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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2학기 2주차(2016. 5.11)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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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차 작성일16-05-16 01:27 조회3,35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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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2학기 2주차(2016. 5.11) 수업후기 / 양형남


1교시. 의역학 입문 - 도담 선생님


이 시간에는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2장 신형 중에서 ‘몸의 정치학’과 ‘시간의 리듬과 마음의 조절’ 및 3장 ‘정, 기, 신’ 중에서 ‘기’와 ‘정’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다.

동의보감에서 몸의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무의치지이다. 무의치지란 억지로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통치를 말한다. 이는 천지자연의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이 스스로 순환하듯, 몸 역시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자생력에 의해 순환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몸에 대한 무위의 통치술이다. 몸이 자생적으로 순환하려면 기본적인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한 관리를 ‘양생’이라고 한다.

평형상태에서는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뭔가 치우쳐 있어야 빈곳을 채우면서 순환이 일어난다. 그 치우침을 얼마나 덜 치우치게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 양생법이다. 양생에서는 담을 중요하게 여긴다. 담담하다, 담백하다 등 담을 만들어 내려면 역동적인 힘이 필요하다. 가만히 있으면 한쪽으로 치우치므로 치우치려는 것을 바로잡아 균형을 잡으려면 오히려 힘을 써야 하므로 담은 역동적이다. 이러한 힘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자기 원칙을 만들고 수정하면서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양생을 적절하게 실천해야 자생력이 강해지고 자생력이 강해지면 음양의 균형이 치우치지 않는다.

시간의 리듬을 맞추면 사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시절인연을 놓치고 산다.

때를 맞춘다는 것은 시간을 지키는 것인데, 시간을 못 지키면 공간하고 매치가 잘 안되며, 삶이 한발씩 어긋나게 된다. 내일까지 뭘 해야겠다고 내가 시간을 정할 때 오장육부 중에서 간을 쓰게 되는데, 간이 무엇인가 발동을 할 때는 그때 하늘과 연결이 된다. 뭔가 절실하면 하늘이 도와준다고 하는데, 그 시간에 내가 그 공간에 없으면 하늘과 연결이 안 되어 하늘의 기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니까 시간약속은 나를 위한 것이다.

정과 기와 신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다. 정˙기˙신은 본래 하나의 기에서 출발했지만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다시 셋으로 나뉜다.

‘정’은 몸의 물질적 토대다. ‘신’은 이 물질에 영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쉽게 말해 정은 육체이고 신은 정신이다. ‘기’는 신의 조상이고 정은 기의 자식이니, 기는 발생론적으로 신과 정에 앞선다. 즉 정과 신의 뿌리는 ‘기’다. 이 발생의 구도를 단순하게 ‘기-(정-신)’으로 도식화해 볼 수 있다. 여기서 기는 인간의 육체(정)와 정신(신)으로 변용되기 전, 원형(原形)으로서의 자연이다. 그러므로 ‘정˙기˙신’이라는 용어는 육체(정)와 정신(신)이라는 현상적 구조와 그 존재론적 근원으로서의 자연(기)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말이다.

‘기’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하는데, 첫째는 발생학적으로 정과 신의 모태가 된다. 기를 몸의 원류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촉매작용이다. 약간의 이질성으로 몸의 순환을 촉발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는 원형이면서 자가 촉매로서 존재한다. 그런 여러 모습의 기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천기는 호흡이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 폐를 통해 자발 호흡을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된다. 우리 몸의 장기 중 제일 위에 위치한 폐를 통해 호흡을 함으로써 하늘과 인연을 한다. 그때 하늘의 운기를 받아들인다. 고통스러우면서 이 자연의 기, 천기를 받아들인다. 통증과 함께 하늘의 운기와 만나는, 그래서 태어나면서 사주가 첫 숨과 함께 엄청난 시그널이 바뀐다. 그냥 얻는 것이 아니다. 흔히 사주명리라 불리는 이 학문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폐의 첫 자발호흡을 통해 만나는 천기의 시간성이다. 그 첫 호흡에 새겨진 코드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본다.

지기는 음식물을 섭취하여 얻는다. 과거에는 음식물 하면 주로 땅에서 나는 곡식을 가리켰기 때문에 지기를 곡기(穀氣)라고도 한다. 음식에서 만들어진 기는 면역계의 역할도 한다. 이 면역작용은 양기(陽氣)가 담당한다. 양기는 몸의 외부를 지킨다. 외부를 지킨다는 것은 일종의 면역작용으로, 여기서 말하는 양기가 바로 위기(衛氣)다.

위기는 영기(營氣)와 함께 음식에서 만들어진다. 음양으로 따지자면 영기는 음이고 위기는 양이다. 영기는 맑고 부드럽기 때문에 맥 안으로 들어가서 피가 되고, 위기는 탁하고 거칠기 때문에 맥 밖에서 외사를 지키고 혈액순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

‘정’은 육체이기도 하고 신장에 저장된 에너지 원천이기도 하다. 협소한 의미에서는 정액으로 보고 크게는 우리 몸을 일으키는 어떤 에너지, 뇌를 채우는 어떤 물질 등으로 본다. 그래서 눈물, 정액, 침, 땀, 호르몬 등이 되기도 한다. 우리 몸의 70~80%는 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온몸이 정 덩어리라고 볼 수도 있다.

