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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록 1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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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침공기 작성일23-11-10 19:45 조회7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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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 주자를 좇아 격물 그리고 깨달음으로

 

어느새 목성 공부가 4학기 4주차에 이르렀다. 4학기 1주부터 3주까지 전습록1,2권을 읽고 발제한 후 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목성 공부 전 수요일에 약속한 분량을 읽기 위해 책장을 급히 넘기며 볼 때, ‘전습록은 같은 이야기 반복하고 있구나.’ 했다. 그런데 목성 공부가 끝나고 주말에 전습록을 여유롭게 차근차근 읽을 때는 사뭇 다르게 와 닿았다. 사건마다, 인물마다 제각기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리스 샘 강의를 들으니 양명학에 대한 맥락과 헷갈렸던 전습록 조목들의 의미가 잘 이해되었다. 1강은 양명의 전반기에 대한 내용이다. (전습록 1권 263쪽까지)

 

전습록 강의 첫째 시간. 인사와 소개로 시작했다.

문샘. 전습록을 읽기에 잘 되어 있지 않다. 일상적 현장에서 읽기 쉽지 않다. 논어, 맹자 정도만 동양고전에서 읽힌다. 텍스트 언어가 한자로 되어 있고 번역되어 있어서 덜 찾는다. 언어환경이 한자어 번역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제 방식으로 이야기 해 보겠다. 같이 공부해 볼 수 있는 지점을 찾으면서 강의하겠다. 현장과 어울릴 수 있는 내 사건 해결 실마리가 되는 공부로 하면 좋을 것이다. 이번 공부의 키워드는 마음인데 전습록이 이와 관련된다.

Q. 낭송 전습록을 이 책 전습록을 보고 썼나?

문샘A. 이 전습록이 다이다.

 

Q. 주자의 성즉리, 양명의 심즉리의 차이를 알고 싶다. 주자의 학문 이후 양명학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주자학을 모르고 양명학만 공부해도 되는가?

문샘A. (저의) 공부 시작은 현대문학이었다. 연구실에 와서 노선이 바뀌었다. 저도 논어를 읽기 전 전습록을 읽었다. 우주 유일의 고전평론가를 만나서. 공부에 차서가 있긴 하나 전제 없이 읽을 때 이해하는 것이 전제 있을 때 읽은 것보다 더 못하지 않다. 에세이를 쓸 때 최선을 다하면 70점 받는 학생이 공부한 후 70점을 받는 것이 최선을 다하면 80점 맞는 학생이 공부한 후 75점 받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나에게는 유일한 전습록이기에 괜찮다.

 

주자학은 성즉리가 핵심이다. 성은 마음에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마음은 성과 정의 측면으로 되어 있는데 성은 본원, 정은 작동하는 것이다. 성은 인의예지이며, 정은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이다. 우리는 한자어권에 접해왔으므로 본래 가지고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성이 100%, 정이 가장 좋은 때 99%이다. 이를테면 송나라 유학자들이 성을 기준으로 삼았고 이를 지향했다. 주자는 1130에서 1200까지 살았는데 12세기 남송 때 사람이다. 남송이라는 말에서 송나라가 정치적 영향력이 위축되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주자 사후에 원나라(한나라 입장에서 오랑캐(몽골)) 세계 제국 건설 후 주자학을 도입, 1313년에 관학으로 만들었다. 청나라 때 과거제 폐지를 할 때인 1907년까지 과거시험이 유지되었다. 주자학은 화와 이,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갈고 닦는데 쓰였다. 사유 안에 위계적 질서가 들어가기 쉽다.

중국은 당시에 천하였다. 즉 주자학에 외부가 없었다. 주자학은 어느새 훈습되어 주자 구도로 사유한다.

주자의 학문 스타일. 주자는 19세 때 소년 등과했다. 뛰어났다. 중국은 에서 매년 과거시험 향시를 보고 3년에 한 번 중앙관료 시험 회시를 보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주자는 중앙관료 기간은 몇 년뿐이고 주로 (일부러 공부하고자) 지방의 한직으로 있으면서 공부를 했다. 조선 유학자들 톱클래스 학문이 주자학이다. 왕양명 출현은 주자를 반대하려 한 것이 아니다. 성즉리 구도를 전복하고 심즉리를 제창했다. 심을 성과 정으로 되어 있다고 보면 혼탁해질 우려가 있다. 양명은 주자를 끝까지 밀고 나가보니 안 되었다. 이를 넘어서려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배우겠다는 마음이어야 텍스트가 보인다. 마음은 정과 닮아있다.

