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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1학기 에세이 발표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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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필벽성옥 작성일14-04-29 01:16 조회3,085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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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1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 ‘삶과 글은 하나다’
                                                                                                                                     박 성 옥
 에세이 발표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치 전등이 없는 방에서 공들여 색조화장을 하고 밖을 나온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 눈썹 짝짝이로 그려졌어. 분이 뭉쳐서 얼룩덜룩해.” 내 얼굴은 나만 볼 수가 없다. 돌아와 세수를 하고 맨 얼굴을 바라본다. 내 얼굴을 비춰주는 이 거울은 밝고 투명한 것인가. 어둡고 일그러진 청동거울은 아닌가. 모든 것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하는 심정이다.
 2014년 1학기 에세이 발표는 세 조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나는 신근영샘이 튜터로 진행하는 조에 속했다. 우리들의 글에는 감이당 공부 일 년 동안의 삶과 의식의 변화를 담고 있었다. 혹은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도 담고 있었다. 우리 조에서 제기된 코멘트를 후기를 정리해본다. 모두에게 공통으로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다.
 
1. 글과 인용문 사이에 필연성이 없다.
- 제목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 글이 많다. 마찬가지로 인용문도 글과 상관이 없다. 나의 얘기를 하면서 텍스트의 인용문을 구색으로 갖다가 꿰어 맞춘 결과다. 책을 읽고 가슴으로 강하게 배운 게 있으면 그 문구 중심으로 글이 짜인다. 인용문과 자기 글에 필연성이 없는 것은 진짜 배움이 없기 때문이다.
 
- 박용순 : 글의 시작을 대충 대충 사는 게 문제라고 하면서 결론은 원래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 뒤 말이 맞지 않는다. 장면끼리 부딪히면 자기합리화가 드러난다. 앞의 단편이 뒤의 단편과 맞아야 글쓰기다. 안 그러면 순서 없이 파편화된 글이 된다. 거리를 두고 자신을 봐야 한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 한다’는 문구는 양명학의 지행합일을 모르는 것이다. 여전히 지행일치로 생각하고 있다.
 
- 김해숙 : 자기 문제의 수많은 원인을 나열하는 게 글이 아니다. 원인들을 수축해서 재구성해야 한다. 공부를 설렁설렁하는 게 원인인데 결심은 걷기로 결론이 난다. 자기만의 공부수행법을 찾아야 되는데 남의 공부에 묻어간다. 원인을 질서 있게 구성하는 게 글이다. 구성이 잘 되면 그 중 하나만 고쳐져도 나머지가 고쳐진다.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간다.
 
- 권석례 : 공부로 건강해지는 게 아니다. 공부한다는 것이 건강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깨달음이 오는 게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깨달음이다. 지식을 얻는데 집착하지 말라고 하나라도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지식을 많이 축적해서 나중에 지혜가 되는 게 아니다. 아기가 우유, 암죽, 밥을 먹는 과정을 거치듯 그 즉시 소화하는 것만큼이 내 것이다.
 
- 박성옥 : 제목과 내용이 안 맞는다. 사마천과 나 사이에 흐르는 것을 건너뛰고 너무 빠르게 결론으로 간다. 글과 소리와 이야기의 용법이 혼재되어 있다. 왜 사마천의 발분이 글로 가서 닿았을까 사마천만의 특이성이 없고 자기 얘기만 한다. 사마천에게 뭘 배웠는지 안 보인다. 텍스트의 인물에게 배워라. 아니면 글이 허공에 울린다.
 
- 성승현 : 장사를 하느라 공부시간이 안 나는 고민을 썼지만 연구실에 있어도 종일 공부하는 게 아니다. 일만 한다. 그 틈을 타서 글을 쓰는 것이다. 공부만 한다는 표상을 버려야 한다. 글쓰기에 대해 써야 하는데 너무 자신의 문제에만 매달린다. 처음은 남편문제로 시작했다가 장사와 공부, 손님 문제로 갔다가 결론은 급 공부로 간다. 현장을 공부자리로 만들겠다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2. 책을 타자화하는 글쓰기
- 성미루 : 내 안에서 책이 타자화가 안 된다. 책을 거울처럼 보면서 자신만 본다. 그게 문제인데 다른 데 가서 뚫으려 한다. 그러니까 공부를 놓은 거다. 인용은 없지만 소박하게 경험을 썼다. 글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경험이 힘을 가지려면 스승의 힘을 빌어야 보편적 경험이 된다. 스승도 항상 배우려 할 때 스승이 될 수 있다. 도 닦는 사람이 성기를 자른다면 100% 반칙이다. 수행이 안 되는 지점에서 해야 수행이다.
 
