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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1학기 5주차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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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승현 작성일24-03-16 15:58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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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에는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두 번째 강의가 있었다. 첫 시간에도 강렬했지만, 점점 그레이버의 주장에 빠져들게 된다. ㅎ 

그레이버 왈, 인간의 본성은 많다. 그중에서 무엇을 본성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몫이 된다. 그 본성을 설정하는 중에,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를 보면 그가 어떤 인간상을 전제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부채를 강조하는 파, 호혜를 강조하는 파, 교환을 강조하는 파 세 종류가 있다. 이 시작 자체가 흥미로웠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라. 

① 교환으로 설정하는 자 : 인간관계를 교환으로 설정한다는 것. 이것은 기본적으로 관계가 ‘동등하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양화 불가능한 것을 양적으로 계산하여 관계를 맺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맥락은 소거된다. 사유화하게 되면 소유로 응고되고, 모든 것이 계산적인 것이 된다. 

② 호혜로 설정하는 자 : 힘의 낙차가 있으니 계속해서 원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개를 받으면 2개를 보내라. 물건을 받고, 낙차를 두어 다른 이에게 준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준다. 그런데, 이것은 채권자의 마음으로 주는 것이다.

③ 부채로 설정하는 자 : 우리는 신(우주, 자연)에게서 계산 불가능한 것을 받았다. 이는 양화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채무자다. 채무자로서 계속해서 갚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는 채무자의 마음으로 주는 것이다. 

처음에 호혜와 부채의 관계가 좀 모호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모스는 낙차를 두어 관계를 끌어가라(호혜)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레이버(신이치도)는 모스가 설정한 구도에서는 신하고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신, 자연, 우주적 인드라망이라는 자장 위에서 주고받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레이버는 모스가 멈춘 지점에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그러했듯이, 현자들이 그러했듯이, 채무자들의 커뮤니티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채무자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레이버는 그것을 ‘공산주의’로 설명한다. 

공산주의는 무엇인가. 그레이버가 주장한 공산주의에 입각해 생각해보자. 공산주의의 원칙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교환을 떠나 주고받는 것이 너무 많이 보인다. 사실, 양적으로 재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주고 받고 있기 때문에 계산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채무자가 되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각자의 능력을 고양시키는 관계 속에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공산주의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려면? 힘을 쓰는 자가 그 힘을 축적하는지, 재분배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위치가 고정되는가’하는 것이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사람 등으로 고정되는 순간, 계급이 생긴다. 그러면 위치가 고착된다. 상황은 늘 우발적이다. 우발적인 상황에서 고정된 포지션을 취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적이지 않다’.

재미있는 부분은, 그레이버가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것이다. 신의 존재 혹은 위치를 상정한다고 할 때, 우리는 계산 불가능한 베풂을 갚을 길이 없기에 채무자로 살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공산주의다. 그런데, 일명 부르주아라고 하는 계급은 자신의 위치를 신과 동등하게 설정한다. 이들의 사고체계는 다음과 같다. 신이 주는 것은 너무 많다. 이것을 갚을 길이 없다. 부채의식을 갖게 되고, 이것은 결국 죄의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마치 착한 감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죄의식은 신과 동등하다는 의식 속에서 갖게 되는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3교시에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신이치는 사랑과 경제라는 서로 멀게만 느껴지는 두 단어가 깊은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문적으로 이를 통합한 사례가 없었다고. 우리는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살짝 경험할 수 있다. 『어린 사환의 신』과 『위조화폐』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 교환, 증여, 순수증여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교환과 증여 사이에서는 상품이, 증여와 순수증여 사이에서는 영력의 증식이 일어난다. 

①먼저, 교환과 증여의 관계다. 우리는 교환에서 증여가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증여에서 교환이 출현했다. 증여는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굉장히 복잡하고 섬세한 일이다. 이 관계 가운데 자동하는 사랑과 신뢰와 같은 힘이 제거되고, 간단하고 합리적인 교환의 원리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더 것이다. 그렇게 인격성이 제거된 것이 상품이 된다. 

②다음은 증여와 순수증여의 관계다. 이 둘의 관계는 포틀래치 의식으로 설명된다. 증여는 선물이 순환해가는 둥근 고리를 만든다. 이 고리 위에서 선물과 답례가 이루어지면서 관계가 발생하는 것. 그러다 이 고리를 절단시키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이때 이질적인 원리인 순수증여가 드러나게 된다. 포틀래치에서 추장이 동판을 쪼개서 바다에 던져버린다. 증여의 고리가 절단된 것이다. 그런데, 의식이 끝나고 난 후에, 쪼개진 동판을 주워 새롭게 이어붙인다. 순환 밖으로 튀어나간 동판 조각들은, 순수증여의 영력과 접촉해 증식하는 능력을 부여받아, 또다시 증여의 순환 사이클 안으로 돌아오게 되는 셈이다. 이는 디오니소스 신의 제의를 떠오르게 한다. 포도가 으깨지지만, 그 으깨진 포도는 포도주가 되어 돌아온다.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과 부족을 넘어, 전 우주의 건강한 운행을 저해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우주적인 책임감에 의해 증여의 사이클이 유지되었다는 말은 잊히지 않는다. 증여와 순수증여 사이에 영력이 증식된다고 했는데, 다음주 분량에서 이 증식의 비밀이 밝혀진다.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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