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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5부 강의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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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베어헉 작성일23-12-10 00:10 조회8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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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5부 강의 후기

  

신에 대한 지적 사랑에 도달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3종 인식에 다다랐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1종 인식 ; 상상,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인식

2종 인식 ; 이성, 이성적 인식

3종 인식 ; 직관, 세계는 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사물을 통해 양태로서의 독특성과 보편성을 한 번에 인식

  

스피노자는 1-4부에서 원리적으로 적합한 인식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논리를 펼치면서도 5부에서는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

 

 부처님에게는 수동적 정념이 없으셨을까? 있었지만 바로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3종 인식을 가진 사람; 이성의 인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지적 사랑으로 인한 자유인, 정념을 겪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겪으면서도 적합한 관념이 늘 우세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자라를 보고 놀랐어도 (수동적), 적합한 관념으로 솥뚜껑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 지복을 누리고 마음의 갈등이 없다

  

공통통념; 나한테 어떤 특정한 능력이 계속 생산되는 것. 내가 더 잘 존재하려면 공통통념을 확대함으로써 변용능력을 키워야한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신체들과 관계를 맺어야한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나의 역량이 감소하는 것 같은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다. ex) 취향에 맞지 않는 음식, , 사람 등,

변용이 지나치면 나를 해체할 수도 있지만 치사량에 다다르지 않는 정도라면 변용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스피노자에게 죽음은 해체이다, 끝난 게 아니라 다른 상태로 변용된 것이다. 일시적인 자아가 무너진 상태)

예민한 건 재능이다?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원인을 포착하고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재능임에는 맞는 말 하지만 (개복치는 파도가 세게 치면 죽음) 변용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민하면서 존재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어야한다. 예민하기만 하면 곤란하다.

 

 8-90년대의 대학에서 철학 공부는 칸트를 위시한 독일철학 공부였다- 인간중심의 철학, 인간만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철학. 과연 그러한가?

, ‘침팬지 politics’, 프랜시스 드발; 침팬지가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책, 침팬지의 우두머리는 수컷이지만 그 수컷은 두목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암컷 집단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냄, 절묘한 균형, 아메바도 아메바에 적합한 이성이 있다고 이야기 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인간에 의해 통일될 수 있으며 그것은 절대정신에 의한 것이다, 결국은 신학적 귀결이 있을 수밖에 없다.

17세기 철학적 상상력은 풍부한 시대, 스피노자에게 죽음은 해체, 변용이며 가벼운 것. 침팬지, 돌맹이가 죽는 것도 마찬가지; 해체와 변용, 같은 평면에 놓임, 인간이 특별하고 특출난 게 없어짐. 하지만 각각의 양태로서 표현될 때는 각각이 표현하고 있는 신의 다양성이 있다. 인간의 죽음과 침팬지의 죽음을 같다고 볼 수 있는가? 현상학에서 인간은 역사 속의 인간이다. 평소에는 국가관념이 매우 희박하여 나라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하다가도 월드컵만 시작되면 곧장 한국인이 된다. 이런 걸 쥐고 있는 인간의 죽음과 침팬지의 죽임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는가? 스피노자에게는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반면 17세기 철학자들에게는 특별하다.

21세기는 인류세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홍적세 끝단이지만 지금 인간은 지질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치킨 닭뼈가 대량 퇴적 되어지고 있는 치킨세^^ 인류세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이 바로 데카르트를 비롯하여 인간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고전주의 (by 푸코) 철학들이다.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별칭은 야생적 별종이다, 인간의 특별함, 인간 주체성의 위대함만을 부르짖던 사조에 맞서 그것을 무너뜨리는 이단자, 무신론자.

(, ‘철학자들의 신’, 에티엔 제송의 강의록; 스피노자에게는 철학이 종교였다.)

스피노자의 자유는 나 혼자 누리는 어떤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자유에 대한 상상적인 통념은 내 맘대로 하는 것이다. 반면, 스피노자의 자유는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자유는 비가역적인가 가역적인가?

내가 자유인이 되었고 3종 인식을 얻었다면 이 상태에서 다시 상상적인 단계로 추락이 되느냐? 아니면 되돌아갈 수 없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은 다음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한 번 깨달았으면 계속 가는 것이냐? 결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1종 인식과 2종 인식 사이는 완전성을 갖춘 상태가 아니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통념을 형성한다는 것은 주체의 관점에서 보면 나의 존재역량, 나의 코나투스를 확대시킬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하고 조직하는 것; 내 일상을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 좋은 사람과 좋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나의 코나투스를 계속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을 해야한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한다.

수동적 감정,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원인들을 찾아내야한다. 보통은 수동적인 상태에서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자신을 슬픔이라는 감정에 맡겨버린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구원이다.

인간한테 절대적 자유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절대적인 자유는 근본적으로 불가능 vs 절대적 자유는 가능

수영을 배우면 물에서의 변용 능력이 뛰어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유를 다양한 분야에서 확대해 나가려고 노력하면 된다. 역량이 강화되고 자유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을 능동적으로 뚜렷하고 적합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은 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스피노자가 가지고 있는 아포리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아포리아; 대화법을 통하여 문제를 탐구하는 도중에 부딪치게 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로이 탐구하는 출발점이 된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물질계는 기계적 질서를 따르므로 목적이 없다. 그냥 규정된 직무만을 수행할 뿐이다. 스피노자에게 어떤 것은 늘 인과의 결과다. 이 역시 기계적이다. 스피노자의 실체도 목적이 없다. 그런데 부적합한 것에서 적합한 것으로 인식을 이행시켜야한다.

목적론과 기계론 사이의 충돌이 해소되지 않음

모든 철학자에게는 자기만의 아포리아가 있다.

신은 목적 없이 자신을 자연으로 펼칠 뿐, 본성의 필연성에 의할 뿐, 인과에 의하여, 주체도 목적도 없는 상태,

나의 감정과 인식은 모두 변용의 결과이다. 이 감정은 어떤 것의 원인이며 그 원인도 그의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주전체가 들어가게 되고 그래서 나의 감정에 대한 인식이 커질수록 전체에 대한 인식이 커진다. 인식이 크면 클수록 신에 대한 사랑은 커지는 구도가 나오게 된다. 나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변용을 하면 할수록 커지게 된다.

  

내가 변용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의 독특한 개체성은 사라져야할 것인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현자가 아닐까? 내가 나라고 말 할 수 없는 지점이 아닌가? 공통관념이 커질수록, 신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개념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by 선희샘)

  

-신에 대한 사랑 vs 공유불가능한 독점적인 사랑(정념적 사랑)

댓가를 바란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사랑, 쉽게 변하므로 유한하다. 인간들 사이에서 정념적 갈응의 원인이다. 이 정념적 사랑이 우리 존재 수동성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남이 그렇다고 하는 걸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유행, 여론조사를 이용(악용)하는 원리임

 

 3종 인식; 정신의 최고의 노력 및 최고의 덕은 3종 인식을 써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경지가 아닐까? 우리는 개체들보다 많이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신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된다.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신이 가진 역량을 인식하는 것

  

5부에서 1부로 순환되는 구조이므로 1부부터 다시 읽을 것을 권함, 네들러

  

지혜로운 자유인과 예속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혜로운 자유인이 삶의 원인에 따라서 주어진 삶을 향유한다면 후자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평정심을 잃고 산다.

 

그 동안 강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자등명님의 댓글

자등명 작성일

꼼꼼하게 정리하셨네요
다시한번 복기 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