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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후기 by 채운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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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각통 작성일13-09-01 19:34 조회3,785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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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 신이치와 재레드 다이아몬드를 통해 보는 인류학
- 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중심으로
 

『총, 균, 쇠』 vs 『곰에서 왕으로』- 충돌로 볼 것인가!
『총, 균, 쇠』를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나카자와 신이치의 『곰에서 왕으로』를 읽고 난 직후여서 그랬던 것 같다. 신이치는 대칭성 사유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데(게다가 크게 공감한 상태였는데),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환경 결정론에 입각해 인류학을 설명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특히, 『총, 균, 쇠』는 저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많은 객관적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당신 말이 옳아요!’라고 믿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조별 모임 내내 거론되었던 이 문제에 대해서 채운샘이 명쾌하게 답을 내주셨다. 어떤 책을 접하든 맹신하지 말라고. 어떤 책도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다만, 질문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니체를 읽고 나면 부조리한 세상에 진절머리가 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꼬리에 물리는 생각은 ‘그래서 어쩌라고?’이다.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서술하지만, 그 다음 행보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니체는 말을 할 뿐이다. 마치 추장처럼! 질문을 만들어 답을 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총, 균, 쇠』역시 그렇게 만나면 된다.  
 
『총, 균, 쇠』는 “왜” 동아시아에선 자본주의 양식이 발달하지 않았는가? 혹은 “왜” 유럽은 비유럽을 정복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질문에서 두 가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질문을 “왜”에서부터 시작하면 결정론에 근거해 답을 제시하게 된다는 점이다. 던진 질문을 쫓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물론 우연히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무튼 논리를 세우는 내공은 대단해질 듯;;) 또 다른 문제는 자본주의의 발달을 전제한 질문이라는 거다. 자본주의를 당위로 놓게 되면, 나머지는 모두 결여로 치부하게 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과’ 대신 ‘연기’를 말한다. 어떤 사건은 무수히 많은 (알 수 없는) 것들이 작용해서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인과를 남용하곤 한다. 집이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갔다, 결혼을 잘못해서 불행하다 등등. 집이 가난한 모든 아이들이 대입에 실패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불행한 이유가 오직 결혼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질문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지가 중요하다. ‘질문을 만드는 힘’이란 화두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공부의 핵심인 것도 같다.
 
국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나카자와 신이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사를 볼 때, 국가가 생기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겠다. 국가 이전에는 곰이 권력을, 국가 이후에는 왕이 권력을 가졌다. 국가 이전이라고 해서 권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권력 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다시피 국가 이전에는 샤먼과 추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추장이 일상의 시간에 존재했다면, 샤먼은 신화적 시간 즉 상징의 시간에 존재했다. 샤먼의 시간은 밤, 겨울, 축제, 의례와 같이 일상적 코드가 깨지는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이때는 위계가 사라진다. 사람들은 추장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는다. 왜? 이를테면, 환기를 하는 거다. 너의 권력이 절대 권력이 아님을 기억하라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화적 시간을 가졌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권력’이 산산조각나는 시간을 겪어야 환상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자타임 같은 것이 나온 건가 싶기도 하구. ㅋ;
 
이 와중에 국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샤먼과 추장 사이에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한 것이 바로, 국가다. 신화와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서 출현한 것. 고로, 국가는 절대로 진화적 산물이 아니다. 그 균형이 깨진 원인은 무수히 많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원인을 ‘총’, ‘균’, ‘쇠’ 세 가지로 함축하여 설명한다. 국가의 탄생을 이렇게 결정론으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위에서도 언급했던) 불교의 ‘연기’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국가는 무수히 많은 알 수 없는 작용에 의해 출현했다는 것. 그 원인을 무엇, 무엇,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길에 심어진 은행나무를 보자. 같은 공간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마다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성장의 정도, 단풍이 드는 시기, 열매의 양 등등! 이 차이를 단 하나의 이유로 말할 수 있을까? 햇빛 혹은 물 혹은 영양분의 차이, 유전자의 차이, 그 외에도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원인들이 있을텐데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가 탄생한 무수히 많은 원인들 중 총, 균, 쇠가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문명으로 설명할 것인가! 문화로 설명할 것인가!
말하자면, 나카자와 신이치는 ‘문화’에 집중했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에 집중해서 세계를 바라봤다. 문화의 핵심을 문자로 본다면, 문명의 핵심은 역사라 할 수 있다. 먼저, 문자(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르네상스라 불리던 15~16세기의 유럽은 우리 생각과 많이 달랐다. 흑사병이 지나간 유럽은 황폐했고, 살육과 약탈이 난무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들은 뭘 좀 뺏어보려고 아메리카로 간다. 사고방식이 달랐던 원주민들과 말이 통할 리 있었겠는가? 땅 문서를 가져오라고 해도 문자가 없는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해서 그들이 작위적으로 문서를 만들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거나, 노예로의 가치조차 없으면 죽인다. 이것은 땅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명과 야만의 만남도 아니었다. 문화와 문화의 충돌이었던 거다. 결과는? 문화적으로 우월하다 생각했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흡수해버린다. 우월한 문화의 중심에는 ‘문자’가 있었다. 문자가 있음으로 해서 발전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런 방향 있음이 우월한 거라 생각했다. 역사는 어떤가? 우리는 역사를 설명할 때 족보를 따진다. 계보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리적이며, 역사라고 부를만 하다고 인정한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앎’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거다. 그래서 대충 뭉뚱그려 설명하는 것을 역사라 부르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두 사람이 그들의 의견에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에 차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옳고 그르다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 둘은 함께 가고 있으니까.
 
