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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샘 후기] Q&A로 만나는 <허준과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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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각통 작성일14-05-16 20:30 조회2,64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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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허준은 다만 공부를 좋아하는 순한 사람처럼 보이는데요. 그의 대쪽같은 모험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또 동의보감을 저술한 힘은요?
A : 허준의 일생이 그다지 파란만장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냥 공부를 좋아하는 호학자 정도로만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의학생도를 거치지 않고, 독학으로 의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 것은 꽤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그는 경전과 역사에 이어 의학에도 정통하게 되는데요. 30대 초반의 허준이 유희춘에게 『노자』를 선물한 기록이 있는데, 그의 사유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흔히, 공부(혹은 책읽기)는 저절로 되는 것, 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엄청난 능동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 방대한 분량의 공부를 혼자서 해냈다면, 그는 누구보다 기가 센 것이겠죠. 공부를 통해 얻은 신념을 행하는 것이 남들에게는 모험심처럼 보일 수 있을텐데요. 그는 다만 공부한 대로 행동했을 뿐인 건 아니었을까요? 또한 동의보감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텐데요. 동의보감 저술은 1956년 선조의 명에 의해 시작이 됩니다. 당시 정작,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묶여 밴드 글쓰기를 할 작정이었는데요. 정유재란으로 팀이 해체되었고, 결국 허준 혼자서 임무를 완수하게 됩니다. 그 중간에 선조가 승하했는데요. 그럼에도 허준은 그 작업을 중단하지 않지요. 이런 허준의 근기가 동의보감을 완성하게 만든 힘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Q : 동의보감의 혁명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A : 동의보감은 총 5편 106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몸 안의 세계, 몸 겉의 세계, 병의 세계, 약물의 세계, 침구의 세계 이렇게요. 이렇게 나눈 이유를 허준은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몸 안에는 오장육부가 있고 밖에는 근육, 뼈, 살, 혈맥, 피부가 있어서 그 형체를 이루는데, 정·기·신이 또한 장부와 온갖 부위의 주체가 된다. (…) 도가는 맑고 고요히 수양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의학에서는 약물과 침구로 치료를 하니, 이것은 도가가 그 정미로움을 얻었고 의학은 그 거친 것을 얻었음을 말한다.”
 
정·기·신 등 생명의 기본 요소가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그 바깥에 오장육부 등이 자리하며, 맨 바깥에 근육, 살, 뼈 등이 자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준은 안의 두 동심원을 몸 안의 영역(내형), 바깥의 동심원을 외형의 영역으로 보았어요. 그런데, 특이한 점은 허준이 인체를 내외로 나누는 것이 의학 전통에 따른 것임을 강조한다는 것인데요. 『황정경』에 내경이라는 글이 있다고 말하면서요. 그러나 이렇게 내외로 나눈 것이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의학 내용을 근본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거든요. 이런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의학과 철학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시작했는 걸요. ^^ (실제로 약샘은 북드라망 블로그에서 106문 글쓰기를 시작하셨죠~)
 
* 참고로, 『황정경』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만정방이라는 시에서요. “우리 서로 만날 곳은 신선이 아니면 도가 있는 곳일지니 그곳에 조용히 앉아 『황정경』이나 가르치리라!”라는 구절에요. 반가웠습니다. ^^
 
Q : 병을 고치는 것보다 양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A : 동의보감을 보면, 내경, 외형, 잡병과 구체적인 치료 수단인 약(탕약), 침구가 대응합니다. 왜냐하면 허준이 보기에 이런 방법은 몸 자체를 기르는 수양이나 병을 예방하는 것(양생)보다 하위 차원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허준의 독창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데요. 기존의 의서들은 모두 ‘병’을 중심으로 보았지, ‘몸’을 병에 앞서는 존재로 부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양생과 몸의 근본을 다루는 내용이 맨 앞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Q : 허준을 ‘자연학자’로 부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이유에서 그렇습니까?
A : 내경편에서 보면 오장육부에 앞서 몸의 근본을 다루는데요. 생명을 유지시키는 좀 더 근본적인 존재인 정·기·신이 그것입니다. 생명의 탄생과 관련되는 정, 몸의 유지와 관련되는 기, 고도의 정신활동을 가능케하는 신이 나중에 나오는데요. 양생가들은 의학 전통과 별도로 정·기·신의 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했죠. 특히 병의 세계에서 보면, 병의 원인을 캐내고, 병의 경중허실을 진단하며, 치료해나가는 것을 한토하가 아니라 토한하로 보는데요. 이것은 계절에 따른 배치를 고려한 때문입니다. 토(봄) - 한(여름) - 하(가을) 등 계절에 맞는 치료법을 쓰는 것이죠. 본초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요. 약초를 배열할 때 수부 - 토부 - 곡부 - 인부 - 금부로 배열했어요. 수부가 처음인 이유는 물이 만물의 근본이 때문이고, 땅이 만물을 기르므로 그 다음, 하늘과 땅에서 인간을 기르는 것이 곡식이므로 그 다음이 되는 방식이에요. 성리학적인 자연관의 표현이기도 한데요. 이처럼 동의보감을 저술할 때 자연의 흐름에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생은 단지 임상을 넘어 존재의 우주적 ‘탈영토화’를 꿈꾸는 ‘삶의 기술’이다. 요컨대, 양생이라는 비전 위에서 몸과 우주, 질병과 자연, 생명과 존재의 근원적 일치를 기획했던 자연철학자, 그것이 허준의 진면목이다.” (고미숙)
 
