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클래식> 진리탐구로 가는 항심(恒心)-현장서유기 앞부분 세미나 > 세미나

세미나

홈 > 세미나 > 세미나

<로드 클래식> 진리탐구로 가는 항심(恒心)-현장서유기 앞부분 세미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파 작성일14-04-27 14:04 조회4,336회 댓글0건

본문

                                                                                                     박경옥
 
 이번 주는 『현장 서유기』(에버리치 홀딩스,첸원중 2007)를 읽었다. 곰샘은 바빠서 못 나오셨다. 그래도 여행기 세미나는 계속된다.
 
  진심이 통하는 여행
 ‘사람 됨됨을 알아보는 감별력’을 가진 정선과(승려뽑은 사람)와 열세 살 동자승 현장스님과의 만남은 역사적이다. 인재를 가려볼 줄 아는 힘이 당나라의 불교를 중흥 시킨 계기가 된다. “바라건대 멀리는 여래 부처님의 가르침을 잇고, 가까이는 선현께서 남기신 불법을 빛내고 싶습니다” 열 세 살 된 동자승이 수양제 때 전국에 14명을 뽑는 시험장 문턱에서 한 말이다. 열 살 때 부모를 잃은 후 불교를 공부한 현장스님은 응시자격이 되지 않지만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정선과는 현장의 타고난 자질을 보았다. 진리탐구로 가겠다는 항심과 하심을 본 것이다. 「불경을 암송하는 학업은 이루기 어렵지만 타고난 자질은 얻기 어렵다. 만약 이 아이를 승려로 받아들이면 , 반드시 불문의 큰 그릇이 될 것이다.」(48쪽) 라고 정선과는 다른 시험관들의 온갖 비난에 대한 해명을 했다.
 현장법사는 불경을 구하러 여행을 하면서도 불법을 설법하고 끊임없이 소통을 했다. 일방적으로 달려가는 서양의 돈끼호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서양과 동양의 욕망자체가 다른 것 같다. 그는 남몰래 국경을 넘어려다 관문에서 사로잡히는 수난을 당하고도 통과한다. 하지만 막하연적에서 생명줄인 물을 실수로 다 쏟아버린다. 그러고도 3~4일을 포기하지 않고 사막을 더 나아갔다. 불심과 ‘나’가 하나가 된다. 물을 엎지르는 실수는 불안, 초초하니까 허둥지둥하고 물을 잃었다. 편안한 상태에서는 구도의 길이 나오지 않는다.
 한편, 실제 현장법사는 ‘진격의 거인’인데 소설 속에서 현장법사는 왜 유약하고 찌질할까? 리더가 너무 훌륭하면 같이 가는 사람의 재능이 나오지 않는다. 울보 삼장법사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재능을 다 발휘하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소설『서유기』는 힘주어 말하지 않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다 수양이라고, 100회 이야기에서 팔십일난 안에 우리의 인생이 다 들어있다고 이야기한 게 아닐까. 현장법사는 처음엔 꼼수를 쓰기도 하지만 나중엔 진심만 이야기하여 혼자 가는 어려운 여행을 통과했다. 길 위에서 발심이 더 명징해졌다고 할 수 있다.
 