- 조해숙 : 역시 글쓰기와 상관없는 내용을 썼다. 주제를 안 주면 고민을 못하고 주제를 주면 다른 데로 글이 샌다. 스피노자의 문제의식을 내 문제의식으로 만들라. 아니면 스피노자의 글을 깔대기로 갖다 쓰다가 질문 자체가 이동한다. 나를 놓아야 책과 만난다. 그래야 내가 나에게 빨려 들어가지 않고 책이 내 편이 된다.
 
- 장일영: 제목자체가 상호 모순이다. 직진이 문제인가, 인정욕망이 문제인가. 모든 소제목도 다 직진이다. 아무리 직진을 안 하겠다고 써도 직진하려는 속마음이 다 드러난다. 직진성향보다 인정욕망이 더 문제다. 사주에 화기나 목기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 기운을 어디에 쓰느냐가 관건이다. 이 글을 통해 직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 것은 성과다. 직진하는 기운을 선용하는 방향으로 재배치하면 된다.
 
- 이한주 : 글이 이분법적이다. 이성과 감정, 수동과 능동, 신체와 정신 등 구획을 짓는다. 스피노자는 ‘우리는 모두가 자기가 부적합하다는 걸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성으로 넘어가겠는가. 이성을 명석판명한 관념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 원인을 명석판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면에서 내가 설득이 되면 적합이다. 이성은 타자와 책과 세계와 궁합을 맞추는 노력이다. 진짜 원인은 모를 수 있다. 내가 가진 사유를 질서 있게 엮으면 그게 적합한 거다. 매번 진리를 구성해가고, 오류가 발견되면 다시 진리를 구성해가는 거다.
 
- 박경옥 : 따옴표, 띄어쓰기에 오류가 많다. 글이 응축되지 않는다. 긴장이 없다. 자신을 응축시키는 힘은 대단한 데서 나오지 않는다. 글을 쓰고 소리 내서 읽어봐라. 잘못된 문장에서 주춤거리게 된다. 문장은 짧게 써라. 문단구성에 신경 써라. 긴장이 없는 것은 편안한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긴장과 이완은 같다. 긴장이 되거나 확 놓아버리게 된다. 민감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신체가 극에서 극으로 간다. 그 중간 지점에서 힘을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 문호성 : 하나도 문단이 나눠지지 않았다. 급하고 리듬이 없다. 호흡조절이 안 된다. 힘을 확 써버린다. 속도를 조절하고 의식적으로 호흡을 멈춰라. 한 문단에 다섯줄 이상 가지 말라.
 
- 최혜정 : 문단과 문단이 전혀 연결이 안 된다. 문단마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조각난 메모 같다. 수면 위에 올라온 자신만을 쓰고 있다. 이러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물 위에 보이는 섬이 아니라 그 아래 연결된 깊은 이면을 써라. 이것들을 엮는 게 글쓰기다.
 
신근영샘의 마무리 총평은 저자의 마음에 집중되었다. 텍스트를 읽고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소세끼는 왜 이렇게 찌질하지? 루쉰은 왜 이렇게 살벌하지? 도대체 작가는 무슨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까 그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배우는 건 사유내용이 아니다. 사유의 방식, 사유의 형식이다. 즉 사유의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흔히 ‘내 생각은 이런데 표현을 잘못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틀렸다. 내가 잘못 이해한 거다. 표현 하나 하나가 그냥 나오지 않는다. 글은 딱 자기만큼만 나온다. 글은 무의식적인 자기 색깔이다. 그리스 때는 진흙판에 글을 썼다. 글은 자기가 힘주는 만큼만 새겨진다. 글이 주는 뉘앙스, 색깔, 느낌, 이게 스타일이다.
책에서 나를 보려 하지 말고 각 사상가가 싸우고 있는 지점을 봐라. 니체는 무엇과 싸우려고 했지? 니체의 문제의식은 뭐지? 언표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밑에 담겨있는 마음을 봐야 한다. 들뢰즈는 ‘모든 책은 상형문자로 되어 있는 것처럼 읽어야 한다’고 했다. 거미는 눈도 더듬이도 없이 진동만 느끼며 간다. 거미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
근대는 인간의 탄생을 말한다. 2학기 테마 ‘근대성’을 다룰 때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천착하라.
 
