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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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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츈쿠키 작성일16-02-28 21:41 조회2,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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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天干, 地支 나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갖고 태어났다.

첫시간에 음양은 동양사유의 기본체계라는 것을 배웠다. 무엇이든 음양으로 나눠지면서 64괘까지 이르는 것을 알았다. 오늘 배운 천간과 지지도 오행이 각각 음양으로 분화되면서 10개와 12개가 되었다.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이 중에 천간 4글자,지지 4글자,8자로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갖고 태어나서 산다.

그런데 왜 지지는 10개가 아니고 2개가 불어났는지 은희샘은 초등학교 6학년 책에 나온 실험을 인용하며 쉽게 알려주면서 명리학이 미신인가 쫌 의심했엇는데 자연과학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좋아했다. 태양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기 까지 시간차가 있고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서 지구에서 받는 태양빛이 일정하지 않아 계절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 환절기를 뜻하는 토가 2개 더 추가된 것.

나의 일간은 병화. 월지는 축이다. 병화는 불의기운이면서 양의 기운. 활동적, 적극적, 명랑, 폭넓은 대인관계. 다혈질, 집착과 소유욕이 강하단다. 얼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소유욕은 좀....

丑은 오행으로는 土. 음력 12월. 소한 추위가 매서운 때. 꽁꽁 얼어붙어 음기가 많은 때. 소의 우직함, 끈기, 성실함을 닮는다. 하지만 고집이 세다. 속담에 고집센 사람을 나무랄 때 ‘소도 왕 하면 돌아서는데 왠 고집이 그리 세냐’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소는 터벅 터벅 한 방향으로 걸어갈 뿐 방향을 잘 안 바꾼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일간이 병화라서 웬만한 건 잘 잊어버리니 소의 고집이 잘 발휘되지 못할 때도 많다. 지지에 午子亥가 더 있으니 말, 쥐, 돼지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저런 속성들이 섞여 있으니 딱히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듯도 하다. 더 공부하다 보면 이런 문제가 풀릴까?

2교시: 글쓰기- 글은 고치면서 글이 된다.

오늘은 글쓰기에 대해서 모처럼 매뉴얼에 가까운 길샘의 처방을 들었다. 우리가 가장 목말라 하던 문제. 짧은 문장으로 쓸 것.(비약을 막을 수 있기 때문), 쉬운 표현, 어려운 주제 피하기. 생각 떠오르면 즉각 메모, 군더더기 수식어 버리기. 처음부터 완벽하게 쓰려하지 말고 우선 쓰고 볼 것. 나중에 고칠 것. 하나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나갈 것. 책을 다양하게 읽어 문학적, 철학적 감수성을 키울 것 .......

어느거 하나 나에 해당하지 않는게 없지만 나는 내 약점인 닥쳐야 쓰는 습관 때문에 에세이는 미리부터 쓰라는 말이 제일로 다가왔다. 읽기와 쓰기의 시간 안배를 잘 해야하고 미리 준비해야는데 게을러서 그렇게 못한다. 미리 조금씩 쓰지 못하고 한꺼번에 쓴다. 얼마간은 병화의 힘을 빌려 밀어붙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엔 힘이 딸린다. 그래서 한 번도 고치지 못한 채로 내기가 일쑤다. 고쳐야 글이 되는데. 책을 느리게 읽는 것도 문제다. 꼼곰히 읽을면서도 빨리 읽기.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3교시- 김창협의 공부법: 주자학으로 주자학 넘어서기

농암 김창협, 성호 이익, 혜환 이용휴, 담헌 홍대용. 이들은 18세기 백수 지성인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백수가 되었지만 자신만의 길을 내며 충만하게 살았다. 아니 백수였기에 그들은 하고 싶은 것 하며 능동적으로 살 수 있었다고 길샘은 말한다. 길샘은 책을 통해 이 백수 네 사람이 어떻게 각각 자신의 길을 개척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농암의 공부법에 눈길이 갔다. 주자학으로 주자학 넘어서기! 말이 멋지기도 하거니와(^^) 공부하려면 한 번 쯤 눈여겨 봐야할 일인 것 같았다.

그는 입신양명보다 주자의 가르침대로 격물치지하여 도를 탐구하고 체득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여겼다. 원론적으로는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미 주자학은 변질되어 입신양명에 목을 맨다. 농암이 보기에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학문의 도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체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경전에 대한 주자의 해석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주자의 경지에 이르러야 체득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자만큼 공부해야한다고 한다. 주자가 그렇게 해석했던 ‘그 이면의 정밀한 뜻과 수 많은 곡절’ 까지 알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주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했던 만큼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 뜻을 알 수 없네’라고. 농암의 폭탄선언! 주자는 종래의 해석을 집대성한 사람이 아닌가? 주자가 하라고 했대서 그대로 하다니!

농암은 밀어붙인다. 주자가 그 시대에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과 본의까지 면밀히 연구한다. 여러 주석가들의 주석과 주자 주석의 차이를 일일이 대조하고 주자가 편찬한 여려 책들까지 비교해가면서 주자의 원의를 탐구해나갔다.

예를 들면 공자의 말씀중 한 구절. ‘行有餘力卽以學文.’ ‘즉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실천을 우선시하는 대신 학문은 말단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실천과 학문을 동시에 해야 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농암은 주석들을 비교하면서 주자의 초기의 책과 정자는 전자로 해석했지만 말년의 주자는 후자로 해석했다면서 주자의 의도는 후자에 있다고 본다. 卽以를 然後로 해석해선 안된다는 것. 그렇다면 농암에게 주자의 본지는 학문에 힘써 ‘도덕적 심성을 체득하고 수련하는 것’이라는게 확실해진다. 그러므로 그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도, 또 이익처럼 정치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아도 자의식 없이 학문만 할 수 있었다. 공부를 통해 자기 삶의 근거가 확실해졌다. 훈고적인 공부를 하면서도 훈고나 예법, 형이상학으로 기울었던 당대의 주자학적 관념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는 또 未發(외부와의 접촉으로 인한 사유와 행동의 발생 이전 상태의 마음)의 때에 성인이나 범부나 동물이나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선한 본성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인물성동론)고 하여 성인과 범부는 애초부터 차이가 있다는 주자학의 위계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주자만큼 공부해서 이룬 쾌거였다. 현실의 문제를 탈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문제를 발생과 기원까지 깊이 탐구해서 응전할 수도 있음을 농암은 보여준다. 이런 주자의 공부도 계보학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방대한 공부의 과정! 때문에 농암의 글을 읽기가 어려웠다고 길샘은 회고했다. 또 그 덕분에 농암의 글을 읽고 나면 어떤 책도 쉽게 읽힌다고 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도 이런 고비를 한 번 넘어야 할 건가? 아으!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아는 만큼만 쓰라고 샘들은 말하지 않는가.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다고. 더구나 우리에게는 조건 하나가 갖추어져 있다. 우리도 농암처럼 ‘백수’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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