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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2주 의역학 장자-제물론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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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춘년 작성일14-03-01 20:46 조회3,480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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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안녕하세요^^ 벌써1학기 의역학 두 번째 수업『莊子-齊物論』을 마쳤습니다.
사실 두 번째라지만 1학년때 수업까지 생각하면 네 번째가 맞죠?^^
저는 처음 <왕멍의 나는 莊子다>를 접했을 때 그야말로 왕~~멍~~때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듯 말 듯 솔직히 어지러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딱 반 읽고 덮었죠^^).  아마 낯선 언어와 저의 무식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자, 그럼 이번 학기의 저한테 온 아니 제가 다가갔던 장자는 어땠을까요?
소요유와 응제편은 오강남샘의 책(이게 교재인줄 알았던 거죠. 아이쿠 시작부터 삐걱거립니다ㅠㅠ)을 그냥 해설부분 빼고 읽었습니다. 어머 어머 이게 왠일일까요? 너무너무 쉽게 잘 읽히는거예요(아, 오해하지 마세요. 그저 좀 눈에 들었왔다는 거죠 ㅋㅋ)  ‘오 ~ 내가 1년 헛공부는 하지 않았네’ 하며 속으로 좋아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제물편(이때 야심차게 안동림샘의 莊子를 퀵주문~~)을 읽는데 왜 자꾸 왕~멍~ 선생님이 저 한테 오시는 걸까요?  ‘남곽자기와 안성자유가 왜 처음부터 나와서 나를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는 걸까, 조삼모사가 먼저 나왔으면 좋았을 걸’ 하고 시부렁거리며 다시 오강남샘을 펼치고 해설부분을 읽었습니다.  역쉬 장자는 만만치 않아!! 또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길샘의 친절하고 열정적인 수업은 저에게 위로와 무한 긍정이라는 선물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제 제물론 수업을 리뷰해보면서 선생님들에겐 어떻게 다가오셨는지 각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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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物論의 한자를 분석해 보면 만물이 가지런하다 즉 만물이 똑같다는 것인데 이것은 장자가 세계를 보는 방식이며 이 세상에 대해 외치고 싶었던 테제라고 하네요. 절대적인 회의론을 통해(상대주의와는 다름)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끝까지 질문을 하며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다고 합니다.
즉 그 시대의 최선의 마지노선이라 할 유가나 묵가를 넘어야 시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네요. 그래서 유가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게 당연해 보입니다.
 
장자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방식을 띠는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실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우!! 결국 오묘하고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거네요. 그러니 나의 왕~멍~을 비웃지 말아주세요^^ 
 
 槁木死灰 吾喪我
 
남곽자기와 안성자유의 대화에서 나오는 제물론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槁木은 形, 死灰는 心 즉 몸은 마른 고목처럼, 심은 불꺼진 재가 되어버린 상태로 자신을 구축하는 모든 것이 없는 결국 吾喪我-내가 죽어버린 나-와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관념, 전제, 지식, 습관, 상식을 가지고 세상을 만나지만 이것을 모두 내려놓게 되면 이 시대가 만든 가치를 뛰어넘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정념이나 찌꺼기도 모두 내려놓고- 제발 질질 끌고 오지 말고^^- 세상을 관찰해야 하라고 하네요. 이 때 장자가 말하는 明의 개념이 나오는 거죠.
 이런 상태로 세상을 보면 사람의 퉁소소리, 땅의 퉁소소리, 하늘의 퉁소소리를 들을 수는 있는 것처럼 말하던 장자는 한번 더 우리의 관념을 해체해 버립니다. 구멍도 자기가 소리를, 바람도 자기가 소리를 즉 각자가 낸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구멍과 바람을 소리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다시 질문을 합니다. 
 참주재자가 있는지 묻는 것이죠. 여기서 장자는 "眞宰", "道"를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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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道란 무엇일까요
 