채운샘 설명 중 인상적인 것은 ‘사고의 일원화’ 부분이었다.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불통은 문자가 없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 상상해보자. 지금 당장 미국 LA에 가면 (어설픈 영어 실력 때문에)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먹고 지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아마존에 가면 언어 문제를 차치하고 의식주 자체에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일까? 그것이 바로 사고의 일원화 때문이다. 지구촌, 지구촌 노래를 부른 덕일까? 소통과 공감을 넘어 그냥 다 비슷비슷해졌다. 사고방식이며 식습관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대충 이해가 되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당장 지내기 편하니까, 좋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니까’라며 자족해야 할까?
 
야생을 지키려는 자발성은 없었는가!
조별 토의 시간에 떠오른 또 하나의 쟁점은 자발성 여부였다. 우리는 환경적으로 유리해서 문화,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은 유라시아 지역 모두가 ‘근대’를 받아들였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어떤 종족은 가장 단순한 기술을 가진 수렵 채집민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는 점에 의문을 가졌다. 이러한 태도를 야생의 사고를 지키려는 자발성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예외적 상황을 얼렁뚱당 넘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렵 채집민들이 플린더스 섬, 태즈메이니아, 오스트레일리아 동남부 등으로 이주한 경우에도 환경에 따라 전멸하기도 했고, 근대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기술을 가진 수렵 채집민으로 되돌아가기도 했고, 수로를 건설하고 어장을 철저히 관리하여 생산성을 높이기도 했다. 물론 인간 사회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들은 무수히 많으며, 대륙마다 그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내 보기에는 그중에서 다음 네 가지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인 듯하다. 첫 번째는 가축화 -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차이다. 두 번째는 확산과 이동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세 번째는 각 대륙 ‘사이’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네 번째는 각 대륙의 면적 및 전체 인구 규모의 차이다.”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p.593)

예외적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 대륙의 차이점들을 모조리 나열해도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근대화에 대한 자발적 거부, 그것은 야생을 지키려는 의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은 다음 강의를 통해서 더 이야기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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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업적은 무엇일까? 그는 과학으로써 인류학을 바라봤고, 그 집요한 힘으로 『총, 균, 쇠』란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또 하나의 길을 만든 셈이다. 선생님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삶을 한번 기술해 보라 하셨다. 세균의 입장에서, 혹은 화학물질의 입장에서. 그렇게 시선을 달리하면 완전히 다른 글이 나오게 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러면 ‘리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을까. ^^ ;
 
이번 시간에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봤다면, 다음 시간에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특히, ‘균’에 대해 심도깊게 다루게 될 것 같다. 우리는 균에 대해 일종의 불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멸균, 살균, 박멸에 힘쓰고 있는 걸 거다. ^^; 보통 우리는 보이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낀다. 같은 측면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균은 타자이면서 자기 안의 타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불안 요소이지만, 우리는 지금껏 균과 공생하며 살아왔다. 그것을 타자로 인식하면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미래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 (채운 샘이 다음 시간에 말씀해주실 것으로 믿고 ^^)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 『총, 균, 쇠』를 읽는 중에 특히, 균에 집중력을 발휘하면 좋을 것 같다. (이미 완독하신 분들도 많으신 것 같지만 말이다. 대단~)
 
 
 
댓글목록

햇살사랑님의 댓글

햇살사랑 작성일

와 ``~~ 이번에도 주츰했던 마음을 다시 끌어올려 주시네요!!  에너지 기운 팍`` 받고 만(?) 갑니다. ㅎㅎ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댓글의 댓글 작성일

와~ 저야말로 힘이 되는 댓글입니다. 받고만(?)에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요. ㅋㅋ

필벽성옥님의 댓글

필벽성옥 작성일

안 충분해요~~~ ㅎㅎ  동의수세보원 후기도 올려주시길 고대하고 있답니다^^ 
승현샘!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하셨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짝짝짝!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댓글의 댓글 작성일

동의수세보원.. 후기를 쓰면 이해가 더 잘 되는 미묘한 학문. ㅋㅋ 격려의 박수, 감사해요~ 헤헤

흰나비님의 댓글

흰나비 작성일

후기 잘 봤어요~ 승현샘^^
우리2조는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이런 엄살(?) 끝에 유쾌한 후기를 올리셨네요~ 멋져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