   마음과 몸은 같이 간다
 중국드라마는 주로 장편이다. 36회나 이런 다큐( 재미없을 것 같은 소재)를 방영했다는 게 놀랍다. 정순찬샘은 중국통인지 이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항일투쟁과 중국고전에 대한 역사물과 다큐는 현재 중국에서 자주 울겨 먹는 소재라고 한다. 중국이 <대국굴기> 프로그램을 2006년에 방영했는데 현장법사의 다큐와 비슷한 시기다.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 인민들의 국가관을 고양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와 상인의 관계는 미묘했다고 한다. 불교는 상인의 무역통로를 따라 전파되었다. 불교신도들은 상인들과 패를 짜서 동행하기를 좋아했다. 불교가 부유한 상인들을 통해 전해진 것을 보면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난 사람들이 진리탐구의 길로 나아가는 게 자연스럽게 보인다. 상인 중에서 보살이 되기도 했다. 카라반으로 함께 행군할 때 승려의 계율을 보면 우리들은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당연히 지켜져야 할 규정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승려는 반드시 상인이 물을 마신 다음에 물을 떠야 한다. 승려가 배변을 볼 때는 바람의 방향부터 살펴 상인들을 배려했다고 한다.(62쪽)
 떠나기 전엔 현장법사도 마음이 불안했을까. 술사에게 점을 본다. 술사는 맞혔다. 사심이 있으면 술(術)인데 사심이 없으니 맞는 말이 된다. 주자(朱子)도 세상에 나가기 전에 주역점을 쳤다고 한다. 수뢰둔(水雷屯)괘가 나왔다. 이 괘를 보고 주자는 숨어서 후학을 키운다. 그 말(言)을 잡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스 신탁의 예언도 인간이 해석하고 행동했다. 점을 보는 것은 자기행동에 대한 쐐기를 박는 행위일 것이다. 현장법사도 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동기부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장법사는 불경공부를 하다 보니 번역이 잘 안되고 모호해서 인도로 가서 제대로 된 불경을 구해 오고 싶었다 가기 전 준비를 보면 대단하다. 체력을 키우고 특전사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훈련했다. 몸과 마음은 같이 간다. 주자(朱子)도 몸을 바꾸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시공간이 바뀔 수 있다.
 또한, 그 당시의 당나라의 통신체계가 놀랍다. 허술할 것 같은 국경지대는 조직적으로 잘되어있다. 수레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심지어 황후가 오아시스에서 나는 귀한 과일이 먹고 싶다고 하면 우리 택배처럼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길은 경혈의 흐름과 같다. 당나라 때의 장안은 국제적인 도시로 지금의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번성했다고 한다. 당나라 고위관료가 돌궐족도 있었고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 유민이었다. 폐쇄적이지 않고 열려있는 당나라시대는 들뢰즈가 말하는 유목민의 삶을 연상하게 한다.
 
  구원의 길
 현장법사가 본 인도는 위생청결이 잘 되어 있었다. 근대성으로 본 위생관념의 잣대로 보면 안 된다. 그 시대의 깨끗함은 지금과 다르다.
코초국에서 국문태왕은 현장법사에게 “내 나라를 공동소유하자”는 통 큰 면모를 보인다. 우정의 연대는 같이 하는 시간의 길고 짦음이 아니다. 통하고 안통하고의 문제다. 헤어질 때 ‘두 사람은 서로 머리를 부여안고 통곡을 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소리가 도성을 뒤흔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또한 불교가 지역사회에 얼마나 큰 정신적 역할을 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서유기에 비해 현장법사가 19년간 여행한 기록인『대당 서역기』는 재미는 없다. 당 태종의 명에 의해 제도권 안에서 쓴 책이다. 시스템, 제도권을 통해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도의 제일 힘센 계일왕은 자기보다 더 베푸는 사람이 있으면 질투 폭발한다. 재물, 여색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인간은 쉽게 욕망에 빠진다. 파니니 신선은 논리만 입에 담을 뿐 진리는 탐구하지 않았다. 진리는 지성으로 본인의 힘으로 뚫어야한다. 이번 감이당 수성에선 유난히 명상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십여 년을 명상하고 스스로의 충만감과 그것을 집착하는 순간 마구니가 된다. 도(道)가 수승(隨乘)하면서 명징하지 않으면 도(道)가 닦인 것이 아니다.
현장법사는 상대방의 약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설득해나간다. 그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의지가 있었다. 장금샘은 최소 3년은 현장에서 노력해보라고 말한다. 길 위에 선다고 다 이루는 것은 아니다. 길을 떠나도 통념으로 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다른 식으로 공부해야 자기만의 윤리가 구성된다. 현장법사는 또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후반부를 기대한다.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가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그래서 여행을 많이 떠난다.  길과 여행이 정답은 아니다. 현장법사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도 뒤로 물러나지도 꺾이지도 않았다. 진리 탐구의 길 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매일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이다. 더 나은 삶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점점 나만의 길에서 멀어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