정은 특히 아껴야할 것인데, 남자는 방사를 해서, 여자는 감정으로 정을 훼손시키는 제일이 대부분이다. 여성들은 감정이 뭉쳐서 담화가 되는데 이런 것들이 자꾸 기운을 태워서 정을 훼손시킨다. 남자들은 정액을 씨앗이라고 보는데, 이 씨앗을 함부로 썼을 때는 정이 고갈된다. 서양의학에서는 이것을 단백질 덩어리로 보며, 먹어서 채울 수 있는 어떤 물질로 본다.


2교시. 독송 세미나 - 이정수 선생님


『혈자리서당』 1장 수태음폐경의 오수혈 중 태연혈과 어제혈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 태연(太淵) - 수혈(토), 수태음폐경의 원천이자 맥 집합소

태연혈은 수태음폐경의 오수혈중 수혈로 토의 기운이다. 태연의 태(太)는 ‘크다’와 ‘심하다’, 연(淵)은 ‘물줄기가 모여 있다’와 ‘깊다’는 뜻이다. 태연은 이렇게 크고 깊은데다가 근원의 샘줄기, 원천수가 머무는 혈자리다. 원천수가 머물기 때문에 원혈(原穴)이라 한다.

원혈은 기본적으로 손목이나 복사뼈 관절 부위에 있다. 태연혈 자리는 엄지 쪽 손목부위인데, 한의원서 진맥할 때 잡는 곳이다. 정확하게 촌구(寸口)에 해당하는 곳으로 왼손은 심장을, 오른손은 폐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맥은 태연에 모인다’는 말이 있다. 맥은 혈과 기가 흘러 다니는 통로이다. 그래서 기혈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맥이 없고 온 몸에 열이 나는데, 손발은 차거나 심신이 무기력해진다. 이때 태연을 자극하면 맥과 기운이 살아나면서 울결된 기의 흐름을 흩어줘 열을 내리고 맑고 서늘하게 한다. 태연은 폐의 원기와 맥기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혈자리로 수태음폐경의 기혈을 전체적으로 보하는 혈자리다. 그래서 폐나 폐기와 관련이 깊은 호흡기변, 해수, 천식과 기혈의 부조화로 생기는 심장병, 심혈관에는 태연을 기본으로 쓴다.

 어제(魚際) - 형혈(화), 건강의 바로미터

어제혈은 수태음폐경의 오수혈중 형혈로 한 혈자리에 특성이 다른 세(금, 화, 토) 기운이 있는 보약 같은 자리이다. 어제의 어(魚)는 물고기를 본뜬 상형문자이고 제(際)는 언덕을 나타내는 좌부변과 제사를 뜻하는 제(祭)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어제혈 자리는 손을 펴서 엄지손가각 마디가 끝나는 안쪽 볼록한 부위의 손등과 손바닥이 만나는 곳의 중간 지점이다. 어제는 형혈인데, 형혈은 정혈 다음으로 기가 조금 커진 것으로 음경의 경우 화의 기운이 흐르는 혈이다. 정혈을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한 사기도 형혈에 와서 그 세력을 모으고 힘을 키우게 된다. 이럴 때 몸은 열을 내는데 형혈에는 화를 다스리는 기운이 있다.

어제혈의 색으로는 위장의 건강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비위가 차면 어제에 푸른빛이 나고, 열이 있으면 붉은빛이 난다고 한다. 검은색일 때는 위의 기능저하가 만성된 상태이다. 어제는 몇몇 증상의 특효혈로도 유명하다. 근육경련이 일어나면 어제혈을 지압해주면 좋고 딸꾹질이 날 때도 어제를 지압하면 효과가 있다. 또한 어제혈은 과음 후 숙취에 좋은 혈로도 유명한데, 이럴 때도 어제혈을 지압해 주거나 시원한 성질을 가진 파스를 혈자리에 붙여 자극을 주면 숙취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3교시. 글쓰기 기초 - 채운 선생님


『일리아스』두 번째 시간으로 운명, 명예, 영웅성, 전쟁의 의미를 중심으로 강의를 해주셨다.

일리아스에서 먼저 이해를 해야 되는 키워드가 ‘운명이란 무엇일까?’ 이다.

인간은 나름대로 주관과 사고가 강하기 때문에 운명에 따른다거나, 자기 삶속에서 운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고대는 그 운명에 대한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고 우리와는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먼저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글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명예도 그 운명에 대한 인식과 연관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명예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날리는 것,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는 자의식하고 연관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운명이다. 운명이라는 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moira이다. 누구나 똑 같이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분(分)이다. 누구나 똑같이 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게 주어지는 몫으로 그 몫은 평등한 것이 할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이해가 개인의 명예와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전쟁이란 무엇일까를 이해하는 것이다.

