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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1학기 6주차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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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보리 작성일24-03-19 20:56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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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대중지성 렉처 세미나/<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3~5/2024320/ 진혜린

 

증식의 비밀과 최후의 코르누코피아

 

- 증식의 비밀은 미지의 증여론

마르셀 모스는 증여의 관행을 움직이는 원리는 증여의 원리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증여의 원리는 한쪽 한계영역에서는 교환의 원리와 반대쪽 한계영역에서는 순수증여의 원리와 접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전체성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증여 사이클의 운행에 갑자기 수직적으로 개입하는 어떤 유동적인 힘을 감지한 마오리족 사람들은 이것을 일러 하우가 움직였다고 표현했고요. 이때 감지된 유동적인 힘은 순수증여를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힘이 개입하면 순수증여의 원리와 증여의 원리가 하나의 전체 운동을 하게 됩니다. 증여의 사이클이 한창 작동 중일 때 느닷없이 침입하는 순수증여의 힘을 허용하면 그 순간 사람들은 뭔가 풍요로운 것의 증식이 일어난다고 감지했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순간들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움직이는 어떤 힘의 위력이 증대해서, 언젠가 이 세계에 탄생하게 될 의 수나 양, 질 등을 더 풍부하게 해 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순수증여는 실제의 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이동해가는 교환이나 증여와 달리, 어떤 특별한 순간에 느닷없이나타났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실체로서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순수증여는 지()의 영역 밖에 존재합니다. 이런 순수증여하는 힘증식이라는 문제를 깊이 탐구했던 증여사회 사람들이 찾아낸 것이지만, 우리가 마음속에 갖고 있는 한계영역을 뛰어넘을 때면 언제든, 지금도 접촉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연원이 참으로 깊다고 하겠습니다.

 

순수증여를 하는 힘이 남긴 흔적들 (구석기 시대의 밀교와 현교)

구석기시대 호모사피엔스가 남긴 동굴벽화 (‘라스코 동굴벽화가 대표적)에는 증식이라는 주제와 죽음이라는 주제가 함께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순수증여의 힘의 방향을 나타내는 선이 현실 세계와 교차할 때면생명의 증식이 일어나지만 그 힘의 방향이 바뀌어 원래의 잠재공간 안으로 돌아갈 때면 생명은 소멸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인류가 순수증여의 힘에 대해 철학적인 사고를 했던 장소였음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성인 남자만으로 치러진 밀교 의례에서는 여성, 암컷 혹은 자연이 가진 생산력은 추상화된 순수증여의 원리같은 것으로 바뀌어 사고의 대상이 되고, 동물의 모습이 일종의 기호로서 그려졌던 반면, 현교적인 밝은 의식에서는 여성성이나 생식성이라는 주제가 현실의 여성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그대로 등장합니다. 보다 세속적인 형태로 표현된 순수증여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동하는 부()

증여와 교환은 사회에 유동을 발생시킵니다. 증여의 사이클이 이동해가는 것은 사회 전체를 끌어들인 일종의 사업이라 할 수 있어서 개인은 각자 그 사이클 일부분의 움직임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신속한 유동이 이루어지도록 신경(의무적으로)을 썼습니다. 그래서 증여는 우주마저 움직이게 한다는 표현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이전의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부의 유동 정지라는 것을 주제로 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발견됩니다. 그것들 중 하나인 <볼숭Saga>라는 이야기에서는 화폐의 출현이 갖는 인류사적 의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프레이드 마르는 아들 오타르의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 해달 가죽 안에 채워져 있던생명을 대신해서 황금을 가득 채우라고 요구합니다. 생명과 황금을 등가의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겁니다. 한편, 정보수집의 대가인 로키는 난쟁이 안드발이 용소 부근의 바위틈새에 막대한 황금을 숨겨놓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를 표적으로 삼아 숨겨놓은 황금을 전부 빼앗고 황금 팔찌마저 빼앗습니다. 안드발이 그 팔찌와 황금을 갖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따를 것이라는 저주의 말을 내뱉지만 선악의 구별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로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요. 황금의 무더기를 본 프레이드 마르 역시 그것으로 보상문제가 일단락 지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로키가 안드발의 저주까지 고스란히 넘겨줌으로해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저주는 곧바로 실행되어 큰아들 파프니르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보물을 독점합니다. 하지만 파프니르도 언젠가 살해당할 겁니다.

 

보물에 대한 욕망 때문에 가족간의 사랑을 잃은 일족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힘든 비극을 겪게 됩니다.

