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 3학기 8주차 <데카르트 총정리> 강의 후기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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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3학기 8주차 <데카르트 총정리> 강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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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아래 작성일23-09-15 21:21 조회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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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강의를 위해 정승현 선생님께서 프린트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참고하면서 강의 시간에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생각하는 나의 탄생 배경

  14~15세기에유럽에 유행했던 흑사병은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이는 경기 침체로 이어졌고 이 침체에서 벗어나고자 유럽은 개항의 시대로 접어 든다. 그러면서 조선술과 항해술, 무역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공학과 수학이 실용학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비하여 철학의 논증술(변증법)의 사변적 논리는 설득력을 잃어가는 시기였다. 더구나 피론의 회의주의가 몽테뉴에 의하여 지지받던 시대이기도 하였고, 30년 전쟁으로 종교의 위상도 떨어졌다. 이렇게 확실한 앎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철학자가 할 일은 확실한 지식이란 무엇인지, 진리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었다.

  데카르트에게 진리란 명석판명한 것이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세운 진리의 기준이다. 데카르트는 먼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를 한다. 즉 감각적인 것에서부터 정신적인 것(추상적인 수학적 지식마저) 모두를 의심한다. 그러던 중 그 의심하고 있는 내가 없다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것은 지금 생각하는 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직관에 이른다. 이로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이성을 본성으로 하는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주체는 실존주의에서의 주체와 다른 보편화된 개인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나로 시작하여 확실히 현존하는 나를 증명하고 그 현존하는 나의 신관념을 통하여 신의 현존, 이 현존하는 신으로부터 세계(자연)의 현존을 증명해 나간다. 이로써 근대의 인간은 생각하는 나로 데카르트로부터 그 확실성을 증명받게 된다. 이제 인간은 본성인 이성을 통해 스스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인식의 주체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데카르트에 의해 확실성이 증명된 이 주체가 인식한 것의 객관성이 문제가 된다. 주체의 지식에 대한 객관성이 증명되어야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보편성이야말로 진리의 조건인 명석판명함이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바꿔놓은 것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고 할 때, 그 사건이 갖는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데카르트 이전에도 인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한 문제는 동일하게 있었다. 다만 한가지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데카르트 이전에는 인식된 것 자체의 객관성에 대하여 의문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경의 언급대로 신은 우리에게 자연을 주었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도록 하였다. 인간은 그것을 보이는 대로 적으면 되었다. 그것이 그 대상과 일치하는 지는 따져볼 것도 없이 진실이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일치가 아니라 주체가 기술한 바가 그 자체로 진실인 것이다. 중세 철학이 그토록 사변적이었던 이유, 논리상의 치밀함을 두고 다퉜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이러한 구도를 바꾸어 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한다. 그런데 가 확실한 것은 알았는데 내가 알아낸 그것이 저 바깥의 그것과 같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이점이 문제가 된다. 인식의 근거를 초월적인 것’()에서 내재적인 것()’으로 옮겨옴으로써 대상 세계에 대한 인식 이전에 주체가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체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 주체의 인식의 객관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주체가 무엇을 알 수 있고, 알 수 없는지 등등, ‘근대철학이 그토록 주체의 문제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또 인식론의 차원에서에서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주어진 이성의 능력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의지의 오용에서 비롯되는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감각적 욕구도 얼마든지 통제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인식()과 의지(실천)의 일치가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도, 의지로 신체의 욕구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인간의 본성을 이성으로 본 데카르트의 인간론에서는 인간이 인간적이기 위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근대적 주체란 보편화된 개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방법서설의 첫 문장에 대한 해석이었다. “양식은 세상에서 가장 잘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양식은 이성을 의미한다. 골고루 잘 분배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평등성을 의미한다고 나는 해설서에서 읽었다. 그리고 나는 이 평등성을 위계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번 강의에서 이 평등성이 동일성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셨다. 동일성은 개인을 보편화(추상화)하여 대중(mass)’으로 표현한 것이다. 데카르트 시대의 주체는 실존주의 시대의 주체와는 구별되는 이렇게 보편화된 개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을 보편화한다는 것은 개별자의 독특성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여 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순간, 승현 쌤은 개별자를 사회제도의 법칙이 보호해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하셨다. 이는 무조건 힘쎈 개인이 이기는 자연상태의 힘겨루기에서 해방될 수 있게도 한 것이다. 나는 무조건 동일성’, ‘보편화는 개별자를 억압하는 기제로만 해석하였는데, 모든 언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데카르트에 의해 말해진 본유관념도 보편성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써, 인과성, 수학적 지식이 이에 속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직 나의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하여 숙제로 남긴 채... 강의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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