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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에세이 발표 2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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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도가 작성일14-09-28 08:02 조회2,59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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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목성 선생님들^^
지금쯤은 에세이를 마치고 잠시의 여유를 즐기시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하하 그런데 제가 이 판을 깰 것 같네요. 우리는 12시간을 거친 에세이 발표를 통해 명실상부하게 ‘일파만파’조의 재수 없는 제목(ㅋ 제 조입니다.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처럼 일파만파 12개조가 전멸하는 파급의 역동성을 끝까지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역시 목성은 의리의 공동체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글쓰기에는 ‘공동체’ 얘기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근영샘 지적대로 ‘모든 걸 전제해서 썼다’는 데서 온 결과가 아니었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의 글이 어디서 어떻게 잘 못 된 것일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다시 들추어내야만 한다는 것, 어쩔 수 없다는 거 다 아시죠?
목성은 12개조중 6개조가 바렐라의『몸의 인지 과학』, 나머지 2개조는 모스의『증여론』, 엘리아데의『성과 속』, 마굴리스의 『마이크로코스모스』로 썼더군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른 책을 가지고 썼음에도 모두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는 겁니다.
 
1. 왜 글에 저자가 보이지 않는가.
근영샘은 우리의 글에서 바렐라가, 모스가, 엘리아데가, 마굴리스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글의 패착이 시작되었다는 거죠. 이번 목성의 글쓰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왔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힘이 달려서 못했다가 아니라 첫판 첫스텝을 잘못 디딘 것이고 그래서 마지막 마무리에서 꼬이게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명석판명하십니다. 아~이젠 잘 몰라서, 능력이 이것밖에 안 돼서가 통하지 않겠네요.
 
 첫 발을 잘 내디기 위한 작업은 무엇보다도 충실히 책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고 해야 하며 개념어를 정치하게 풀어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알 때까지 이해 될 때까지 읽고 또 읽고 그 다음에 자기의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에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요약 정리하거나 이론서로 빠지고 맙니다. 전자가 또 잘 되면 다행인 데 저자의 말을 갖다 쓰는 정도, 그래서 잘못 된 예를 가지고 오고 말죠. 헉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려집니다. 문탁 김지원이 바로 그런 예잖아요. 샘들 보셨죠? 김지원에서 바렐라가 보이냐는 질문에 바로 ‘노우’라고 말하며 처참히 무너지는 제 모습을요. 이러시면 절대 안 됩니다.
 
⟹책을 충실히 읽고 지은이가 말하는 의도를 철저히 파악한 후 자기의 언어로 풀어내라!!
 
2. 글은 열고 쓰고 닫아야 하는데 이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근영샘은 이것만 잘 지켜도 글쓰기가 그렇게 헛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앞에서는 이런 문제 제기를 하셨는데 본론에서는, 혹은 결론에서는 딴 소리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대답해 달라”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글을 쓰다가 처음에 말하려고 한 중심 논제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하는데 중간에 길을 헤매고 맙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다 자신도 모르게 주제는 잊고 주제를 말하기 위해 가져온 다른 것에 오히려 집중해 버리는 것이죠. 하긴, 첫 스텝도 잘 못 찍고 정신줄 놓아버렸으니 제대로 된 글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비문이 나오는 것도 이런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샘은 또 하나의 팁을 주셨습니다.
 
⟹문장과 문장의 인과 관계를 철저히 살펴라. 논리적으로 안 맞으면 바로 지워라.
그리고 묻고 또 물어라. 저자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그래서 합당하게 쓰고 있는지
계속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5조> 니들이 밴글의 맛을 알아? (최소임, 신혜정, 안은숙, 장일영)
창발을 가지고 글쓰기로 풀어내려고 했는데 바렐라는 놓치고 어떻게 잘 쓸까, 배울까만 있다. 창발은 더(플러스)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핀트가 어긋났다. 그러니 효율과 성과의 맥락만 있을 수 밖에 없다. ‘창발은 ~이다’라고 도식적으로 써야한다. 즉 인용문 충분히 얘기하면서 풀어써야 한다. 요리를 하는데 부엌에 들어가면서 도끼를 들고 가고 있다. 도구를 확실히 다지고 들어가야 한다. 창발은 예상치 못한 결과인데 자꾸 과정이라고 전제해 놓고 썼다. 그래서 그걸 향해 스텝을 밟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모인 기획 밴드 같다.
 
6조> 다시, 문턱을 세우고 (김선화, 김연실, 박지희, 이흥선)
 지금 삶은 균질과 비균질이 섞여 있다. 엘리아데의 성은 잃어버려서 없는 게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 안으로 들어가 있다. 무의식 속에는 긍정적인 것, 부정적인 것이 다 들어있다. 그러니 성은 비균질이고 속은 균질이라는 질문이 합당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즉 우리는 왜 속을 균질적으로 성을 비균질적인 것으로 봤을까 고민해야 한다. 글에서 당연히 엘리아데가 보이지 않는다. 엘리아데가 말한 열린 구조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균질한 것은 나쁘다는 너무 많은 전제를 깔고 있다. 그래서 글이 너무 쉽다. 내 삶에서 균질적인 것이 뭐지라고 물어야 했다. 차라리 내 시공간의 균질함을 얘기하는 게 낫다.
 
7조> 집착을 넘어선 마음 (이복순, 오기화, 박재연)
 ‘자아 없는 마음’을 충분히 얘기하고 넘어가야 한다. 바렐라의 언어를 내 말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하는 데 필요한 부분에 개념어를 그냥 갖다 썼다. 자아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데 문제가 되는 지점, 힘이 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물어야 한다. 자아를 가졌을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납득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글을 써야한다. 집착을 넘어선 마음을 바렐라는 어떻게 봤는가에서 시작되어야 했는데 어떻게 하면 자아 없는 마음으로 가는가에 대한 전제로 출발했다. 그래서 집착을 어떻게 넘어설까에만 급급하다. 집착에 지관하지 못하고 마음이 너무 앞서 갔다. 앞으로 달려가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 집착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면 해결도 안다.
 
8조> 스펙 현상을 통해 본 표상주의 ( 조해숙, 신명화, 김주한, 방은영)
일단 표상에 대한 것을 정리하지 않았다. 스펙과 능력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말할 때 무근거성을 잘못 이해하고 개념어가 안 풀렸다. 여기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뒤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스펙은 버려도 표상은 버릴 수 없다가 되고 말았다. 글 중간에 선택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미 주체와 객체를 전제하고 있다. 자연 선택과 자연 부동을 가르는 절대적 경계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글쓰기를 할 때 자신들과 부딪히는 부분을 써야 하는데 내가 스펙과 부딪히는 지점에 대한 질문이 없다. 바렐라 얘기할 때 스펙으로 말해볼까 이런식이다. 나에게 표상으로서의 스펙을 써야 했다. 강렬도의 싸움에서 많이 떨어진다. 고민보다 글이 앞선 글이다. 그리고 비문을 자꾸 쓰는데 조원들이 알려줘야 한다. 이것을 고치는 게 우선 급선무다.
 
모두들 수고 하셨습니다. 쓰면서도 가슴이 쏴하고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휴~~
댓글목록

필벽성옥님의 댓글

필벽성옥 작성일

후기 감사합니다.  신도가가 지숙샘?  동춘년에서  바뀌었네요. ㅎㅎ

햇살사랑님의 댓글

햇살사랑 작성일

에세이 끝나고 지쳤다고 딩굴고 있었는데.. 이렇게 후기에 열정 가득 실어주신 지숙샘의 노고에 정신 바짝 차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