주자학에서 성을 이치로 할 때 무엇이 이치인가가 중요하고, 양명학에서 심을 이치로 할 때 무엇이 이치인가가 중요하다. 하여 심즉리가 등장했다.

주자는 죽기 3일 전까지 대학을 편집했다. 4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다. 3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한다. 당시 오랑캐와 불교 사상에 짓밟혔다. 주자는 평생 경전 주석 작업을 했다. 논어집주, 맹자집주, 대학장구, 중용장구 등이다. 송 때 목판 인쇄 기술이 폭발했다.

 

대학은 대인을 학문을 말한다. 대학은 예기경전의 한 편이었다. 이 한 편을 떼어 내어 편집했다. 장을 나누고 구를 새롭게 했다. 장구를 냈다. 주자학의 기본서 이후 유학의 기본서가 되었다. 대학은 대학장구로 중국사상사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 유학에서 어떤, ,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이 없었다.

대학은 3강령(목표)8조목(실천조목)으로 되어 있다. 대인은 명명덕(내 덕을 밝히는 것), 재친민(민들을 아껴주기위해), 재지어지선(지극한 선함에 머무는 것)을 공부하는 목표로 한다. 8조목은 격물(물을 격하다), 치지(앎에 이르다/투철하다), 성의(정성스런 생각), 정심(마음을 바르게 함), 수신(몸 수양), 제가(집안 질서 유지), 치국(나라를 잘 다스림), 평천하(천하가 평안해짐)이다.

 

유학은 전반과 후반으로 나눌 수 있다. 진나라 이전 공자, 맹자 1000년이 전반, 이후 주자학과 양명학 신유학 1000년이 후반이다. 도덕 군자의 학문을 이치로써 탐구하는 것이 신유학의 목표이다. 그런데 역사의 예상치 못한 아이러니가 있다. 주자는 발견했고 생각하지 못한 길로 갔다.

대학은 1750자로 되어 있는데 1000자 이상이 해설이다. 그런데 격물과 치지에 대한 해설은 없다. 주자는 이에 대하여 빠뜨려진 것이라 보았다. 예전에는 죽간으로 되어 있어 텍스트가 빠진 것을 모르고 종이로 옮겼다고 생각했다. 즉 망실되었다고 봤다. 주자는 3강령의 실천에서 첫째는 격물이라 봤다. 그리고 주자가 격물을 해석했다. 물은 이치를 갖고 있는 것’, 격은 이르다(, )’, 격물은 이치를 갖고 있는 것에 이르다.’ 로 해석했다. 자기의 궁금증으로 인해 썼는데 세상에 던져진 후 성인으로 가는 길,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 길은 주자가 만들었다. 4서가 경전으로 가는 사다릭라고 하였더. 경전은 성인의 말씀이다. 주자는 한 명의 해석자였는데 (조선)사람들은 이것이 본래 유학의 길이라고 보았다.

주자학과 양명학의 목표는 성인되기이다. 그런데 주자학에서 성인이 나온 적이 없었다. 단계가 있다. 양명학은 골대가 바로 앞에 있다. 이미 성인이다. 성인으로 출발해 매 순간 성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성인이 없다.

 

Q. 과정만 있나?

문샘A. 목표가 아닌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하므로 처음에는 이해하기에 좋다.

 

주자는 모르는 물건을 만났을 때 열심히 탐구해 보면 이치를 얻는다(치지)고 했다. 이치들이 처음에는 개별이지만 결국 물, 물이 연결된다(활연관통豁然貫通).

양명은 20대 때 대나무 격물로 열심히 격물치지 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주자를 의심하지 않고 내가 성인이 되기에 부족하구나.’ 했다. 20년이 지난 후 주자와 결별했다. 양명학은 문제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는다. 이는 순임금과 고수의 예에서 설명하였다.

