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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서당 세미나]2014.02.19 후기 /의식과 본질 3장 본질과 존재, 일반화와 개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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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얼음마녀 작성일14-02-27 00:56 조회4,17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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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 멤버들이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발제문을 2페이지 이내로 줄이라"고.
그 열화와 같은 성원에 부응하기 위해 줄이고 또 줄이고
그래도 3페이지가 나오는 발제문을 싹둑싹둑 가위질했었지요. ㅎ~
 
의식과 본질 3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첫번째는 본질과 존재의 관계.
 
 본질이란 존재와 대립하여 상관하는 개념이다. 본질은 항상 존재에 대해 본질이고, 또한 역으로 존재는 항상 본질의 존재다. 
 
 X가 지금 여기에 현전하고 있고 우리가 그것을 인식한다고 할 때, 스콜라 철학에서는 X에 대한 지각이 성립하기 이전에 그것의 전단계로서 더욱 원초적인, 아직 분석적 이성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의 X의 의식을 생각해요. 그렇다면 X는 아직 꽃이 아닌 거죠.  다만 막연하게, 아니 혼연스럽게’, 무분별적으로 무엇인가가 우리의 의식을 향해 자기를 드러내고 있을 뿐. 지난 번엔 이 상태가 구토를 불러 일으킨다고 했었지요. ㅎ~~이 상태에서의 X는 아직 어디에도 갈라진 틈이 없는 하나의 존재론적 덩어리예요. 갈라진 틈도 접붙인 틈도 없는 덩어리에 인식의 제2단계에서 이성이 갈라진 틈을 만들어 본질과 존재로 나누면 그것은 여기에서 처음으로 X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인식된다고 보는 게 스콜라 철학의 입장이예요. 이제야 존재하는 꽃으로 인식된다는 것이죠. 본질과 존재의 이 분할을 이성의 가장 본원적인 작용이라 하더군요. 
 
 지금까지 하나의 전체인 무엇인가로서 어디에도 갈라진 틈을 보이지 않고 막연하게 규정도 분절도 없는 양태로서 현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던 X가 이성의 존재론적 분석의 빛에 쬐어 존재와 본질의 조합이 된다는 거죠. X가 존재하는 것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로서, 예컨대 꽃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인데요. 존재란 현실성 혹은 현전성의 원리여서 그것이 X를 현실화시켜 현전하게 하는 측면을 말해요. X는 존재함으로 인해 가장 절실하게 현실이고 실재인 거죠. 그러나 존재는 X를 실재하게는 하지만 결코 X로 하여금 꽃답게 하지는 못합니다. X를 꽃답게 만드는 것은 X의 존재성이 아닌거죠. 거기에는 뭔가 다른 원리가 있어야 하는 데 그것을 본질이라고 불러요. 꽃은 그 본질, 즉 꽃의 성질 때문에 꽃인 겁니다. 그러나 또한 반대로 X의 본질은 X……로서 규정은 하고 있지만 X의 존재를 보증하지는 않아요. 꽃의 성질은 다만 꽃의 성질일 뿐이고 현실에서 한 송이의 꽃도 피어나게 하지 못해요. 본질과 존재가 조합해야  비로소 X는 존재하는 꽃 이 되는 것이죠. 
 
 꽃이라는 말은 X의 존재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꽃이다라는 X의 본질을 정하고 고정시킨다. 그것에 의해 끊임없이 유동하는 존재의 혼동 가운데에서 꽃이라는 하나의 응고점이 나온다. 의식의 대상에는 반드시 본질이 있어요. 그 대상이 구체적인 사물이건 추상적인 내용이든 (그 본질이 꽃이나 사람 같은 구체적인 규정성일 필요는 없어요. 순자의 대공명 같은 일반적인 규정성이라도 상관없다는 거.) 어쨌든 무엇인가의 형태로 X 안에서 본질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의 초점을 X에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존재와 본질은 서로 모순적인 상태로 뒤엉켜 있어요. 
 
 X의 의식을 성립시키는 본질은 일반자이다. 결국 꽃의 성질이란 어떤 꽃에게도 공통되는 일반적인 성질이다. 이렇게 본질이 일반성을 갖는데 반해 실재하는 존재는 개별적이다.   
이 꽃을 진짜 이 꽃으로 체험하는 경우, 이 꽃에는 그냥 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있다는 존재감각이 활동하고 있다. 이 꽃을 일반적인 꽃이 아니라 이 꽃답게 만드는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가 있고 그것은 일반자, 즉 보편적 본질과는 다른 또 다른 하나의 본질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이 근원적 존재감각으로부터 나온다.
  
