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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후기] 실감의 문제 by 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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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각통 작성일13-05-25 19:32 조회3,26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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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무정』은 정말 친숙한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요. 강의에 앞서 『무정』을 읽으면서, 제가 집중한 것은 ‘근대’였습니다. 해서 『무정』을 근대로 설명하기 위한 장치는 무엇일까 계속 생각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분석적 시선을 들이대고 있더라구요.(--;) 나름 짐작한 바가 있었는데, 강의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쾌감이 느껴졌지만, 머릿속은 헝클어졌지요. 어려우니까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프린트물을 읽고 또 읽고, 강의 때 적은 노트 필기를 보고 또 보고! 여전히 난해하지만 그런대로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적어봅니다.
 
선생님은 이광수의 『무정』, 더 나아가 한국의 근대 문학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감’이라는 키워드를 붙들어보았습니다. ‘실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이라고 나옵니다. 즉 지금, 여기의 시선으로 그때를 바라봐서는 ‘실감’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그러니까 이광수 혹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빠진 것은 ‘실감의 문제’였던 겁니다.
 
실감의 문제 ①
당시 문학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사람들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톡톡 건드려주는 그런 장르였을까요? 이런 종류의 기대가 이광수의 문학을 오해하게 만드는 첫 번째 원인이 됩니다. 일례로 최남선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18살의 청년 최남선은 1인 잡지사를 운영합니다. 1년 동안의 운영비가 대한제국 외무부의 1년 예산보다 많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나요. 최남선은 일본을 통해 최신 윤전기와 일본인 식자공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와 일을 벌인 것인데요. 아무리 집안에 돈이 많다고 해도, 배포가 엄청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소년』이라는 잡지에 실리는 모든 글을 홀로 썼다고 하니 학자로서의 사명감도이 대단했던 것 같구요.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최남선은 한국 근대시라 불리는 신체시의 대표작을 쓴 문인입니다. 그런데 이때 쓰인 <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소년』에 실린 권두언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실감’을 뺀 채, 단편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태입니다. 당시 문학은 한 시대의 바탕을 책임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문학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고, 그것은 정치 기사처럼 읽혔습니다. 즉, 당시의 문학은 네이션(nation)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죠.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문학에 기대하는 멜랑콜리한 그 시선을 거두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실감의 문제 ②
1918년 『무정』의 단행본 출간은 당시의  출판 시장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다른 책에 비해 월등히 높은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거든요. 이 책은 최남선이 세운 출판사 <신문관>에서 출간되었다고 하죠. 순국문으로 이렇게 자유롭게 쓴 것은 거의 유일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삼각형 구도의 설정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발상이었습니다. 또한 소설에서 시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광수였죠. 계몽소설인 듯 보이는, 하지만 연애소설에 가까운 『무정』은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설의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거죠. 이러한 시대적 감각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광수도, 그의 소설 『무정』도 우리는 끝내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 근대 문학>이라는 조합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은 문학이 아닌 ‘근대’라 했습니다. 문학은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근대성을 언급할 때, 문학작품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거죠. 지나간 과거를 민족주의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근대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이상하죠? 이때의 작가들은 차라리 인터내셔널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을 근대에 가두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라니, 참 역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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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일 수 있겠는데요. 협소한 시각, 뻔한 해석으로는 풍성한 글쓰기를 절대! 네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광수의 변절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없다 하셨습니다. 단지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악’으로 규정할 뿐! 이광수 = 친일파라는 일관된 시선에서 탈피해야 다양한 해석도 창출될 수 있습니다. 친일-반일, 민족-반민족이라는 덫에 걸려 있으면, 한국 근대사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자꾸 협소해지려는 시야를 넓혀 보다 풍성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이광수의 변절까지도 근대사로 인정하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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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방학 동안 읽은 책이 단 한 권이었는데요. 그게 바로 문샘의 <전습록, 앎은 삶이다>였습니다. 덕분에 왕양명, 전습록, 심즉리, 격물 등 생소했던 단어들과 금세 친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인가 궁금했는데, 강의를 듣게 되어 영광이었다는. ^^
 
 
댓글목록

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작성일

잘 봤습니다. 시간이 짧아 강의가 들쭉날쭉 했는데도 잘 정리해주셨네요.^^ 1학기내 유일한 독서가 <전습록, 앎은 삶이다>였다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댓글의 댓글 작성일

오~ 선생님께서 직접 댓글을! ^^ 다음에 또 다른 강의로 뵐 날이 있겠죠.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