젊은 양명에게 건달기(임협任俠), 말타기와 활쏘기, 불교, 도교, 문장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명나라 때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장수이고 활발발하였다고 한다. 유학은 이와 비슷하다. 공자는 2m 10cm , 55세에 추방, 68세까지 천하를 다녔고 건강한 신체와 세계관을 가졌다. 맹자도 20년간 천하를 돌아다녔다. 사마천은 중국을 세 번 돌아다녔다. 유학은 관념적인 학문이 아니다. 액티브하고 힘 있는 학문이다. 양명은 주자를 좇았는데 물의 이치를 모르겠다고 봤다. 귀주성용장에서 깨닫는다. (양명은 사대부집 출신이고 회시 1등인 아버지를 두었다.) 사물이 따로 있지 않다. 사물은 내 마음이 닿은 것이다. 마이크는 보는 순간 있다. 보기 전에 없었다. 물은 내 마음이 닿을 때 있는 것이다.

마음을 받는 게 물이고 내 마음이 바름을 얻는 것을 격이라 한다. 허기가 질 때 음식이 먹을 것으로 보인다. 강의 중 써야할 것의 바름을 얻는다. 강의 시간이라는 물의 바름을 얻기 위해 먹지 않는다. 이것이 격물이다. 격과 물이 같다.

양명학은 왕양명으로부터 시작된 학문이며 양명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주자와 양명학의 차이를 알기 위해 주자의 격물, 양명의 격물이 분기되고 있는 것을 살폈다. 무엇을 이치로 보느냐에 대한 차이로 인해 격물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양명의 격물치지는 순서나 단계가 아니다.

 

Q. 올바름이 일정한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닌가?

문샘A. 원래 이치가 아닌 것 아닌가. 매번의 사건으로서 닿는 것 즉 불변이다. 우리 언어 감각으로는 그때그때 다르다. 이것이 시중이다. 객관적인 것은 어디에도 없다. 이치는 사건마다 유일무이하다.

 

누군가 동시에 무엇을 가지고 싶을 때 전제는 사심이 없어야 한다. 갈등이 있다? 치양지는 싸우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도 다른 길이 없다고 해서 행동했을 때 결과적으로 좋지 못할 수 있다. 못 얻었을 때 다음 번에도 길이 같지 않다. 치양지 실현 자체로 이미 보상되었다.

 

본체는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랩이 씌워져 있는 것이다. 몇 겹이 있을 때 점점 본체를 가려 보지 못하게 된다. 양지를 실현하고 싶지만 다섯 겹의 사용이 있을 경우 사욕의 결과인 것이다.

 

문샘Q. 여기 어떻게 오셨나?

A. 살고 있는데 뭔가 아닌 것 같은 생각으로 왔다.

문샘. 그게 양지이다. 양지는 시비지심이다.

 

Q. 36쪽 사구교에 대하여 궁금하다.

문샘A. 여중은 원래 다 무라고 하였으며 근기의 사람에게 해당된다. 이는 불교 쪽이고 양명 좌파로 부른다. 전덕홍은 원래 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보통 대다수에 해당하며 근기의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자학 쪽으로 기운 양명 우파이다.

강화학파가 양명학파인데 조선 양명학은 우파이다. 둘 사이에 위계가 없다.

성인도 배워서 알아야 한다. 타고난 근기는 다르지만 앎에 도달한 지점은 다르지 않다. 성인은 크기가 아닌 재질의 차원이다. 자신이 가진 양지를 발휘하는 것이 치양지이다.

 

Q. 퇴계 선생에 대하여 궁금하다.

문샘A. 퇴계 선생은 전습록을 적게 보셨다. 조선 초 국운 상승기에 주자학이 충분한 학문으로 잘 작동했다. 선생은 주자학 안에서 양명학을 부정하였다. 그런데 이발기발을 말하였다. 이는 반주자학적이다. 나중에 퇴계는 자기도 모르게 주자학을 넘어가 버렸다고 하였다. 주자학의 한계는 외부가 있다는 것이다. 유한한 학문이다. 양명학은 외부가 없다. 무한한 학문이다.

 

21조목 거울 이야기 처럼 성인은 미리 예측하지 않는다99조목에는 순금 비유가, 101조목에 풀 뽑기 이야기가 나온다. 65조목은 갈림길 이야기로 한 걸음 가야 갈 수 있다. 양명 전반기는 지행합일이 핵심이다.

댓글목록

자등명님의 댓글

자등명 작성일

우와~~
자세한 후기 고마워요
덕분에 한번 더 복습해요^^

srsohn님의 댓글

srsohn 작성일

아직도 잘 와닿지 않는 격물, 양지, 그러면서도 실천적이라는 양명학..
꼼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