道行之而成 物謂之而然
 
장자는 "道란 걸어서 만들어진 길이고 物이란 그렇게 읽혀져서 그런것이다"고 말합니다. 즉 도란 것은 현장에서 운동과 부딪힘같은 행위를 통해 길을 내는 방편이 되는 것이고 -길샘은 뗏목으로 비유를 해주셨는데요 한번 건너는 데 썼으면 버리고 다음 강을 건널때 새로운 뗏목을 이용해야 하는거죠- 이름도 사물의 본래 모습을 다 담지 못하고 그저 인간이 인위적으로 붙여놓은 거라 합니다.
 正名 -이름을 바로 적는다-이라는 언어와 실질을 일치시키는 정치를 목표로 한 공자와는 많은 대비가 됩니다. 그러니 장자는 道와 언어마저도 해체해버리는 거죠. 이렇게 한 마디 날리면서요~(참 노자의 道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여긴선 지면상 생략^^)
 
道未始有封 言未始有常
 
도에는 처음 애초에 경계가 있었던 적이 없고 말에는 처음 애초에 항상함(고정 불변)이 있었던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바로 인간이 자기식의 사회를 만들면서 언어가 생기고 이 언어가 이분법의 세계를 만든 것이라는 거죠. 즉 지식이라는 것이 사물과 나를 분별하는-이분화하는 것을 知라 생각-분별지로 작동하면서 구별과 차별이 생기고 위계질서가 생겼다는 겁니다.
 
 장자는 바로 이점에 주목한거죠. “이분화할 수 있는 세계는 없다”면서 그 유명한 장자의 절대적 회의론을 선보입니다.  그 이전, 그 이전의 이전, 그 이전의 이전의 이전...이런식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無에 다다르게 되고 거기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게 되는 거죠.
결국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궁극적인 하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맨 마지막에 나오는 物化와도 연결이 됩니다.
 
方生 -道樞
 
장자는 이것에서 저것이 생긴다는 方生이라는 말로 絶對惡, 絶對善, 美醜 是非, 陰陽이라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다만 이것은 기준과 척도에 의해 나뉠 뿐이라고 하죠. 이것과 저것의 대립을 없애버린 경지인 道樞라는 표현으로 無限의 세계,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道樞로서 사고를 하면 그렇게 슬퍼할 일도 없고 즐거워할 일도 없고 담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成形, 誠心이라는 고정된 형태, 일정한 의견을 갖게 된 마음에 대한 관념도 무장해제 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떤 필연도 우연도 없는 그저 운동의 산물로 생겨난 존재라는 길샘의 강의가 - 우리가 죽음을 되게 두렵고 무섭게 바라보는데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므로 늙는다고 말할 게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고 생성되고 있는 거다 - 맘에 와 닿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늙어서 몸이 빨리 지치구나'가 아니라 '아~전과 조금은 달라졌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니 훨씬 맘이 편안해졌습니다.^^
 
여희도 그랬잖아요 낯선 진나라로 가게되자 울고불고 했지만 왕의 처소에서 왕과 아름다운 잠자리를 하고 ㅋ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서 자신이 울었던 걸 후회했다구요.
 왜 우리는 미리 앞서서 걱정할까요 그러고 보니 곰샘의 강의중 “노심초사하지 말라”와도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부질없는 짓 좀 하지 마라~~”는 곰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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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三暮四-天均, 兩行
 
이제서야 우리가 중학교때 열심히 외었던 한자 숙어가 보이네요. 첨에 되게 반가웠는데 길샘의 강의를 들으신 선생님들 중 뜨악하신 분들도 계셨죠? 우리가 알고 있는 거랑 아주 다른 해석이라서요. 아~ 두 번째 듣는 거라 괜찮으셨다구요?^^
 
 朝三이라는 건 헛되이 애를 써서 한쪽에 치우친 편견을 내세우면서 실은 모두가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성인은 天均(하늘의 고름, 자연의 균형)에 맡겨 是非를 조화시키는 데 이것을 兩行(대립된 두 쪽이 다 순조롭게 뻗어 나가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만약 원숭이의 반발을 是非로 본다면 그들을 내쫓거나 죽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걸 相生이라 해도 될까요? 그리고 우리는 헛되이 애를 쓰는 짓은 해선 안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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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蝶夢 ,物化
 
