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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세미나> 노자와 융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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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인 작성일14-03-07 22:30 조회3,80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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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0주년 기념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오신 용남샘, 나라일 하느라 너무 바빠 자주 못보던 송희 샘, 뜻하지 않게 일이 진행되어 낯선 영역에 접속하게 되신 경희샘, 편안하게 감이당 2학년을 시작하신 소임샘, 히에로니무스 보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이진샘, 본초와 더욱 친해지고 실습에 몰두하고 계신 일명샘, 모두 반갑게 안부를 나누며 융세미나에 접속~~~ 오늘의 메인은 이부영의 『노자와 융』 1장에서 5장까지, 사이드는 카렌 암스트롱의『축의시대』1,2장까지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보지 못해서 도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이란 부제가 붙은 『노자와 융』을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노자의 통찰을 해석해나가는 것이 아주 낯설고 어려운 도덕경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물론 한글 풀이 자체도 어려워 한자 사전을 끼고 읽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접속했던 융의 개념들이 노자의 통찰과 만나 정리가 되는 느낌도 있다. 저자는 융이 도덕경에 큰 관심을 가지고 노자의 ‘도’를 그의 심리학의 핵심개념인 ‘자기’ 즉 전체정신의 상징으로 제시해왔기에 노자와 융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임샘의 발제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도란 무엇인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의 인식, 대극 합일의 상징으로서의 도, 선과 악, 무위, 도의 여러 상징을 이야기 하였다. 알 수 없으나 존재하는 것,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혼돈과 같은 것, 대극분별이 생기기 이전의 어떤 것으로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이 ‘도’이다. 도의 움직임은 대극적 상대성을 거쳐 하나로 융합한 것으로의 회기이며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자아의 자기로의 회기라고 한다. ‘무위’는 아무것도 안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고 싶어도, 해야 한다고 해도 하지 않는 것, ‘작위’하는 마음을 버리고 무위자연의 도에 순응하는 자세이다. 융의 ‘무위’는 의식의 간섭을 덜어내고 정신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일어나게 두라는 것이다.
 
 
늘 분별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삶을 사는 우리가 ‘작위’를 멈추고 의식의 간섭을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바로 이러한 지점이 공부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일명샘은 상담하는 사람들이 내담자를 꼭 고치고야 말겠다는 의욕과잉의 작위를 얼마나 버리기 힘든가를, 소임샘은 공부가 나와 만나고 있지 못함을 느끼는 답답함을 이야기 했다. 나 역시 두분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공부와 삶의 간극이 깊음을 이야기 했다. 이진샘은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끌리니까 하는 것이고 단박에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며, 세미나를 하며 깨지는 순간이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경희샘은 최근에 고요하게 깔려있는 연두빛 물을 보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자세로 느껴진다고 하며 변화라고 이야기했다. 용남샘은 노자와 융을 비교해서 융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무위’는 분별망상에 빠져 자기의 생각을 반영시키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이야기 했다. 어쩌면 지금 공부와 삶의 간극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의식의 지나친 간섭이고 작위이며 분별망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진짜 그렇다. 깨지더라도 조바심 내지 않고 공부하다보면 언젠가 공부와 삶이 맞닿아 가는 순간이 오지 않겠는가? 그러니 결론은 닥치고 공부다.
댓글목록

경희님의 댓글

경희 작성일

이제야 봤어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면서 분별하고 결정지으려는 망상이
어느덧 심판자처럼 오만해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공부를 통해 벗어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져요.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믿습니다. 닥공! ,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이진님의 댓글

이진 작성일

그 열띤 대화 후 몇 일 지났을 뿐인데 까마득하네요. 그래서 닥공이겠죠?ㅎㅎ 오고 갔던 수 많은 말들 중 잘 골라 이렇게 붙잡아 주시니 감사드릴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