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세미나> 어느 목적지향적 사고자의 신화 읽기-12,11 모임 후기 > 세미나

세미나

홈 > 세미나 > 세미나

<융세미나> 어느 목적지향적 사고자의 신화 읽기-12,11 모임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진 작성일13-12-12 14:49 조회3,780회 댓글2건

첨부파일

본문

분명 일본인의 신화적 사고와 한국인의 그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면서, 그리고 일본인 친구와 대화하며 확인했습니다. 특히 그 보존 상태에서 말이죠.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내(우리)게는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강한 매혹을 느꼈었어요. 결여되어 낯설면서도 그럼에도 분명 나의 일부분이기도 한, 없으면서도 있는, 묘한 영역이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그것.....그건 신화였다고 지금 생각해 봅니다. 일본인들에게 남아있는 특유한 신화적 감각이면서 미야자키 감독 개인의 신화이기도 했겠지요.
 
저는 오래된 이야기에서 만난 어떤 장면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곤 합니다.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동기로 작업을 시작하고 집중해야 하는 과정에서 답답함을 해소하기 어려웠는데.....그것 역시 신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당나귀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몰래 집에서 탈출하는 젊은 여인의 이미지에 왜 이끌리는지 도저히 제 일상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그 이미지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난 겁니다! 그녀는 신데렐라의 변형된 버전이라고 나카자와 신이치상은 주장하는군요.
 
이 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가장 흔하고, 너무 유명해서 심지어는 식상하기까지 한 신데렐라 이야기를 신화로서 다시 읽어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지지 않은 민족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우리에겐 콩쥐가 있지요. 나카자와상은 세계에 450종이 넘는 변형 버전을 가지고 있다는 이 이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가며  그 사이에 스며 있는 신화적 원형과 자본주의적 욕망, 죽음에 대한 사유 등을 읽어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신데렐라를 죽음의 이편과 저편을 매개하는 중개자, 샤먼으로 읽어냅니다. 그는 이야기 속 숨어있는 중개자의 이미지들을 깨알같이 찾아내지요. 그렇게 해서 신데렐라는 중개자 오이디푸스의 여성 버전으로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여기서 당연한 질문, 이런 신화가 일상적 현실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나카자와상은 우선 그 풍부한 내용은 사라지고 껍데기같은 이미지만 남은 신화의 영향에 대해서 경고하고 고민합니다. 특히 시각으로만 감각하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이 미치고 있는 영향은 독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이미지들에 길들어진 우리의 편협한 감각 그대로는 도저히 신화의 원형을 감각할 수 없을 겁니다. 그저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라, 또는 헝거 게임이 곧 신화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니 빈곤한 상상력을 키워서라도 조금 더 다가가려 애쓸 수 밖에요. 나카자와상은 처음에는 하나였으나 분리된 존재들 간의 관계를 얘기하며 마무리합니다. 자연과 문명, 어느 한편에 경도되지 않고 적당한 균형을 이루는 삶. 그러니 샤먼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각자 중개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균형을 갖춘 삶을 위해서 제대로 된 신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이 신화학자는 경고합니다.
 
하지만 모임 끝에 저는 도반들 앞에 또 한번 징징거렸습니다....ㅠㅠ 눈 앞의 일상적 문제 앞에서 꼼짝 못하는 인간에게 이런 거대한 신화를 읽는 것이 당장 무슨 효과가 있고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요. 그때 일명샘이 말씀하셨죠. 독서란 효과, 그러니까 써 먹기를 위한 게 아니라  그저 삶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것이라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저란 사람이 뼛속까지 목적지향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요. 그런 목적지향적 사고와 다른 길인 신화적 사고란 일신교, 자본주의,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사고라고 용남샘이 말씀하셨어요. 저는 여전히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휴우....
 
나카자와상은 신화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 합니다. 신화는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영역과 겹쳐지는 장일 겁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자연에 가까울 거고요. 내 삶이 허약하고 비루해지지 않도록 든든한 포석을 천천히 쌓는 마음으로 이 낯선 창을 애써 열어봐야 겠습니다. 아마 책 읽기란 이런 일을 하기 위한 통로이겠지요.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책으로 가는 문' 중 
댓글목록

경희님의 댓글

경희 작성일

뒤늦게 다시 읽으니 참 좋구먼요  앞으로 읽게 될 많은 책들이 다 기대가 됩니다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흠, 우리가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군요. 이진샘의 글로 만나니까 더욱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