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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코스모스 1차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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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단주 작성일14-07-28 00:38 조회2,684회 댓글1건

본문

               

                     

                      마이크로코스모스를 통하여 배우는 윤리

   

감이당 공부를 시작한지 1년하고도 두 학기...... 자꾸만 윤리라는 단어에 꽂힌다.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내 윤리 의식에 대한 의심과 혼란으로 이어진다.〈마이크로코스모스〉의 1차시 수업의 핵심은 윤리였다.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근영샘께서는 먼저 생명과 윤리에 대한 질문과 고민으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첫 번째 질문-무엇이 생명인가?

이렇게 묻기는 힘들다. 어디까지가 생명인가? 오히려 이것이 낫겠다. 생명을 정의한다는 것은 윤리이다. 어떤 철학자 또는 과학자는 돌을 생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아니라고도 한다. 객관적으로 생명을 정의하기는 힘들다. 생명의 정의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윤리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어디까지가 생명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윤리적 책임을 가지고 공생하고 있는가?

 

두 번째 질문-어려운 과학적 용어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3학기는 밴드 글쓰기를 하므로 밴드조가 같이 공부해야 한다. 각자 모르는 용어를 하나는 꼭 파헤쳐서 같이 나누며 공부해야 한다. 과학은 언어적 구조가 중요하다. 언어의 장벽을 조금만 통과하면 과학이 쉬워진다. 일단 이 책에는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학을 주제로 에세이를 시작할 때 일단은 신기해서 신이 난다. 하지만 직접 쓰려면 막막해진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메타적 사유이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 기본적인 과학적 질문 너머의 상상력을 끌어와야 한다. 이제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에서 벗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윤리적 삶에 대한 창안을 이루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교환이 우리 삶에서는 책을 통한 수평적 교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박테리아를 통해 알게 된 윤리이다. 메타적 사유구조를 가져라.

 

세 번째 질문- 여성 과학자 린 마굴리스는 왜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썼나?

“아무리 싸워도 그 중 누구도 지구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다.”

인간의 몸은 미생물 1000조개의 번식처이다. 그 중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1%이다. 그렇다면 인간도 지구에게 1%로의 병원균이 아닐까? 물론 이 책은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박테리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아니다. ‘자연보호’는 자본의 움직임과 밀착되어 있으므로 의무적, 당위적, 자비심으로는 설득하기가 힘들다. 모두들 “나 죽으면 끝!”이라는 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동일하게 간다. 우리의 삶의 태도는 약자를 대할 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연결된다. 자신이 옆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스스로 돌아보라. 4대강 사업 이후 큰빗이끼벌레가 새롭게 발견되었다.(보를 건설함에 따라 물이 체류하는 시간이 증가한 탓이다 . 수심7m 아래 쪽은 공업용수 사용으로도 어렵다고 한다.)우리는 그것이 인간에게 해로운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것이 먼저가 아니다. 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었던 전체적 시스템은 권력의 작동방식에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 공부가 기회이다. 왜 이런 일이 있어났을까?를 사유해야 한다.

박테리아, DNA, RNA 이러한 과학 용어보다 과학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 되어 있는지, 과학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생각하고 접근해야한다. 무엇을 배우냐에 대한 답은 어떻게 사유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린 마굴리스가 이 세계를 어떻게 자각하고 있는지를 읽어내야 한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공생설’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먼저 일러 둘 것은 우리는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공생적 느낌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지만 과학적 내용에 천착하지 않고 삶에서 오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공생설을 공부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윈의 ‘자연선택’을 공부해야 한다. ‘공생설’은 ‘자연선택’에 대한 반론이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을 천천히 공부해야지만 ‘공생설’이 제대로 이해가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윈의 이론을 ‘진화’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다윈은 ‘진화’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다만 그는 ‘변이를 수반한 유전’이라고 했을 뿐이다. ‘유전’과 ‘변이’는 꼭 같이 발생한다. 이 둘 중 무엇에 무게를 두는가는 중요한데 다윈은 ‘변이’ 쪽에 무게를 두었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적자생존, 점진주의적 진화, 유전자 중심주의의 연구로 나아갔다.

