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목성 / 1학기 4주차 후기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목성.png

24 목성 / 1학기 4주차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등명 작성일24-03-11 14:32 조회158회 댓글4건

본문

안녕하세요. 목성 4조 윤정임입니다.

공동체가 살아있었던 바이살리나 쿠시나가라 처럼 올해 목성은 많은 도반들이 자원방래하여 복작복작 활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도반들의 얼굴이 앎을 향한 열정으로 릿차위족의 청년들처럼 반짝거립니다. 도반들과 함께 걸어갈 1년이 기대됩니다.

목성에서 불교와 주역 공부를 하면서 거대하고 심오한 세계의 흐름과 파동에 접속되어서, 그 세계의 인식과 언어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이전 시간까지는 이기적인 모습에 대해 죽비를 맞다가, 이번 시간에는 이기적인 자아에서 벗어나 공동체로 확장되는 단계를 거쳐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 커다란 진동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길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교시 청년 붓다. 열반]

남이 해준 백 마디 말보다 내가 한 질문 하나가 나를 이끌어 간다.”

우리에게 현저히 부족한 것은 스토리 능력 즉 배운 것과 내 삶을 연결하는 힘이 약하다.

? 질문을 안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안하는 이유는 지식과 내 삶, 내 몸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질문이 선()이다. 질문을 했는가 안했는가가 선·악을 나누는 기준이다.

 

연대기가 없다.

붓다의 법문은 연대기가 없다. 오로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길 위의 설법으로 채워진다. 붓다가 깨달은 법은 구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45년이 한결같아서 연대기적 분류가 무의미하다. 팔만사천법문은 방편지(方便智)이다. 중생의 근기와 조건에 맞게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려면 그 사람이 정확히 어떤 괴로움을 갖고있는지 완전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타심통이고 자비이다. 통찰이 없으면 자비로울 수 없다. 타인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대반열반경>에 와서야 비로소 연대기적 서술이 이루어 진다. 붓다는 35세에 이미 완전한 자유인 유여열반(有餘涅槃)에 드셨다. 35세에 생사를 여의셨다. 우리는 왜 죽음이 두렵지? ‘이라는 것을 실체화하기 때문에 괴롭다. 생에 엄청나게 의미를 부여한 것만큼 죽음이 두려워진다. 생에 의미 부여를 안 한 사람, 생에서 누린 게 별로 없는 사람은 생에 대한 애착이 많지 않다. 열반은 욕망의 모든 불꽃이 완전히 꺼졌다는 뜻이다.

이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시기 위해 2년여의 여행을 떠나신다.

  

열반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난 바이살리 쿠시나가라

붓다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것을 너무 기뻐하셨고 특히 바이샬리를 사랑했다. 바이살리는 가장 공화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시스템을 갖고 있었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쿠시나가라는 도시에서 열반에 드는 이유를 아난다에게 설명한다. 마하수닷사나라는 전륜성왕이 다스리던 곳인데 열가지 소리가 끊긴 적이 없었나니....북소리, 류트소리, 노래소리...그리고 열 번째 잡수세요, 마시세요, 드세요라는 소리였다.”

붓다가 이런 도시 이런 공동체를 귀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체와 그런 관계가 바탕이 된 삶에서 깨달음을 향해 갈 수 있다. 그런 토대가 없는 사람이 수행을 해서 아라한이 되면 자기밖에 모르게 된다. 자기의 해탈 외에는 생각하지 않아서 소승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그 토대가 뭔지 모르는 것이다. 복덕을 짖지 않으면 절대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공덕을 먼저 지어야 된다. 조건없는 증여(말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가 있어야 된다. 조건 없는 나의 보시와 공덕이 같이 되어야 깨달음으로 갔을 때 붓다처럼 대자비를 펼칠 수 있다.

 

춘다의 공양

붓다는 춘다에게 최후의 공양을 받고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춘다가 자책하지 않고 원성이 돌아가지 않게 수자타의 우유죽과 함께 가장 고귀한 공양으로 변주하신다. 이것이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이다. 똑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이 붓다의 지혜이고 자비이다. 부처님의 무수한 보시 :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에게 먹히는 사건을 호랑이의 굶주림을 구해줬어로 스토리를 바꿔버렸다. 신통력을 발휘한 것이 아닌데 이보다 더 신통할 수 없다.

 

완벽한 소멸

인간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인간의 소멸이 이보다 더 위대할 수 있나? 지수화풍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몸은 노쇠했고 이질과 설사로 기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붓다는 너무 자상하고 친절하게 마지막까지 제자들에게 질문하라 하신다.

붓다의 마지막 메시지 자등명, 법등명, 용맹정진해라.

완벽히 소멸한 붓다는 이제 오로지 법으로 존재 한다. 법신으로 법의 파동으로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작용하지 않는 것인가? 보이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영향을 어마어마하게 받는다. 그런 훈련을 많이 해야 법신을 만나게 된다.

 

질문1 마음이 괴로운 원인을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 분석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잘 모르겠다는 건 덩어리로 얽히고 설켜 있어서 피상적인 수준이다. 집중을 대충하면 덩어리로 보인다. 통찰은 뚫고 들어가는 것이다.

