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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환샘-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론 수업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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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필벽성옥 작성일13-06-15 04:17 조회3,96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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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환샘- 나쓰메 소세키 수업후기
2013-6-13 박 성 옥
문학이란 무엇인가 -<마음>을 중심으로
  문리스샘의 강의를 들으러 가면서 차안에서 우리의 토론은 시작되었다. 첫째, <마음>의 선생은 근대적 인물인가 아닌가. 누구는  선생이 지독한 자의식과 몸과 마음이 분리된 정신적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대적 인물이라고 주장했고, 나는 전통적인 양심과 윤리를 저버리지 못하고 죄의식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근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상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마음>의 선생은 왜 자살을 했는가. 누구는 개인주의적 글쓰기를 했던 나쓰메 소세키가 왜 선생이 천황 따라 순사하는 식으로 썼는지 이상하다고 말했고, 나는 그 선생의 자살이유는 K에 대한 죄의식인데 부인에게는 그 사실을 밝히기 싫어서 순사처럼 위장하는 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고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 우리들은 문리스샘이 어떻게 이 작품을 해석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먼저 강의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1. 근대라는 시대적 배경의 중요성
  문학을 연구하는 방법론을 두 갈래로 나누면 역사주의비평과 형식주의비평으로 나눈다. 역사주의 비평은 문학작품이 어느 시대에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작가의 무의식적 지반이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작품해석의 단서를 찾는 방법인데 이 방법론의 한계는 작가의 경험이 꼭 작품 속 캐릭터와 일치하지는 않으며, 창의적 상상력이라는 영역이 있다는 점이다. 한편 형식주의비평은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는 입장이다. 작품 자체의 구조적 완결성을 중시해서 작품만 분석한다.
문리스샘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사생활을 중시한다면서 다소 역사주의 비평론에서 나쓰메소세키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세키는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1868년 직전에 태어났다. 소세키가 살았던 연도(1867~1916년)는 매우 중요하다. 소세키가 나중에 일본 화폐에 모델로 등장한다는건 적어도 일본이 최고의 자랑으로 여기는 근대사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물로 국민적 합의를 보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러일전쟁, 청일전쟁에 이기면서 동아시아 2등 국가에서 세계 1등 국가로 올라간다. 중국과 조선과는 다르게 일본이 성공한 근대에 진입했던 이유는 전근대적 유산에서 가장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은 전근대에 최적화된 보수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더 근대로 이행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문학작품을 볼 때 어느 나라의 작가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은 불과 100년 이내의 인식이다. 문학에 언제부턴가 강력한 국가주의 (nationalism)를 가동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근대를 시작할 때 국가가 없어지고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국가주의가 민족주의로 작동한다. 따라서 소세키가 문학에 대해 던진 질문은 동아시아에서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2. 근대라는 시대와의 불화
  처음에 긴노스케라는 이름이었다가 버려졌다가, 양자로 가서 시오바라가 되었다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왔어도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했다가 형들이 줄줄이 죽고 나서 겨우 자기 호적에 오르는 소세키의 기구한 스토리는 생략하기로 하자. (나눠준 강의안에 소상히 적혀있다.)
  아무튼 이름의 변천사는 근대 이전에는 평민들이 성을 쓰지 않아서 아무 문제가 안되었는데 메이지가 되면서 누구나 호적을 올리는 걸로 바뀌면서 생긴 일이다. 소세키가 시대와 불화한 첫 번째 문제가 이름이었다.  소세키는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호적을 파서 홋카이도로 옮긴다. 폐병 걸린 친구도 청일전쟁에 종군기자로 참가하는 마당에 그는 거꾸로 시골학교 교사로 내려간다. 일본 정부가 장학금으로 영국유학을 시켜줬어도 제국대학 교수가 되지 않고, 중년이 다 되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39세부터 50세 죽을 때까지 12년간 작품활동을 한다.
3.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세키는 한학을 배운 사람이다. 그가 공부한 좌,국,사,한은 역사책이면서 동시에 정치사회학 텍스트였고 문학이었다. 하지만 소세키가 영국에서 만난 문학은 그가 생각했던 그런 문학이 아니었다.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든 소세키는 자기 시대에 정면으로 문제를 던진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남들은 문명세계인 서양의 문학을 의심없이 들여와서 그걸 본떠서 작품을 쓰려고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그것은 아류일 뿐 오리지널이 될 수 없다. 일본도 서양을 따라가는 1세대 복사본이라는 콤플렉스가 있다. 그는 영문학을 본뜨지 않고 자기만의 소설을 썼다. 19세기 근대가 아니라 오히펴 18세기 전근대의 서양소설에 관심이 많았으며 다른 가치와 가능성을 탐구했다. 소세키는 누구나 맞다고 하면서 가는 길에 대해 불편함을 제기했다. 그래서 근대소설은 보통 언문일치로 쓰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전통적 文의 감각으로 고어체로 썼다. 고양이의 눈은 근대를 불편해하는 외부의 시선이다.
  소세키는 엄밀히 말해서 소설가가 아니다. 소설,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의 문(文)을 쓴 문인이다. 소세키는 ‘근대문학은 소설이다’라는 생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광수가 서양문학(literature)에 기초한 소설을 쓴 것과 비교해보라. 조선에서는 나중에 1930년대에 와서야 이상이 “근대라는게 뭐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마디로 소세키는 질문을 만드는 자다.
 
