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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구조, 열린 이야기 『돈끼호떼』 2권 후반 후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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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파 작성일14-04-19 12:05 조회3,8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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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구조, 열린 이야기, 『돈끼호떼』
                                                             『돈끼호떼』 2권 후반부 세미나 후기 박경옥

800쪽에 이르는『돈끼호떼』는 이렇게 읽어도, 저렇게 해석해도 되는 책이다. 두 시간의 세미나에서 다 다룰 수 없다. 세르반테스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궁금한 사람은 본인의 독법(讀法)으로 만나야 한다. 그냥 우리가 대충 아는 돈끼호떼는 없다. 우리 세미나의 독법은 곰샘의 말이 주식으로, 멤버의 말들은 반찬으로 구성된다. 강의 후기인 나의 생각은 후식이다.
 
돈과 명예, 잠
돈끼호떼는 여행길에서 돌아와 잠을 푹 잔다. 정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이다. 미쳐서 ,조증으로 날뛰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둘시네아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려 나갔다. 산초는 그토록 원하던 총독이 되지만 열흘 만에 내려놓는다. 이유는 총독이 되고 나니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이 방해받는 것이다.
 
‘통치하면서 얻는 돈이나 부(富)라고 하는 것은 쉬지도 못하고 잠도 안자고 심지어 먹지도 못하면서 번 돈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p644) 산초는 뭐가 중요한 것인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산초의 저력은 식욕과 잠이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기도 하다. 돈 끼호떼는 기본 욕망을 떠나 있어 현실감각이 없다. 주인인 본인이 보초를 서고 하인은 잠을 잘 잔다. 정화스님도 부처의 삶은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라고 했는데 산초야 말로 부처같은 삶을 살았다고 비약을 해도 되지 않을까. 곰샘은 생리적 현상과 연결되지 않는 사람은 구체적이지 않고 돈 끼호떼처럼 늘 붕 떠 있는 삶이 된다고 진단한다.
 
산초는 명예욕이 따로 없다. 그를 돌보는 의사가 식욕을 억제시키니 머리가 맑아져 통치를 잘하게 된다. 곰샘은 우리 국회의원, 고위공무원들도 채식을 하면 정치를 더 잘할 것 같다고 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돈이나 명예가 잘 먹고 잘 쉬기 위한 것이라면 통치를 하고 경영을 하는 게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연예 아바타, 돈끼호떼
돈도 있고 명예도 있는, 다 갖춰진 공작 부부는 심심함을 못 견딘다. ‘그들을 즐겁게 해줄만한 진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 재미가 없다. 이제 기사도로 명예를 얻는 시대도 지나고 연애 , 모험도 없으니 현실은 망상만큼도 못하다. 우리가 연예인을 따라다니며 연예인들이 우리가 만든 망상게임을 하도록 부추기듯이, 공작부부는 돈끼호떼와 싼초에게 그 역할을 하도록 부추긴다.
 
인간은 평화로운 상태보다는 뭔가 사건이 일어나고 아수라장이 되고 그 뒷수습을 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심지어 전쟁이 없으면 시뮬레이션을 하거나 게임으로 즐긴다. 한편으로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다른 쪽에선 전쟁과 관련된 영화 다큐들을 생산한다.
 
돈끼호떼는 그 시대의 아바타였다. 돈끼호떼는 진정성있는 미친 짓을 했지만 그에게 장난친 사람들은 타인의 광기를 이용했다. 공작부부에겐 그때만이 아니라 일생동안 두고두고 웃을 일이 생겼고, 산초에게는 수백년을 살아도 할 이야기거리가 생긴 게 수확일까. 산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돈끼호떼 우리 주인님은 정말 미치광이이고 재미있는 어릿광대라 하고 나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이쯤되면 누가 누구를 이용한 것인지 헤갈린다.
시데 아메떼(무어인 작가)는 말하기를 자기 생각에는 장난을 친 사람들이나 조롱을 당한 사람들이나 다들 미치광이들이어서 공작 부부라는 사람들도 바보 같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p815) 고 한다. 인생이란 서로 물고 물리는 게임이다.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다’
돈끼호떼를 수호신처럼 따라다닌 동네 젊은 총각, 싼손 까라스꼬가 돈끼호떼의 무덤에 써준 묘비명이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다. 그래서 다 헛되다. 어떻게 보면 돈끼호떼는 꿈을 누구보다 열렬하게 꾼 것이다. 기사도라는 낡은 사상이 종언을 고한 시대, 사유가 바뀌는 시대의 끝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곰샘은 사유가 바뀌는 지점을 푸코의 말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어떤 특정 문화 혹은 어떤 특정 시점에서, 모든 지식의 가능성의 조건을 규정하는 에피스테메는 단 한 가지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식의 고고학』에서는 에피스테메가 총체적 개념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어떤 에피스테메가 득세했다고 해서 특정 시대와 문화의 모든 사람들이 그 노선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사전)
돈끼호떼를 보고 인생이 꿈이라면, 어차피 꿈이라면 두려움없이 꾸라고 조언한다. 꿈이 헛되다, 진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늘 내 삶은 비루해진다. ‘진실이 있다’는 기독교적 해석이다.(『돈끼호떼』는 가톨릭이 밑바탕) 인생이 꿈이라면 꿈인 줄 알고 열심히 꾸면 된다. ‘열심히 사랑했는데 꿈이라니’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꿈의 외부는 없다. 꿈이라는 것 알면 집착하던 것을 확! 놓으면 된다. 돈끼호떼는 50대에 자기 나름의 금화교역(金火交易)이 아니었을까.책만 읽던 인생에서 변곡점을 찾아 나선 게 아닐까
 