질문2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관찰하다 보면 내식으로 보게 된다.

: 관찰은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내려놓고 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감시가 된다나의 편견은 뭔가? 뭘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가? 사심 없이 관찰하려면 타당한 기준을 세워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이로움을 주나, 내가 원하는 식으로 움직이나, 내 편을 들어주나를 설정해 놓고 공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파를 만드는 것이다.

질문3. 부처님이 법신으로 존재한다는 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가?

: 부처님 이전에는 수행을 통해 열반에 이른다는 길이 이 세계에 정보로 없었다. 부처님이 그 길에 도달했고 설파했고 온전히 몸으로 구현해서 그 길을 보여줬다. 부처님 이후에는 열반의 코스에 관한 무수한 정보가 부처님의 법이 매트릭스 안에 가득하다. 우리는 접속만 하면 된다.

질문4. 서원을 잘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서원은 방향 설정이다. 갈 수 있는 만큼 가는 것이다. 방향만 안 바꾸면 서원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하찮게 여겨서 욕망이 나라고 설정하고 내 수준에서는 이 만큼만 하겠다고 타협한다. 이미 길이 열렸다. 최고의 진리-윤회계를 벗어나서 열반에 이르는 길-가 있으면 그 길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질문5. 부처님 말씀의 핵심은 지혜와 자비인가?

: 지혜는 통찰, 자비는 무한한 공감이다. 남을 살리는 것이 자비다. 지혜는 얻으려면 공부를 해야하고, 자비는 내 옆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

질문6.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반야심경, 금강경을 뜻을 모르고 게송으로만 외우셨는데 해탈하셨을까?

: 마음은 편하고 자비심은 일어날 수 있고, 염불 수행이 직관을 열어주는 힘이 있지만, 뜻을 모르면 통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2교시 주역]

<주역의 용어 문법>

*소인, 대인

소인: 나만 생각한다.

대인: 나를 생각하는 것은 같은데 나의 사이즈가 크다. 온 우주, 온 생명계를 모두 나라고 생각한다.

*,

: 밖으로 가는 것, 내괘(하괘)에서 외괘(상괘)로 가는 것

: 안으로 오는 것, 외괘(상괘)에서 내괘(하괘)로 오는 것

*양효, 음효의 해석

양효: 나쁜쪽으로 가면 포악할 수 있지만 좋은 쪽으로 가면 능력이 있고 머리도 체력도 좋고 일도 잘하고 실무능력이 있다.

음효: 나쁜쪽으로 가면 집착을 하는데 좋은쪽으로 가면 자기를 비운다. 음효가 잘하는 건 자기가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청한다.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주역을 공부하다 보면 고정된 사유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

 

11. 地天泰: 원활하게 소통이 이루어지는 때이고 군자에게 좋은 상황

12. 天地否: 꽉 막힌 때이고 군자가 살기 힘든 상황, 막힌 상황

두 괘의 구성은 하늘 하나, 땅 하나로 되어있어서 비율은 똑같다. 그런데 성분이 중요하지 않다. 어떤 관계를 어떤 위치에서 맺고 있는가에 따라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태괘는 양효가 아래에 있어서 올라가려고 하고 음효는 위에 있어서 아래로 내려오려고 해서 소통하고 교류하게 된다. 음양탕의 원리와 같다. 뜨거운 물과 찬물의 운동성.

비괘는 제자리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 대화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아서 섞일 길이 없다. 운동성이 없는 것이 막힘이다.

 

태괘 九三, 艱貞无咎, 勿恤其孚.

세상의 변화를 안다면 주도면밀하게 생각하는 것, 만만하게 대충 보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걱정만 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아니라 먼저 변화를 잘 읽고 면밀하게, 공들여서, 어렵게, 분석하고 할 일을 하면 저절로 믿음이 생긴다. 내가 할 일과 하면 안되는 일이 구분이 된다.

 

비괘 九五, 其亡其亡, 繫于苞桑

기망기망은 노심초사가 아니다. 비괘의 군주는 우환의식이 있다. 지금의 위기를 잘 알아서 흔들리지 않게 나를 묶어놓는다.

 

보리수나무는 세계의 중심에 있다. 다른 곳 보다 흔들리지 않는 곳이다. 부처님도 그 자리에 가서 도움을 받아서 관계성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자리를 선정하는 일에도 고심하고 조심스럽게 살피는 것이 지혜다. 우리는 아무 데서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고 권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앉을 자리 하나도 감응해서 알아내는 게 지혜고 관계성이고 뛰어난 자의 증거다.
댓글목록

춘삼이님의 댓글

춘삼이 작성일

윤정샘께서 마음으로 깊이 체득하신 것이 느껴집니다. ^^
우리 함께 교감하며 통찰력을 키워나가 보아요~~

혜정님의 댓글

혜정 작성일

정성스럽고 꼼꼼한 후기 쓰신다고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바둑인문학자님의 댓글

바둑인문학자 작성일

수업을 다시 듣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리 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민정님의 댓글

김민정 작성일

우와! 질문들에 대한 답변까지 이렇게! 정리해 주신 내용들이 정말 깨알 같은데다 핵심이 팍팍~ 고맙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