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목성] 2학기 1주차 강의후기 / <바가바드 기타> (1)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목성.png

[23 목성] 2학기 1주차 강의후기 / <바가바드 기타>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무지개 작성일23-05-07 21:23 조회310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애송되는 경전으로 존귀한 자의 노래라는 뜻이다. 존귀한 자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대화를 담고 있다. 쿠르크셰트라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무대로 하며 이 전쟁이 벌어지려는 찰나에 판다바 가문의 다섯 형제 중 셋째인 아르주나와 크리슈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적은 것이다. 인도에는 수많은 신이 있다. 이 신들은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이렇게 3명의 신으로 모아진다. 브라흐마는 창조를, 비슈누는 지속 유지를, 시바는 파괴를 책임지며 이 세계를 관리한다. 세계는 이것의 끊임없는 순환이다.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의 8번째 화신으로 인도인이 가장 사랑하는 신 중 하나이다. 왜 일까? 소를 치는 목동이며 역대급으로 바람둥이였다고 하는데. 누구나 크리슈나를 한 번 보면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크리슈나는 사랑과 창조의 신으로 받들어졌다. 크리슈나의 외모를 묘사할 때 검다는 표현이 일반적인데 <베다>에서 검은 피부는 아리안족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의 유명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6권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 내용상 하나의 독자적인 문헌으로 읽혀왔으며 요즘은 <마하바라타>보다 더 유명한 종교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마하바라타>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으면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도에 정착한 아리아인

 

기원전 3000년대 중반에 러시아 남부의 초원 지대에 살던 목축민 고귀하다는 의미를 지닌 아리아인이 떠돌기 시작하며 두 민족이 되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형태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한 민족은 아베스타어를 사용했고, 또 한 민족은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했다. 아베스타어를 사용한 이들은 이란에,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기원전 2000년경 인도에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언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피부가 하얀 아리아인의 이주로 인도 선주민들이 세운 인더스 문명은 막을 내렸고 아리아인은 인도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경전 <베다>를 신봉했다. <베다>는 신의 소리를 듣고 쓴 신성한 경전이다.

아리아인은 선주민들의 가축을 약탈했으나 소유하지는 않았다. 이동을 해야 하니 약탈한 식량을 함께 먹고 남은 것은 다 나눠주었다. 소유관념이 없었다. ‘쌓아두는 것은 지옥이고 베푸는 것은 천국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유는 절대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아리아인은 카스트라는 특별한 신분제도를 만들었다. 카스트는 네 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지는데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 바뀌지 않는다. 창조 신화 안에 있어서 국가시스템으로는 바꿀 수가 없다. ‘브라만은 머리, 입에 해당하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한다. ‘크샤트리아는 가슴으로 정치에 관한 일이나 군사에 관한 일을 맡은 사람이다. ‘바이샤는 하복부에 해당되며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평민이다. ‘수드라는 다리에 해당하며 육체노동을 하는 자들이다.

카스트 제도는 처음에 신분이 아니라 분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제의 형식이 복잡해지면서 브라만이 대를 이어 제의를 하게 되었다. 전투도 그렇다. 전투 경험이 많아 잘 싸우는 크샤트리아가 전투를 담당하게 되었다. 아리안족이 동진하면서 제국을 형성하게 되고 점차 카스트는 분업이 아닌 계급이 된다.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부가 축적되었다. 그러면서 국가가 관장하는 제의, 개인이 드리는 제의가 많아졌다. 서로 경쟁하듯 더 많은 소, 양 등 희생제물을 바쳐 더 거룩하게 보이고 현세에는 행복을 죽은 다음에는 내세의 복락을 비는 형태로 제의가 변질되었다. 그러면서 브라만 사제들도 타락하고 왕들과 결속하고 부를 찬미하게 되며 신성함을 잃어갔다.

 

요즘 사회적으로 사이비 문제가 심각하다. 예나지금이나 많이 갖게 되면 문제가 된다. 많이 갖고 있으면 사이비다. 부자는 메시아가 될 수 없다.

 

새로운 사상의 출현

 

인도의 선주민들은 기복신앙인 수많은 샤머니즘을 믿고 있었다. 각자 자기 신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크리슈나이다. 그리고 아리아인의 <베다> 영향으로 종교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샤먼과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베다>의 제사 행위가 변질되며 제의를 드릴 때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을 과연 신이 좋아하는 것일까?’, ‘제의를 드리는 것으로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사문이라고 하는 길 위의 수행자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숲으로 들어간다. <우파니샤드>가 등장하고 자이나교, 불교를 거쳐 힌두교가 탄생한다.