돈끼호떼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했다. 혼자 살면서 조카딸과 가정부의 돌봄을 받았다. 아마 그는 집에서 똑같은 패턴으로 사는 게 재미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집안식구들을 추근거리지 않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인생의 가을에 꿈을 찾아 나왔다. 외부에 나와서 늘 당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다. 1권에선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 풍차와 맞서고 다른 기사와 맞장 뜨지만 2권에선 주로 동물에게 당한다.  힘센 싸우는 소들에게 밟힌다.(실제로  야생소에 한번 밟히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돈끼호떼는 어떤 경우에도 살아나지만.) 돼지떼에게도 당한다. 힘없는 기사도의 몰락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열정을 다 태우고 푹 자고 쉬다가 죽는다.
 
 돈 끼호떼의 또 하나의 미덕은 약속을 잘 지켰다는 점과 돈 계산이 깔끔하다는 점이다. 산초에게 정확하게 삯을 지불했다. 이 부분은 산초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나중에 산초는 돈끼호떼를 존경한다. 그리고 서로 존경하게 된다. 산초는 인생의 진맛이 담긴 속담을 전수해주고 산초는 돈끼호떼의 조리정연함을 학습했다. 영혼이 서로 감염, 교감이 되었다.
 
서양과 동양의 결말의 차이
돈끼호떼는 마지막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서양소설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구조가 많다. 성장소설의 구조도 그렇다. 탕아가 되어 집을 떠났다가 영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조지프 켐벨의 책 『신화와 인생』에서 영웅의 귀환 12단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읽을 『오딧세이』도 나올 것이다. 그 모티브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서양원형의 무의식이라고 할까.(성경의 이야기 구조도 유사하다)
 
동양의 이야기는 탈영토화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문명적인 배치가 그렇다. 서유기에서도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자기가 살아온 그곳을 돌아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오직 정과를 얻어 깨닫고자 하는 일념이 있었을 뿐!
세르반떼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의 후반기에 이 책을 집필했다. 그도 말했듯이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어떤 이야기를 빼고 해야 할지 고민했을 정도로 풍부한 콘텐츠가 있었다. 다 쓰지 못하는 작가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고 너스레를 떤다.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이 많았다. 너무 열린 구조라서 은근 집중력을 요한다. 시점을 왔다 갔다 한다. 근대적 책읽기에 익숙한 우리에겐 아주 낯선 구조하고 할까. 근대적 소설작법으로 보면 매우 전위적인 작품이다. 이런 이야기의 구조는 환상과 시간이 교차하는 중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맥이 이어진다.(오늘 4월19일, 스페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돌아가셨다) 곰샘은 아마 스페인어의 언어철학적 구조 자체가 이런 점을 잉태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참고로 스페인어 시제는 16개나 된다.(외국어로 다 쓰기엔 역부족이다.) 주변에 한국사람이 없어 스페인어를  외국인과 놀며 공부했던 게 돈끼호떼를 만나며 쓰일 줄이야!  공부는 공부를 낳고 ,가끔은 즐거움을 선물 한다.
 
마지막으로 꼼꼼하게 번역해준 민용태 교수님께 고맙다. 우리 문화 인프라도 해방 후 60여년을 지나면서 우리 정서로 번역할 수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 인프라 혜택을 누리고 키워갈 수 있으니 더욱 좋다. 민용태 번역자의 돈끼호떼의 묘비병에 대한 주석을 이렇게 풀이한다.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라는 평판은 싼손 까라스꼬가 내린 것으로 언뜻 보기에는 돈 끼호떼가 미쳐서 살다가 정신이 나자 후회하고 죽은 사실을 쓴듯하다. 그러나 다시 새겨보면 진짜 산다는 것은( 미쳐서 무언가에 대한 사랑에 빠져서)사는 것이고 정신 차리고 산다는 것은 결국 인생이 날마다 죽어가는 것을 알고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세르반테스는 이런 의미에서 돈끼호떼의 예술적 인생관, 즉 미쳐서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암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p857)
 
우리 로드클래식 세미나도 남들이 보면 돈 끼호떼식 생활이 아닐까. 미쳐서 두꺼운 책보고 재미있다고 킬킬거리고. 더 무서운 두꺼운 책(주석달린 허클베리 핀)이 있어도 또 하겠다고 신청하고!(강의 후기 하나 쓴다고 4월의 꽃놀이 산행을 포기하고 골방에서 자판과 마주하고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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