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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글쓰기 수업후기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안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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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화노인 작성일13-03-01 20:21 조회4,49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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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박지원지음, 홍문기 옮김, 보리출판사
1차시(2월 28일, 223페이지 까지)
조별 숙제 검사(각 팀장님께): 씨앗문장 적어오기와 씨앗문장 외우기
전체가 한자리에서 각 조 대표자와 지역별 대표자가 씨앗문장을 외웠습니다.
우와~ ‘총석정 해돋이’를 몽땅 다 외우신 선생님 대박입니다~~
고미숙 선생님께서 연암 글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성호 이익의 학문을 받아 다산이 집대성했다. 즉 많이 썼다. 이 말은 정치적 경륜에 의해서 된 책을 집대성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암처럼 쓰진 않았다.
다산 글이 특이한 점은 다산은 정치와 경륜이 중요한 사람인데 그것으로 글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유배 가자마자 학문을 했고, 이것 또한 다산이 가고자 했던 길이었다)
18세기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각자 다른 차이가 다른 종류의 길들이 있었다.
이 시대에 특히 다산과 연암이 등장했다.
“다름이 뭘까?”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고 탐구하면 그것이 곧 공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다산의 글은 거창하고, 원대하고, 헛갈리는 게 없다.
동시대에 연암의 새로운 스타일의 글이 등장했다.
연암은 짧은 소품문, 에세이 형식의 잡문들이다. 장중하고 디테일이 세밀하다.
이전의 연행록은 단조로웠으나 연암은 매순간 감흥을 느꼈던 것을 온갖 종류의 서풍으로 담아 놓았다. 주체의 자발적 독해가 필요하다. 자칫 한눈팔면 글을 놓치기 쉽다. 연암도 노자, 불교의 영향을 받아 깊이 사유할 수 있게 한다. 글쓰기가 매끄럽다. 거창하진 않다.
다산 글과 연암 글은 서로 나타나는 질감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
매번 다른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나와 만난다.
언어의 길이 있어야 글을 끄집어 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18세기에는 형식이 굉장히 다양했다.
연암은 시를 쓰는 것을 싫어했다.(50여수) 반면 다산은 2400수를 썼다. 보통 이 시대 사대부는 1000수 이상 시를 썼다. 그래야 사대부로써 교양을 익혔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시는 창조적인 것이 아니라 ‘운’을 맞춰야 했다. 중국어는 성조로 되어있어 시의 운을 맞추기 쉬웠지만 조선의 언어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시들 속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연암의 시가 등장했다.
연암의 시를 서로 가지려고 했다.
이덕무는 연암의 시를 보고 2번 울었다.
첫 번째는 연암의 큰 누나가 죽었을 때 쓴 묘지명이다. 묘지명에는 연암의 누나가 시집 갈때의 장면을 썼다. 이 묘지명에서 누나의 삶을 연암이 얼마나 같이 공감하고 있나를 우리는 보고있다.
두 번째는 연암에서 돌아간 형님을 생각하고 쓴 시이다.
우리 형님 신관과 비슷한 분 뉘였나?
아버님을 그릴 때 우리 형님 뵈었네.
이제 형님 뵈련들 어디 가서 뵈옵나?
옷과 갓을 갖추고 냇물 따라 거니네.
이 시는 연암이 50대에 썼다. 형을 그리워하는 소년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시 속에는 추억을 회상한다거나, 형님 모습을 묘사한 글은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형님이 보고 싶다는 연암의 마음만이 담겨있다.
연암의 시는 이러했다. 시마다 재미있는 일화를 만들었다.
다산도 묘지명을 썼다. 묘지명에는 족보, 학문적 계보, 그 사람의 성취 등등. 너무 긴 문장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산과 연암의 글은 서로 비교 할 수 없다. 마음의 장이 달랐던 것일 뿐.
심환지는 연암을 섭외하려 했으나 연암(노론 벽파) 특유의 농담으로 심한지(노론)의 스카웃을 피했다. 심환지는 정조 살해설의 주인공이다. 사실일까? 최근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 되었다. 정말 오금저린 말들까지도...
공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올 수 없고 대등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
반전이 일어나는게 유머와 역설이다. 그것은 파장이 인다.
연암의 <~전>은 현대 문학으로 보면 너무 아방가르드 하다. 압축적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이 시대에는 에세이의 형식이 매우 자유로웠다.
고정된 코드에서 의미를 펼치겠다는 것이 아니고 다양성과 이질성이 살아 있으려면 형식성이 있어야 한다.
정규직? 정규직이 되면 고착화 된다. 연암은 50세에 관직에 나갔지만 중앙 관직에는 가지 않았다. 자기가 선을 그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의 포부대로 펼칠 수 있었다. 몸이 굉장히 유연했다.
연암은 백탑 청연시절(지금의 파고다 공원)에서 동무들과 서로 모여 살았다. 이 시기가 에세이 시기이다.
혼자 심오하게 생각해서 쓰는 글이 아닌 집합적 관계에서 글이 나왔다.
이것이 다산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연암은 현장성 생동감을 잘 살렸다. 글자가 좋은게 아니라 글자가 어떻게 쓰이는가? 다중적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암 글은 지금 봐도 신선하고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정의 철학자들이 연암 시대는 그렇게 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우정이라는 가치가 전혀 어필 되지 않는다.
우정이 없으니 혈연, 효제가 남는데 효도도 오염이 됐다.
혈연 포기, 집합적 관계 포기, 인의예지신이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정만이 남아야지...
다산이 20세기적 코드(서양적, 계몽주의적)라면 21세기는 연암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 끝 -
잠깐 질문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시간: p224~끝까지 읽어오기
씨앗문장 적어오기
씨앗문장 외워오기
“정확한 관찰은 옳고 그른 한 가운데 있다” -말똥구리의 말똥덩이 중에서-
                       정리-B조 안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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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님의 댓글

생글 작성일

깊이 고개숙여 감사 인사 올립니다. 3.1절 연휴라 수업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표가 심야까지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이른 시간의 차표를 예매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수업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일어서 나오는라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업후기를 올려주시고, 과제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 ! 
저는 <~껄껄 선생~>에서 민노인에게 반하고 말았습니다. 밥투정(거식증), 잠투정(불면증)에 대한 긍정적 역발상이 통쾌하고 유쾌했습니다. 그런 멋진 민노인의 모습에서 연암의 혜안을 엿보며, 저의 노후를 위한 감이당에서의 공부에 달콤하게 젖어들고 있는 중입니다 ^!^

시연님의 댓글

시연 작성일

우와~~ 청주팀은 수업끝나고 다시 모여서 세미나 하시나보아요~ 덕분에 수업과 함께 사라졌던 기억이 잠시나마 돌아왔다는^^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