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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1차시 글쓰기<그리스인 조르바>수업 후기입니다. 이 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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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성 작성일13-10-18 14:17 조회2,88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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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1주차 글쓰기) 그리스인 조르바
 
 오늘부터 A, B반 합반. 새로운 분위기이다. 강의실을 꽉 채운 만큼 배우고자하는 도반들의 열의가 더 뜨거운 듯했다. ‘그리스인 조르바10년 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 기대되는 강의였다. “외우고 싶은 구절이 너무도 많지요?”하며 어김없이 암송을 시키시는 카리스마의 고미숙샘. 흔히들 관상이라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이 보인다고 한다. 신체는 그 사람의 정신인 것이다. 반대로 글쓰기를 보면 그 사람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의 3학기에 걸친 에세이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입으로는 난 변했어.”하며 머리에 있는 지식을 아는 체 떠들어대도 나의 글을 보면 진부함이나 신체의 경직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신체는 편안함에 여전히 매어둔 채 내 정신만 변하고자하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르바는 신체의 자유로움이 진리임을  깨닫게 해준다.
 일단 내 이야기는 접고, 선생님의 주옥같은 강의를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4학기는 인간이 신체와 질병 그리고 우주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가 탐구 주제이다. 때문에 신체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강의였다. 조르바에 취해 아니 조르바와 일체가 되어 하신 열띤 강의였다.
 
1. 사람의 몸이 곧 진리이다!
 ‘인간은 곧 자유다고 외치며 육체의 여정을 탐구하던 조르바와 책에서만 진리의 여정을 탐구하던 두목. 평행선 같은  두 사람이 크레타섬에서 같이 지내는 동안 서로 끌렸다. 그것은 사랑이고 우정이며 또한, 서로가 완벽하게 신체가 열린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던 두목이었기에 조르바가  망나니가 아닌 조르바일 수 있었다. 그렇게 조르바를 통해 신체가 자유로워진 두목은, 조르바의 연대기를 쓰면서 조르바가 죽는 걸 예감한다. 신체가 아는 것이다. 조르바는 언어가 되면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더 이상 육체라는 것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처럼, 도를 전수하는 코스도 몸과 몸이다. 곧 사람의 몸이 곧 진리이다.
 
2. 자유인 조르바!
 두목은 부처의 사상을 어렵게 쥐어짜는데, 무식한 일꾼 조르바는 입만 열면 부처의 진리가 술술 나온다. 조르바는 보살이다. 조르바는 왜 자유인인가? 그는 우선 국가를 벗어났다. 무의미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그는 조국의 경계를 벗어던졌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자유인 조르바님의 말씀. 그리고 그는 가족, 결혼을 뛰어넘었다. 비공식적으로 3천 번쯤 결혼했다하니 헉. 러시아 여자와는 추워서 결혼했다는 조르바. 넘 진솔하고 리얼하지 않느냐!
 요즘시대로 말하면 천하의 바람둥이이고 몹쓸 놈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호색한이라 하지 않고 자유인이라 부르며 열광하는가! 그는 여자한데 미래를 약속하지 않고 사랑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 사랑을 하면서도 일과 조국을 생각하는 제독들과 다르다. 그는 오직 눈앞에 있는 여자만 생각할 뿐이다. 또 그는 일을 할 때면, 갈탄광과 호흡 할 정도로 일에만 빠지고, 산투리를 켤 때면 그것과 일체가 된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되기이다.
 자유를 얻으려면 자기를 구속하는 것을 벗어나야한다. 또한 우리의 내부와도 대결해야한다. 그러한 점에서 조르바는 욕망을 성찰하는 힘이 탁월했기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자기 것은 하나도 버리지 않은 채 욕망만 추구하는 요즘의 현대인과 조르바의 욕망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버찌를 물릴 때가지 먹어 버찌에서 벗어날 줄 아는 조르바를 보며, 조금하다가 힘들면 포기해버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3.언어는 곧 내 삶이고 내 신체인 것이다.
 치매란 언어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단어를 잃어버리면서 뭐라고 명령할 수 있는 스위치가 꺼지는 것이다. 언어는 곧 내 삶이고 내 신체이다. 하지만 요즘 현대인들은 언어를 도구화해버리며,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들뿐이다. 조르바는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민중의 서사를 이야기한다. 일상에서 그리고 육체적인 현장을 통해 진리를 도약했기에 그의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다. 말하기, 읽기, 쓰기 같이 움직여라 
 
4.무엇을 낳을 것이냐?
 창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낳는 것이다. 그것은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걸, 조르바가  잘 보여준다.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듯이 지옥에서 진리가 나온다. 야생성을 가진 조르바도 자유로운 신체성에서 진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위대한 철학자는 존재 자체가 말썽인 양기인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여자는 심하게 타락하지는 않지만 도약하는 것을 두려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남자는 철학을 잉태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부정하고 싶다면 진리에 대해 탐구하라! 그리고 개념을 창조해라! <우리는 아무말 도 못했지요...>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나니 조르바가 질문을 던져온다. 넌 자유롭게 살고 있느냐? 넌 욕망에 충실 했느냐? 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느냐? 난 아무 대답도 못한다. 그동안 3학기의 대중지성을 통해 내 신체가 열려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난 여전히 경직되어있다. 무엇 때문에 경계를 해체하지 못하고 곰숙샘 말대로 도약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비겁한 내 자신이 조르바 앞에서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언젠가 해변에서 조르바처럼 춤을 출 수 있기를 꿈꾸며....
 
 
 
 
댓글목록

서나무님의 댓글

서나무 작성일

역시 조장님이십니다. 열강하시는 쌤의
 얼굴과 조르바에 빠져버린 도반님들 얼굴이
떠오르는군요ᆢㅎㅎ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