3. 과녁을 맞추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곰샘이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한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 강미란 : 전에 비해 글이 담백해진 것 같은데 생각이 이렇게 저렇게 뭉친다. 내가 생각한 향원과 양명의 향원을 분석해서 구별해야지 이렇게 되면 돌과 쌀이 섞인 밥이 된다. 생각의 근육이 없다. 사유하는 힘도 요리처럼 잘 할 수 있다. 내가 그만큼 공력을 쏟았나 생각해 봐라.
 
- 김지현 : 또 소통이 안 된다. 사마천을 통해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써야한다. 분석만 하고 나머지는 독자가 알아서 이해하라는 태도는 교만이며 독단이다. 사마천의 역사관에 대한 분석은 제멋대로 이해한 거다. 이건 사마천의 역사관이 아니라 철저히 근대적 역사관이다. 사기에 사람들의 의식적인 행위만 써있지만 그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보았다. 사마천은 천지인을 보는 거다. 말과 글이 세계를 연 힘을 탐구했어야지 사기를 평가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 오기화 : 스피노자의 긍정을 위안, 힐링으로 해석했다. 현대인의 삶에 대해 내 마음이 달라지는 걸 통찰하는 게 없다. 내 속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글을 쓰고 질서를 잡아라. 철학으로 격물치지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어떤 철학을 읽어도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위로해주는 깔때기로 쓰게 되면 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 정은경 : 언어를 못 찾고 있다. 1년 동안 매일 울었다, 늙어간다 등 왜 그렇게만 기억을 하느냐. 기억을 그렇게 구성하니까 소통이 안 된다. 자기 얘기를 한다고 했는데 알 수가 없다. 렌즈가 안 맞으니 피사체가 안 보인다. 주제가 ‘두 발로 서기’면 그에 대해 생각해봐야지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다.
 
- 안은숙 : 문장이 탄탄해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긴 한다. 공부를 통해 콤플렉스를 넘어가야 하는데 양명학 신도처럼 양명에게 묻어간다. 인용만 하고 내 설명이 없다. 자기 힘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용만 하면 사이비종교가 된다. 왜 악의 축인가, 주변인이 왜 묵자가 되었나 맥락 설명이 없이 자의적으로 쓰면 소통이 안 된다. 언어의 명징함은 테크닉이 아니다. 마음을 오롯이 해야 소통이 된다.
 
- 안정미 : 터무니없이 자신감을 보인다. 안 해도 될 말을 많이 해서 뜻하지 않게 판도가 바뀐다. 달라진 것도 알겠고 새로워진 것도 좋은데 표현방식은 조증이다. 새로운 일(인문학공동체)도 과잉평가할 수 있다. 안이하게 모방하다간 큰 코 다친다. 내 힘으로 그 현장에서 창조해야 한다. 그 해에 맞게 매년 바꾸면서 힘을 써야 한다. 모두 조직의 순환에 동참해야한다. 감이당을 배경처럼 쓰거나 의지하거나 눈치 보면 안 된다. 지혜만 배워 나가라.
 
 곰샘은 기본기를 강조하면서 총평을 끝맺었다. 대부분의 글이 ‘글쓰기 얘기’에서 과녁이 벗어났다. 과녁에 화살을 쏘는데 집중해야 한다. 쉽지 않아도 초점을 맞추는 게 기본기다. 그래야 불발이 되어도 자세를 잡게 된다. 이치와 현장을 결합시키는 자세로 기본기를 지켜야 한다. 처음에는 그 자세를 지키기 힘들지만 힘들다고 아무데나 쏘면 과녁을 벗어나게 된다. 기본기에 최선을 다하면 질문이 안 생길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철저히 근대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20세기 삶의 패턴의 붕괴를 보여준다. 구조작업을 보면서 우리가 믿었던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통이 안 되는지, 돈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다음 학기의 주제는 근대성이다. 내 안에 있는 근대성을 지금 뿌리 뽑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공부가 단도직입이 된다.@
 
- 길진숙샘, 문성환샘이 튜터로 진행한 조의  코멘트도 궁금하네요. 누가 후기 릴레이 해주시기 기대할께요^^
댓글목록

전화노인님의 댓글

전화노인 작성일

방학 잘 보내고 계시나요? 깨알같고 유익한 후기 늘 감사합니다
2학기에는 더 열씨미 공부하기로 해요

필벽성옥님의 댓글

필벽성옥 작성일

곰샘반 코멘트도 누가 좀 올려주세요. 듣고 싶습니당.^^

어리님의 댓글

어리 작성일

글 잘읽었습니다. 전곰샘이랑 하루종일있었는데ᆢ
다른팀분위기를 정말 자세하게도 전해주셨네요.
샘. 증말 대단한열정입니다.^^
방학잘보내시고 2학기때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