일리아스가 모든 서양인의 원류, 서양인의 에토스, 정서적인 태도가 이런 일리아스에서 시작한다고 할 때, 그게 왜 전쟁일까? 전쟁(트로이전쟁)을 우리가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전쟁이라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은 참을 수가 없다. 그리스 고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동체 질서다. 그 공동체 규약을 어긴 것, 그것은 자기의 명예도 손상시키지만 타인의 명예도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몫이라는 것이 어떤 개체에게 주어지는 어떤 운명의 몫이기도 하지만 어떤 행위에 대한 대가를 분배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아가멤논이 깬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그것을 참지 못한다. 일리아스에서 영웅은 결코 누군가가 배신하고 누군가가 질투하고 자기를 모략에 빠뜨리고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지키지 못했을 때이다. 그럴 때 극도의 자기 환멸에 빠진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배신하면 안 된다. 이것이 신성한 것이고 그게 바로 명예다.

신성이 깃든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명예를,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자기 스스로는 그 명예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 그런 인간에게만 신성이 깃든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최소한 영웅적인 인간들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살아있는 순간에 가장 신적인 행위에 가까운 어떤 행위를 통해서 공동체에 영원히 기억되는 것보다 더 명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지 않고 그 상황을 가장 명예롭게 겪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식의 운명을 가지고 살든 나에게 주어진 이 운명 자체가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산다. 그리스 영웅을 들을 나타내 주는 두 가지 지표가 긍지와 겸허다. 긍지는 어떤 것도 신이 준 것이라는 것이며, 신이 준 것이기 때문에 내가 회피하고 도망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겸허이다.

일리아스에는 영웅들을 특징 짖는 강렬한 힘이 있는데. 아킬레우스의 우정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우정은 사랑보다도 더 강렬한 것이다. 이들은 남자하고 여자하고가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특히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 사이의 우정은 아주 강렬한 파토스를 동반을 한다.

이 일리아스에서 아주 중요한 묘사이며 그림에서도 아주 많이 그려지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가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방패의 그림이다.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출전을 하려 할 때, 엄마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여 만들어준 방패인데, 이 다섯 겹의 방패에 새겨진 문양들의 의미이다.

이 방패에 그려진 것은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우주다. 그 우주에는 늘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천지일월성신이 있고 그 안에는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삶이 있는데, 그 일상 속에는 전쟁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세계 일부를 그려놓은 것인데 전쟁자체가 인간의 삶 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그 모든 것 중의 일부가 전쟁이다. 그리스인들은 우리의 삶이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그것이 한편으로 보면 염세성이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그게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낙천성이다. 어떤 전쟁도 어떤 소송이나 분쟁도 없는 행복을 꿈꾸지 않는 것이 고대 그리스인이다. 그러니까 이 일리아스 얘기는 이 방패 안에 다 들어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일리아스를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의 신들은 초월적 신, 섭리의 신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개입을 끊임없이 하지만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만 인간에게 개입된다. 인간에게 개입하는 것도 아주 주관적이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가 편드는 자들을 위해서 싸운다. 그러니까 신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에 개입한다. 이것은 인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인간의 자유의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일리아스의 세계에서도 이것을 자유의지가 아니라 신적인 것으로 설명을 한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나쁜 사람들이 나쁜 악의를 가지고 전쟁을 일으켰다고만 얘기하지 않고 인간의 그런 욕망들을 신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질투, 미움공포, 야망, 사랑 등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모든 본능들을 다 끄집어내는 것이 전쟁이라고 본다. 고대인들은 인간들의 이러한 삶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는데, 이러한 감정들이 바로 전쟁이다. 여기서 전쟁이란 죽고 죽이고 배신하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우리의 인생 전체가 바로 전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리아스는 필멸하는 인간들에 대한 애도의 노래이다. 그리스인들은 자기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살아간다. 그래서 전쟁을 하다가도 죽은 사람을 장례를 치러 줄 때는 공격을 안 하고 쉰다. 그리고 먹을 때와 잠을 잘 때도 공격을 안 한다.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삶 속에 먹고 잠자는 것이 인간의 생존의 문제이며,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망자를 위한 장례의식이다. 고대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은 장례의식이다. 전쟁이란 것은 누군가가 계속 죽어나가는 것이다. 그 죽어나가는 것을 산자들은 계속 봐야하는 것이 전쟁인데, 장례의식은 죽은 자들에 대한 속죄 의식이다. 그래서 죽은 자를 묻어주는 이 의식이 전쟁의 와중에서도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죽은 자에 대한 장례의식은 오랫동안 그리스인들을 지배해왔던 노모스다. 이것은 아주 고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관습인데, 그리스인들은 그 시대의 법이나 제도보다는 이 서사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관례에 따라 생활하였다. 그래서 이 서사시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따라야하는 어떤 관습의 총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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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님의 댓글

용재 작성일

원전 번역책을 읽을 때면 "아~그 나라의 언어를 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이라(moira)라고 하는 '몫'이라고 근접해서 번역된 느낌보다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하네요~^^ ㅎㅎ 정리된 글을 읽다보니 다시금 생각이 납니다. 꼼꼼한 수업후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