브라만의 실재가 인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주의 근본인 브라만과 진정한 자아 아트만이 궁극적으로 같다는 사고가 생겨난다. 아트만이 내 안에 있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제의를 드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은 폭력이다.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내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정복이 세계가 아닌 마음으로 바뀐다.

또한 요가 문화와 만난다. 요가는 BC 5000년 전 인도의 토착문화이다. 요가의 어원은 수레에 묶다마음의 고삐를 잡는 것을 의미한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설해지는 요가는 크게 세 가지, 즉 지식의 길, 행위의 길 그리고 믿음의 길로 나뉜다. 요가는 신에게 닿는 것, 우주를 주관하는 힘에 자신을 잡아매는 것, 절대자와 인간의 접촉이다.

생애주기를 정해 50세가 되면 숲에 들어가 고행, 수행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50세가 되어 숲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숲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사고가 퍼지면서 연령에 상관없이 숲에 들어가 수행하는 사문이 늘어났다. 인도는 환경적으로 숲이 발달한 나라이다. 숲이 인도 영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의 중요한 도반이 나무이다.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12세가 되어 명상하실 때 그리고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실 때도 나무가 함께 있었다. 사문들이 범아일여를 찾아 숲으로 들어갔다. 부처님도 사문을 보고 출가를 하셨다.

 

<베다><우파니샤드>로 바뀌면서 다양한 철학들이 등장하고 불교나 자이나교 등 특별한 종교가 등장한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80세까지 45년간 설법을 하셨다. BC 3세기 아쇼카 왕이 불교를 국교로 정해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으나, 아쇼카 왕이 죽은 후 쇠퇴하게 되었다. BC 4세기부터 <마하바라타>, <라마야나>가 나오는데 인도의 세속적 욕망과 마음을 표현한 서사시이다. 이것이 나중에 인도의 대중들을 흡수한다.

그러면 불교가 인도인에게 불편한 것은 무엇이었기에 인도에서 사라졌을까? 신분차별이 있는 카스트 제도나 아트만이 있다고 여기는 인도인에게 차별이 없는 불교는 자리 잡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불교에는 세속의 욕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부처를 믿고 통찰지혜를 얻어 무상 고 무아를 알게 된다. 불교는 지성을 요구한다. 매사 질문하고 스스로 깨달아 나가야 한다. 이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

<바가바드 기타>를 보면 인도인을 이해할 수 있다. <마하바라타>에 따르면 판두의 다섯 왕자들이 1005로 싸움을 한다. 다섯 형제가 100명과 전투를 하고 전쟁에서 이긴다. 다섯 형제는 승리와 영광의 시대를 맞게 되는 반면 두료다나는 그들을 미워하게 된다. 첫째가 유디슈티라 왕이고 셋째가 아르주나이다. 유디슈티라 왕은 경건하고 점잖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도박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고루 갖춘 이는 없다. 이런 구멍이 사건을 만든다. 그 시대의 도박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도박과는 다른 것이다. 운이 따라야 한다. 운이란 신이 따라 주는 것이다. 두료다나가 흉계를 꾸며 유디슈티라는 도박에 의해 나라를 잃고 유배를 간다. 그런데 그 기간을 최고의 수행기간이라고 여기고 정신적으로 수련을 하며 많은 행적을 쌓는다.

 

우리는 실수 없이 살 수가 없다. 실수를 한 다음이 중요하다. 그것을 배움의 장으로 가져가야 한다.

 

아르주나는 왜 우리가 전쟁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형제를 죽여야 하는가? 고민하며 질문을 한다. 아르주나가 무기를 들 수 없다고 하며 전쟁을 망설이자 크리슈나는 괜찮다고 설득을 한다. 그리고 크리슈나가 마부가 되어 직접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을 하게 되어 양쪽 거의 모든 군사들이 죽고 전쟁에서 이긴다. 유디슈티라는 통치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며 수행자가 되어 해탈한다.

 

인도의 정신 사상 변화를 시대 흐름과 연결하여 정리해주셔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음 시간에 <바가바드 기타>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실텐데 책을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조금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다음 시간을 기대해 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