Q : 동의보감은 학술서인가요? 실용서인가요?
A : 굳이 구분을 하자면 실용서에 가깝습니다. 허준은 이 책을 병에 안 걸리게 하고 이미 든 병을 잘 고치는 데 사용하기를 바랐습니다. 약물의 분량을 결정하고 쓸모 있는 약재를 선택하는 등에 대한 내용을 쓰는 데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의중을 읽을 수 있지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화제국방』의 처방 1첩의 무게는 더욱 많아서 가난한 집에서 어찌 이를 마련할 수 있겠는가”라고요. 약을 적게 쓰면서도 약효를 잃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허준의 ‘조선 사람이 쓰지 못할 약이라면 필요 없다’는 말 자체가 충분한 답이 되어줄 것 같네요.
 
Q : 동의보감이 기존의 의서를 짜깁기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허준 자신도 동의보감을 작(作) 또는 저(著)라 하지 않았죠. 찬(撰)이라고 했습니다. 찬은 가려 뽑아서 쓴 것을 말합니다. 동의보감은 보통 의서와 달리 모든 대목마다 일일이 인용문헌을 밝히고 있는데요. 대략 240여 종에 이릅니다. 그중 가장 많이 인용이 되어 ‘인용 5대 의서’라 불리는 것은 『경사증류대관본초』『의학입문』『단계심법』『득효방』『의학강목』입니다. 대부분 금·원·명대의 의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스개 소리를 하자면, 동의보감을 읽으면 1타 6피를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 하나로 다른 의서를 읽게 되는 셈이니까요. ^^ 하지만, 인용이 많다고 해서 이를 짜깁기의 산물로 보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의보감은 매우 작은 목차를 새로 구성하고 거기에 필요한 구절이나 처방, 약물을 여러 의서에서 뽑아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또한 인용문헌을 취급하는 방식 또한 역사 계통적 방식(내경과 영추의 의론을 싣고 다음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나 저작의 논의를 실었고, 그 다음에 근래의 저작에서 뽑은 내용을 뒤에 놓은 방식을 말합니다)을 따랐구요. 하여, 기존 의학계의 분분한 의설과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낸 것이죠. ‘베끼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물론 ‘잘’ 베껴야 하겠지만요. ^^
 
Q : 허준은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졌는데요.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가미된 픽션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A :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드릴게요. ^^ 오해1. 유의태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100년 후 유이태라는 인물이 존재하긴 했다. (^^;) 오해2. 과거에 급제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는 유희춘의 천거에 의해 의관이 되었다. 오해3. 몸종의 소생으로 나오는데, 실은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오해4. 그의 벼슬을 정일품으로 끝이 난다. 정일품으로 승격하는 것은 사후의 일이다. 오해5. 양예수는 적이 아니라 허준의 스승뻘이면서 당대 최고의 명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예진 아씨 일화 역시 사실이 아니구요. 드라마 속 픽션을 다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스승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은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해부학이 마치 의술의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양생을 제일로 여겼던 허준의 사상과도 대치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허준 드라마를 만나게 되길 바람해 봅니다.)
 
Q : 동의보감,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A : 동의보감을 의서라고만 생각하고 보면, 그 안에 갇히고 맙니다. 동의보감에는 수많은 길이 나 있는데요. 어떤 길을 내느냐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동의보감 안에는 수많은 의술의 원자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을 재배치하면 나만의 의학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그렇게 내가 나를 고치는 의술이 펼쳐지게 됩니다. (동의보감 두 번째 시간에 동의보감+주자어류, 동의보감+논어의 조합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약샘 말씀이 실천된 사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풍병의 원인은 풍만이 아니다. 화일 수도 있고, 습일 수도 있고, 기일 수도 있다. 동일한 사태에 대한 원인과 결과의 계열,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지식이 관찰자의 다른 습관, 다른 상상력에 의해 다르게 발견되고, 다르게 구성된다. 『동의보감』은 그 모두를 전부 인정한다. 이것들 사이의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모든 병을 상상력이 넘치는 병으로 만든다. 따라서 치료도 아주 다이내믹해진다. 고집스러운 일반 법칙을 포기함으로써 생생한 실감을 얻은 것이다." (약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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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좋아서, 어떻게든 정리를 해보고 싶었네요. ^^ 정리를 하면서 가미된 부분이 좀 억지스러울 수도 있을텐데요.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댓글목록

약선생님의 댓글

약선생 작성일

우와....꿈보다 해몽이라고 정말 근사합니다~ 목성샘들은 아름답기만 한게 아니라, 후기도 진짜루 잘쓰시는군요 !! 감동했습니다. *^-^*

동춘년님의 댓글

동춘년 작성일

드뎌 생각통님의 글이 올라오셨네요 호호호
약샘의 어눌해 보이는 강의에 엄청난 내공이 숨겨져 있다는 것 팍팍 느꼈는데 생각통님의 글을 통해 약샘의 강의가 더욱 빛나보입니다.

흠,,,자기만의 길은 낸다는 것 ...제겐 평생의 숙제가 될 듯합니다.
토욜 오전 이 글을 읽으니 다시 책을 펼쳐야겠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박재연님의 댓글

박재연 작성일

글 재밌게 잘 읽었어요. 그 날 약 선생님 강의 못들었는데 이렇게 재밌게 하셨던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