼어들어가더니 눈물이 왈칵 솟아났다.
 그야말로 혼자 생쇼를 하고 있었다.
 몇 시간 뒤 밖에서 돌아온 아이의 얼굴은 해 맑기만 했다.
 “엄마한테 안내장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뭬야?”
 “걍!”
 이 상황은 뭥미?


 세계의 중심에는 내가 서 있고 변화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끊임없이 기쁨 주고 기쁨 받고 억울하고 억울하게 하고 상처주고 상처 받고...... 세계는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나와 타자가 포함된 세계는 하나의 유기체다. 따라서 나와 세계는 변화를 같이 한다. 내가 변화하면 당연히 세계는 변할 수밖에 없다.
 연암이 세상 속 평범한 것에서 진리를 찾고 , 크리슈나무르티가 무의식의 층위를 비워내고, 융이 자아와 자기 원형과의 합일을 시도하고, 장자의 곤이 붕이 되어 구만리를 날아올라 먼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그 순간에도 이 세계는 생명의 숨을 몰아쉬며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서 있다.


 내가 감정의 파노라마를 펼치며 생쇼를 하고 있는 동안 아이는 자신이 중심인 세계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며 아주 즐겁게 자~알 살고 있었다. 결국 나를 괴롭힌 것은 나였다. 끊임없이 제공되는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 그래, 이제는 변화하는 거다. 


내가 써 놓고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소. 
정말 정신줄 놓은 게 맞지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구나, 했으니까.

오늘 아침엔 머리가 맑습니다.
담백한 삶을 향한 공부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깨우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땐구님의 댓글

땐구 작성일

오호! 힘이 나는군요. 화이팅!!

필벽성옥님의 댓글

필벽성옥 작성일

뭉클하네요. 맑고 밝은 기운으로 2학기도 기대합니다^^

영주씨님의 댓글

영주씨 작성일

함께 길을 간다는 건 참 설레고 행복할 것 같아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