 

-이 화폐라는 것은 대지를 죽일 것이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구석기시대 부()는 자연이 행하는 순수증여가 현실 세계와 만나는 교차점에서 출현합니다. 그러면서 쉽게 소멸된다거나 덧없음을 특징으로 죽음과 일체를 이룬풍요로움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화폐의 출현은 부에 대한 그런 관념을 단박에 바꿔버릴 만큼 힘이 있었습니다. 일단 출현한 부()가 화폐에 의해 표현되면 간단히 소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인류가 유동하는 영력인 순수증여의 힘을 느끼며 대지나 자연에 대한 감각과 사고를 키워왔는데, 그것이 이제는 금속의 유동체로 바뀐 겁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미다스은 직관적으로 조만간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만한 변화의 징조를 화폐에서 감지했던 겁니다. 화폐에 의해 부가 표현되고 계산되고 유지되다 보면, 순수증여라는 실재는 말살되고 그러다 결국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거지요. 실제로 화폐의 형태로 변형된 부는 부를 낳는 원천까지도 고스란히 사회의 내부로 가지고 들어와서 모든 것을 인간화해 버립니다.

 

국가와 화폐가 초래한 혁명

화폐의 출현으로 벌어졌던 똑같은 과정이 왕이나 국가의 발생현장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국가가 없던 사회에서는 권력의 원천이 자연에 있었지, 사회 내부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왕과 국가가 출현하면서 사태는 돌변합니다. 왕은 자연 쪽에 있던 권력의 원천을 자신이 체현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권력의 원천을 사회 내부로 들여와 모든 것을 인간화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와 화폐는, 신석기 시대의 특징이 남아있던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온, 인류의 마음 구조의 변화를 따라 발생한 것으로,그 본질은 똑같은 것입니다. <볼숭Saga>가 그런 마음 구조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합니다.

 

코르누코피아의 정신화 (성배 탐구의 유행과 자본주의의 탄생)

화폐 본래의 기능은 원활하고 합리적인 가치의 유통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체적인 힘만으로 부를 낳는 코르누코피아형 증식이 가능하리라는 상상의 결과, 잠자고 있는 보물을 둘러싼 다양한 신화적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교환- 증여- 순수증여가 형성하는 전체성 속에서 이런 사고법은 코르누코피아의 정신화라는 방법으로, 사장되곤 하던 부를 상인의 손에 넘겨서, 부가 사회에서 폭넓게 유통되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로 향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의해 정신적 요소가 보태지면서 성배(Holy Grail)의 개념으로 변화합니다. 성배는 정신화된 부를 상징하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물질화에 의해 화폐는 물질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순수한 기표에 접근하게 됩니다. 이후 전개될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향해 확실하게 한발 다가갈 수 있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부의 비 물질화에 대한 소망이, 구석기시대 호모사피엔스의 뇌에서 에 대한 사고가 싹튼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방향 중의 하나였다고 하는 점입니다. 유럽에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을 시작한 그 시대(12세기 후반)에 느닷없이 성배전설이 표면으로 떠오르게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최후의 코르누코피아 (대지의 선물=농업)

앞에서 얘기했듯이 코르누코피아는 무궁무진한 부를 산출하는 신비한 그릇입니다. 그것은 3만 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가 증식이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각 시대에 적합한 다양한 이미지의 형태를 띠고 등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이 증식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요로움이라는 단어를 통해 인간이 표현하려 했던 것의 심층으로 들어가 보아야 하는데, 근대의 경제학조차 예외가 아니어서 예나 지금이나 코르누코피아를 둘러싼 신화로부터 그 양분을 빨아들이려 노력해 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증식이라는 문제는 합리적인 사고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편, 중농주의(physiocracy)에서 근대 경제학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중농주의는 어떤 걸까요? 중농주의에서는 부의 증식이 대지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대지에 대해 노동을 가하면 대지는 풍요로움을 증여하는데 그 증여는 무상증여라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부의 증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순수증여라고 생각한 겁니다. 이처럼 중농주의에서는 교환보다 증여가 훨씬 중요시되었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근대 경제학이 시작되었다니 뭔가 묘한 느낌이 듭니다.

어쨌든 성배로서 정신화된 코르누코피아의 개념은 18세기 대농업국이었던 프랑스에서 새로운 형태로 소생합니다. 중농주의 이론과 더불어 대지 자체가 코르누코피아가 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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