 이렇게 문리스샘이 강의를 마무리하자 질문이 빗발쳤다. (A반은 무슨 질문이 그리 많냐고 궁금해 하는 B반 친구들을 위해 잠깐! )
 
(질문1) 이광수가 <문학이란 何오?>에서 문학을 ‘literature의 실천’으로 규정했다면 소세키의 <문학론>에서는 문학을 뭐라고 했는가? => “문학은 F+f'”라고 했다. 서양은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 사조의 변천이 있었다. 근대화의 기간이 짧았던 일본은 여러 사조가 같이 들어와서 동시에 공존했다. 낭만파와 자연파는 적대적인 사조인데 일본에는 섞여있는 기이한 현상이 존재한 것. 그래서 소세키는 순서대로 밟는게 자명한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근대는 본래 어떠해야 한다는 인식을 벗어나 새로운 물음을 던질 수 있었다.
 
(질문2) 소세키 작품에는 병적인 자의식, 지식인들의 냉소주의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시대와 개인의 간극인가, 작가 개인의 품성인가? => 전자로 본다. 근대는 파편화되는 시대다.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고 개체의 탐구가 중시된다. 근대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모던소설.
 
(질문3) <마음>의 선생이 죽는 이유가 과연 메이지정신에 따른 순사인가? => 소세키의 개인주의가 묘하게 국가주의로 변환되는 부분이 있다. 선생이 죽는 것은 자기 시대를 변혁시켜 주었던 혁명정신으로서의 메이지정신에 대한 빚 때문이다. 변질된 메이지 시대가 아닌 메이지정신!
4. 이어지는 생각들
  우리가 알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침류수석)이라는 이름도 원래 ‘돌을 베고 물로 귀를 씻는다’라는 침석수류의 뜻을 비틀어서 ‘물을 베고, 돌로 귀를 씻는다’고 패러디한 닉네임이다. 이는 소세키가 일본의 근대적 흐름과 불화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갈 것을 암시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비주류의 길을 갔다. 제국대학 출신에 해외유학파였지만 부와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세키가 홋카이도로 호적을 옮긴 것을 요즘 병역회피를 위해 원정출산하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당시 홋카이도주민은 병역의무조차 면제됐던 아주 열등한 원주민이었다. 제국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본토 국민자격을 버리고 하급 계층으로 내려간다는 의미다. 소세키는 무모하게 군국주의로 팽창해가는 일본을 경계했던 것이 아닐까.
  <마음>, <산시로>, <그후>, <문>등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개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생각은 많으나 행동은 늦다. 등장인물들은 신경쇠약과 위장병을 앓았던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근대의 빠른 변화에 한 발 늦게 대처하는 부적응아라고 할까? 모두가 휩쓸려가는 근대를 거슬러간 풍운아라고 할까?
  <마음>부터 읽은 사람은 소세키가 매우 비관적이며 골치아픈 지식인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제일 잘 나타나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근대와 거리를 두고 세태를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는데 어둡지 않고 경쾌하다. 그리고 100년 전 소설 속의 인물들이 고민했던 갈등이 현대인의 내면과 너무도 비슷하다는게 놀랍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이 몽매한 민중을 각성시키자는 계몽소설의 스타일에 매몰된 것에 비해 소세키의 소설은 철저히 개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세련되게 느껴지고 공감을 얻는 것 같다.
  그리하여 밤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다시 토론을 했는데, <마음>의 선생이 근대적 인물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문리스샘의 말대로 근대는 내면의 시대이며, 타인의 내면을 내가 더 잘 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 아닌가. 그러니 해석은 각자 독자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은 하루 종일 과도하게 머리를 쓴지라 수구태단재순상 부위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며 기단핍력의 지경에 이르러 부득이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급히 몸을 식혀서 신지혼미를 막았다는 뒷소식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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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벽성옥님의 댓글

필벽성옥 댓글의 댓글 작성일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좀 공부해야겠네요. 담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