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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이 들려주는 아함경 이야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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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화노인 작성일13-10-29 08:27 조회3,05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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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서 안올라가나봐요, 이어서 올립니다)
 
연기(緣起)-불안정성과의 화해
브라만교는 어떤 사물의 본성은 신성이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한번 브라만은 영원히 브라만인 것이다. 힌두교는 물질성이 세상의 근본 질서라고 하며 물질의 신체성을 중시했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둘다 근본적으로는 결정설이다. 그런데 불교는 결정론이 아니다. 불교를 흔히 마음의 종교라고 하는데, 실은 불교에는 마음이 없다. 깊은 수면에서는 마음이 작용하지 못한다. 깊은 무의식에도 마음 자체가 없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보면 시각 중추신경은 몸 전체에 시각 체계를 보낸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로 2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80%는 자기가 만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함은 우리 내부(마음)에서 80%의 주관과 20%의 객관이 나뉘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해보자. 외부의 신호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에서 시각 형태를 만드는 패턴이 생겨난다. 안에서 만들어진 주관 객관이 시각으로 나타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주관이 객관으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주관과 객관이 전혀 안 일어난다. 시간성 속에 자기가 들어가는 것이고, 변화 속에 자기가 들어가는 것이다. 변화를 객관화 하지도 않는다. 나의 어떤 심리적 육체적 조건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진다.
 
이쯤 되면 내가 나라고 할 것 조차 없네! 그럼 너는 뭐고, 나는 뭐야? 라는 자각이 일어난다. 자신이 확대되고 너도 확대되는 지점이다. ‘너는 너, 나는 나이런 고정성은 일견 안정감은 있다. 하지만 확대된 자신을 보는 것은 불안정하다. 이 불안정과의 화해가 바로 연기법을 깨닫는 지점이다.
 
삶이 나 혼자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한테는 온갖 다른 것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문득 느껴 본적이 있는가. 그럼 당신은 연기법을 깨달은 것이다. 나의 요소는 외부요소가 내 세계를 이룬 것, 이게 나의 근원적 속성이다. 나의 분별된 세계는 나의 근원적 속성 자체가 다른 것들이 수없이 섞여 있는 것이다.
 
이타적 행위란 스스로가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나를 기쁘게 하고 스스로 행복하게 하는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반대로 내가 화를 내는 스윗치를 켜면, 상대방도 스위치를 켠다. 그런데 대개의 부부는 좋은 것을 켜는 스위치는 끄고, 나쁜 것을 켜는 스위치를 많이 발달시킨다. 계속 좋은 쪽으로 꿈 스위치를 켜면 세라토닌이 생성된다. 이런 인연은 생기를 준다. 이게 연기법으로 세상과 관계맺는 방식이다. 이러면 기쁨이 생기는데, 아주 고요한 기쁨이다.
 
세상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매 순간 새롭게 결정된다. 낯선 것은 낯익은 것이 있을 때에 비로소 생겨난다. 새로운 연대의 발생가능성도 여기에 있다. 개인은 사회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게 연기(緣起)법의 실효성이다. 이게 아함경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이다 -
 

 

댓글목록

끝자님의 댓글

끝자 작성일

뒤늦게 다시 꼼꼼히 읽었습니다. 좋은 후기 고맙습니다.

바로보기님의 댓글

바로보기 작성일

이해 쏙쏙 멋진 수업후기 감사합니다....

양파님의 댓글

양파 작성일

정화스님이 <아함경> 책보다 '연기설'을 더 잘 설명하셨어요.수업시간에 잠깐 딴 생각하는 바람에 이해를 다 못했는데 해숙님이 정리해주셔셔 너무 감사합니다. 목성에게 세라토닌을 주셨어요!1

전화노인님의 댓글

전화노인 댓글의 댓글 작성일

헤헤. 나쁜 머리로 후기 정리하느라 꽤 애썼는데 양파님의 댓글이 제게 세라토닌을 주셨네요. 감솨

햇살사랑님의 댓글

햇살사랑 작성일

해숙 샘~~  정화스님 말씀 다시 되 새길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해요. 목요일의 다짐으로 다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