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의 가죽을 벗기다 > 금요 감이당 대중지성

금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금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금성.png

에세이의 가죽을 벗기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에세이 작성일22-12-15 10:38 조회529회 댓글5건

본문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가슴이 조여 왔다. 통증이 곧 들이 닥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써야 하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 도무지 짐작 할 수도 없는 회의의 순간이 찾아왔다. 제목을 정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파격적이 주제로 관심을 끌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격정적으로 쓸 만한 능력도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야릇한 생각 혹은 과격한 결말은 맺는 엔딩장면을 상상도 했다. 순간 나는 당황하여 근심 속으로 다시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아무 일 없듯 다시 종전과 같은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써지지 않는 글을 생각할 때마다 갑갑한 마음이 생겨 애타는 순간이 점점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것은 늘 같은 형태로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무었을 써야 하는지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면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건 간식뿐이었다. 근심은 그렇게 또 먹을 것을 동반하게 했다. 칼럼을 쓸 때도 스트레스로 손에 늘 먹을 것이 붙어있었다. A4 한 장에 칼럼을 다 채우고 완성하는 날 몸무게는 2킬로그램 늘어있었다. 에세이는 3장을 써야하니 얼굴에 2킬로그램 배에 2킬로그램 엉덩이 2킬로그램 총 6킬로그램이 붙어있을 것이다. 그렇다 글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뱃살은 늘어났다. 결국 먹는 것 외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글쓰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었다. 만약 책 한권을 완성했다고 상상만 해도 끔직했다. 몸이 부풀어 터져 죽었거나 스트레스로 뇌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고 하나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것을 망각하게 된다. 미추 하처럼 글은 아름다워 지고 몸뚱어리는 추해졌다.

  

  요 몇 칠 에세이를 죽이는 꿈을 꿨다.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정면에 노트북이 보였다. 노트북 안에는 크고 붉은 색을 띤 살집 좋은 에세이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내 펜으로 끌고 왔다. 에세이가 종이의 문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나는 그것을 펜으로 써내려갔다. 붉은 에세이가 갑자기 사지에 힘이 쭉 빠졌는지 쿵하고 넘어졌다. 그러더니 에세이의 기---결 중 의 엉덩이와 의 다리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경련을 일으키는 에세이의 반대편으로 달려들어 의 뿔을 휘어잡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문장 속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나의 펜으로 에세이를 내리쳤다. 그것은 다시 경련을 일으켰고 기---결의 네 다리는 버둥거렸다. 에세이가 넘어지면서 부분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글의 구성을 다시 짜야 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는 에세이의 가죽을 벗겼다. 가죽이 벗겨진 에세이의 푸른 정맥이 드러났다. 에세이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저항했다. 3주 동안 에세이와 씨름하며 꾸역꾸역 써 내려갔다. 이제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 마지막 관문인 곰발바닥에 맞을 대비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남은 1주일 동안 호흡 수련도 하고 맛 나는 것도 먹고 재미있는 드라마도 시청할 것이다. 그리고 놀라지 않게 심장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마지막으로 불교 책 한 권을 읽고 갈 것이다.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 내 에세이를 평가 하실 때 분노하지 않아 마음의 황무지가사라지고 마음의 불이 꺼져있기를 마음속 깊이 염원할 것이다. 만약 왼쪽 발바닥이 아닌 오른쪽 발바닥으로 강하게 맞게 된다면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리는심정으로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장담은 할 수 없다. 워낙 힘이 강하셔서 원 펀치 한 방이면 영혼이 흔들린다그리고 여러분의 앞날에도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무대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장소가 아니라 행동입니다.”라며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이 말한 것처럼 감이당이라는 공간에서 공부로써 함께 행동했던 학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와 같이 내년에도 당신이 무언가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그것이 당신을 포용할 것입니다.”

 

그럼 오늘도 카르페디엠 !!!

댓글목록

고요한걷기님의 댓글

고요한걷기 작성일

너무너무 잼나게 읽었어요. 샘
에세이를 막 올리기 직전인데 샘 글 읽고 나니 맘이 좀 부드러워지네요.
에세이를 죽이는 꿈은 나중에 저도 한번 꼭 꾸게 되길.
낼 곰 발바닥 안 맞게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라니님의 댓글

라니 작성일

ㅋㅋㅋ이렇게 재밌게 읽은 글이 얼마만이던가요~ 아 2탄이 너무너무 기다려집니다

여여한일상님의 댓글

여여한일상 작성일

창밖에는 흰 눈이 훨훨~ 하얀 꽃잎처럼 내리고~
보성샘 후기글 읽으며 단락마다 큰 웃음이 빵~터졌네요^*^
일단 엔돌핀이 팍팍~나오게 해줘서 감사하고~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깨달음과 위트에
박수를 보내요~^^

나영님의 댓글

나영 작성일

김에세이라는 닉네임에서 빵 터지고~ 에세이에 살 붙이시느라 몸에도 붙어버린 살에 같이 괴로움?을 느낍니다 (웃픈....)
제가 대학 졸업식때 과제와 프리젠테이션으로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달성했던 기억이 동시에 나면서요 ㅋ 이 마디를 아무쪼록 생존해서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

박영즌님의 댓글

박영즌 작성일

올해  온몸으로 배우느라 고생많으셨어요~ 아무쪼록 발바닥 상처가 크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