 이슬람의 스콜라 철학은 이런 시점을 가지고 본질을 둘로 나누었어요. 일반자, 즉 보편적 본질 마히야와 개체적 본질 후위야로. 요컨대 실재하는 꽃을 앞에 두고 '이 꽃'의 '이'에 절대적인 역점을 둘 것인가(후위야), '꽃'에 역점을 둘 것인가(마히야)에 의해 본질론은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심지어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독특한 개별 사물의 독자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리얼리티를 개별 사물의 존재론적 구조 자체의 내부에서 찾아 본질로 삼는 것이 후위야입니다. 이런 입장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려고 한다면 '보편적 본질'은 이성의 추상작용에 의해 만들어낸 개념적 일반자의 위치로 폄하되어 그 실재성을 박탈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요. 그러나 이런 개체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마히야의 실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상가들이 동서양에 적지 않게 존재했고 그들은 보편적 본질이 실재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어요. 이들에게 보편적 본질은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농밀한  존재감을 지닌 리얼리티를 말하구요.
 
 일반자로서의 본질은 말, 즉 사물의 이름과 매우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어요. 본질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입장이건 부정하는 입장이건 이 점에 관해서는 똑같죠. 본질의 실재를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말이 본질 환기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고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말이 본질 지시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요. 쉽게 말하자면 꽃이라는 이름이 본래는 실재하지 않는 꽃의 본질을 망상적으로 불러일으킨다고 보는 입장(본질 환기)과 실재하는 꽃의 실재하는 본질을 지시한다고 보는 입장 차이가 있을 뿐인 거죠. 이렇게 말이 의미하는 일반자, 즉 '마히야가 실재인가 비실재인가' 하는 문제는 불교철학의 입장과 힌두철학의 입장의 존재론적 대립의 주축으로 인도사상의 오랜 역사를 통해 왕성하게 논의되어 왔구요.
 
불교처럼 마히야를 부정하여 떨쳐 버리려는 입장과 달리 일반자인 본질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마히야가 어떤 형태로 실재하는지, 의식 차원에서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를 규명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거죠.
 
보편적 본질의 실재성에 관한 주장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보여주는 것이 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기준은 '실재하는 본질'을 사람이 의식의 어떤 층에서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이는지예요. 이 작업을 위해 의식을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으로 나눴어요. 물론 의식에 표면이나 심층이 있을 리 없지만 일상적인 조건아래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의식들(대승불교의 무의식, 릴케의 의식의 피라미드 밑바닥 같은)을 심층의식이라고 하기로 한 거죠.  
 
1
보편적 본질은 존재한다. 그것은 실재한다 해도 존재의 심층부에 실재하는 것이어서 존재의 표면에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 인식의 주체의 측면에서도 의식차원의 근본적인 전환이 당연히 요청된다.
신유학의 격물궁리
말라르메
2
보편적 본질이 체험적으로 인식되는 장소가 의식 심층 중에서도 샤머니즘과 어떤 종류의 신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근원적 이마주의 세계가 성립하는 의식영역이다. 모든 존재자의 보편적 본질이 농후한 상징성을 갖는 아키타이프(원형)로 나타난다.
유무중도의 실재, 빛의 천사, 64, 만다라, 유대교 신비주의 세피로트 등
3
1형이 심층의식적 체험에 의해 포착하는 보편적 본질을 의식의 심층에서가 아니라 표층에서 이지적으로 인지한다. 형이상학적 일반자의 실재를 형이상학적 체험을 통해 직접 매개 없이 포착하려 하지 않고 이성적으로(표층의식적으로) 본질의 실재를 확인하는 것에 그친다.
공자의 정명론, 고대 인도의 니야바바이세시카 학파의 존재범주론
 
특히 제3형의 본질론에서 그 일반자를 마음 밖의 실재성을 무시하여 단지 순수하게 일반자로서 취급하면 순식간에 개념적 일반자, 결국은 보편적 개념이 되어 버리게 되는데요. 공손룡의 유명한 궤변(흰 말은 말이 아니다)은 보편적 본질을 경험적 실재성의 차원으로부터 일단 완전히 잘라내어 추상적 사유로 옮겨 본질론을 철저하게 개념구조이론으로서 전개시킨 예이고, 공자의 정명론에도 본질 개념화의 경향이 다분히 인정된다고 하네요.
 
다음장부터 하나 하나 공부해 나가기로 했어요. 다음 번 발제자는 효진. 
 
침뜸공부에서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 우리 몸이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것, 매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입견과 관념을 털어내고 투명하게 사람을 만나는 게 진단과 치료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침뜸은 신경 및 체액의 조절을 거쳐 유기체 내의 병에 대한 저항력을 움직여서 통증을 멎게 하고, 열을 끄고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임을. 경혈과 내부 장기가 현저히 떨어져 있지만 그 경혈에 내부 장기의 반응이 나타나고, 그 경혈에 침을 놓아서 해당장기의 이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동양의학의 정체관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었어요. 
 
후기가 늦어져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진땀 좀 흘렸네요. ㅋㅋ 
다음 번엔 깜박하지 않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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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님의 댓글

예진 작성일

ㅎㅎ짧은 시간에 깨알같이 정리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이날 두페이지로 압축된 은주샘의 발제문을 볼 수 있어 좋았다는^^ 의식과 본질 볼수록 매력있는 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