이제 드디어 제물론의 마지막, 너무나 유명한(전 이런게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ㅋ) 호접몽이예요.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무의식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없어서 현실세계에서도 곰과 인간이 결혼할 수 있는 대칭적 사고(유동적 지식-넘나들 수 있는 지식)를 했었습니다. 아마 유동적 사고는 1학년 3학기때 공부했었던 내용이라 잘 알고 계실거예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면서 나를 해석하고 타자와 진정으로 마주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장자는 꿈과 무의식조차도 깨버립니다. 그러니 자신이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나비의 꿈에서 장주가 된 건지 그 둘 사이에는 구분이(겉보기에) 있었지만 서로 物化되어 버린 거죠.
 이때 나는 나를 의식하면 안 됩니다. 각자의 리듬과 중력, 속도, 리듬을 내려놓으면 양쪽이 자연스럽게 의도되지 않은 상태로 제3의 어떤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주 저를 막 의식했더랬습니다. 고양이 앞에서 쥐였어요 .고양이랑 物化되지 못하고 막 소리치고 선생님들의 시험을 앞두고 난장을 벌였습니다. 흑흑흑!! 어떻게 바로 物化가 되겠냐구요. 전 그냥 미천한 인간입니다. 전 고양이,개가 무서워요ㅠㅠ^^. 아랫그림처럼 될 날이 제게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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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제물론은 吾喪亞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 物化를 설명하면서 장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번 더 강조합니다. 物化가 된 세상은 아마도 장자가 꿈꾸웠던 유토피아일것 같습니다.
길샘은 세상을 바라볼 때 지식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비우고 단념하고 중지해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깨는 방식이 뭔지, 그리고 그 기준을 넘어서는 게 뭔지, 한번 사유해보라 하셨습니다. 자기의 순리를 찾는 것, 여기에는 부대낌과 마주침이 있고 이걸 넘어서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앗 한가지 더요. 저는 길샘의 강의를 들으면서『장자』라는 강의를 수도 없이 했을 -그 바로 전날 저녁에도 수업을 하셨다는-선생님이 완전히 수업에 몰입하셔서 열강을 하시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과거의 수업을 잊고 매번 새롭게 강의에 임하시는 그 모습이 吾喪我-物化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수업에 온전히 빠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자는 분명 제겐 긍정의 철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듣게 될 서양 긍정의 철학자 스피노자도 기대가 되네요^^
 
이제 해완양의 글을 읽으러 가야겠습니다. 담주에 뵐께요^^
댓글목록

바로보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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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멋진 후기 잘 읽고 갑니다. 올해에도 홧팅요. 샘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작성일

갑오년 들어 샘을 글로 만나기는 처음이네요. 확실히, 작년과는 다른걸요~ 길샘을 통해 얻은 긍정 에너지가 글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이미지가  아주 재미지구요. ^^

탁타처럼님의 댓글

탁타처럼 작성일

와우! 술술술 잘 익히는 후기입니다^^ 누군가 했는데 대충 감~이 옵니다. 암송에 후기까지 질투납니다요~~~**

동춘년님의 댓글

동춘년 작성일

아이쿠 샘!! 제가 막 수정하고 있을 때 읽으셨나봐요. 호호  저한테 격려해 주시는 거죠?  헤헤 ... 저 이 글 쓰는 것보다 올리는 게 더 어렵더라구요.ㅠㅠ  진이 다 빠져 있었는데 샘의 댓글이 저를 편안하게 잠자리로 보내주네요  감사^^
스윗 드림임다. 아 ~~맞다 샘은 아직 초저녁이시죠? 전 헤롱헤롱임다 ㅋㅋ

전화노인님의 댓글

전화노인 작성일

어머머! 무슨 후기가 이리도 재미있을까?
동춘년씨! 암송을 그리 똑부러지게 잘하면 남들이 질투하쥐!
이렇게 멋자고 재밌는 후기를 써놓으면 옆사람들 왕-멍 때리지 않을까요?
갑오년, 무슨 기운이 동춘년 샘을 이렇게 나비처럼 가벼웁고, 유쾌 상쾌 발랄하게 만드는 걸까요?
후기, 즐감했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