 

‘적자생존’이란 생명체가 환경에 적합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이론인데 적합도의 기준은 유용성이다. (이 이론에서 우리는 바로 윤리적 문제를 도출 시킬 수 있다. 자본의 사회에서의 인간은 자신의 화폐 생산의 유용성에 따라  많은 시험을 겪고 좌절한다.) 다윈은  세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무작위적으로 변이가 일어났다고 보았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조화롭다고 한다. 사실 우리 인간의 몸이 조화로운가? 다른 곤충이 우리 인간을 보고 조화롭다고 할까? 아니 징그러운 괴물이라고 할껄! '적자생존’의 논리에서 찾을 수 있는 오류는 우리가 환경을 너무 추상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환경은 어데로 갔나? 적합성은 생명체와 생명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자가 묻히는 땅이 명당이 된다고 한다” 환경의 조성은 생명체가 바꾼다. 생명체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작용을 하는 쪽이 있으면 받아주는 작용을 하는 쪽이 반드시 존재한다. 모든 물체는 작용을 같이 한다. 따라서 생명체가 곧 환경인 것이다.

 

‘적자생존’의 이론은 살아남는 것이 적합한 것이다라는 생존의 논리로 나아가더니 “살아남는 놈이 장땡!”이라는 논리로 변용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도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유용한 유전자는 대략 10%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0%는 없어져야 할 쓰레기 유전자인가. 아니다. 유용한 유전자의 10%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90%의 무용한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유용한 것이 살아남는‘적자생존’의 이론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연선택설’의 또 한가지 점진주의적 진화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점진적 진화란 진화가 갑자기 점프하여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이 내 몸의 기관들이 적합하고 유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전의 반쯤 진화한 것은 과연 유용하여 살아남았나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다윈을 고민하게 만든 질문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설명을 린 마굴리스는 ‘공생설’로 답하고 있다. 지구가 탄생하고 생명의 기원이 출현했던 것은 아마도 약 39억년~25억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 때 분자들이 자가조직할 수 있는 화합물들이 서로 상호보완하여 마치 생명체같은, 궁극적으로 복제 가능한 구조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이퍼 사이클의 기본 개념이다. 촉매와 그들의 촉진 반응에 의해 많은 화합물들이 생겨났는데, 둘 또는 그 이상이 자가촉매 사이클이 상호작용을 하면 ‘하이퍼 사이클’이라는 더욱 강력한 촉매작용이 유발될 수 있다. 이 사이클의 진행은 최초의 세포를 탄생시키는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어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발전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자가보전, 즉, 주위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자신을 능동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분자는 독립적이고 치밀하게 변해 가며 스스로를 보강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겨 났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생명 탄생에 아주 긴요한 존재였던 ‘막’ 구조가 형성되었다. ‘막’ 구조는 가장 작은 단위인 마이크로코스모스 형성을 가능하게 했으니 그것이 원시 박테리아다. 어떤 생물도 최소한 한 종류의 막 구조를 가지지 않고서는 그 존재가 성립되지 않는다.

 

‘막’은 내부를 만들며 외부까지 동시에 만들었다. 이것으로부터 경계가 시작되었다. 내부가 생기며 동시에 외부가 발생한다는 것, 이것이 공생이다. ‘막’의 내부와 외부의 형성은 생명체의 시작이었고, 그 생명체는 반드시 이웃 생명체와 같이 한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과학에서 윤리를 발견하는 부분도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할 듯하다. 생명체의 탄생과 동시에 윤리적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코스모스’.......2부가 기대된다. 윤리에 대한 자각이 절실하기 때문에......






  

댓글목록

생각통님의 댓글

생각통 작성일

과학 공부를 어떤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그 문을 진솔하게 열어주셨네요. 후기 작성하느라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