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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클래식>현장스님은 구법여행을 그 어떤 유리한 점과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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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파 작성일14-05-02 14:56 조회3,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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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서유기 2번째 세미나 후기 박경옥
 
 책과 함께 떠난 12번의 여행. 기다리던 마지막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곰샘은 “우리가 이 두꺼운 책들을 다 읽었네. 끝이 있는 건 좋은 것이야. 좋은 것은 끝이 있어”라며 밝은 목소리로 시작했다. 시즌1을 함께한 세미나 멤버들도 물론 좋다. 3주간의 방학이다.
 책은 공간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먹는 여행이다. 특히 여행기를 읽는 것은 앉아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좋은 방법이다. 이번 시간은 멤버들이 묻고 곰샘이 답하는 부분이 많았다.
 
법(法)을 찾는 여러 방법
 곰샘은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왜 찌질할까? 고민하다 퍼뜩 생각이 떠올랐단다. 현장법사가 가진 능력을 세 제자가 나누어 가졌다. 합치면 인도로 구법 여행을 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삼장법사 혼자 뛰어나면 힘의 과잉이다. 마치 독수리 5형제가 합쳐 악당을 물리치듯이 밴드의 합친 역량이 문제를 해결한다. 힘이 과하면 분화가 된다.
법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오로지 한 마음을 다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 내가 가진 인연, 조건을 다 가지고 깨달을 수 없다.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는 마음은 깨닫기 싫어하는 맘이다.
 현장스님이 인도까지 오면서 목격한 것은 불교가 쇠락한 모습이었다, 다 무너지고 부서진 사원의 담장을 보았다. 그는 흙속에 파묻힌 관음상을 보고 비탄에 잠겨 통곡한다.
 
 「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었을 때 , 나는 어디서 떠돌아 다녔는지 모르겠구나. 오늘날 상계(像季)에 이르러서야 이곳에 왔으니 업장이 어찌 이리도 깊고 무겁기만 하단 말인가!」(p365)
 
 상계는 불교 용어다. 붓다가 열반 후 정법시대가 가고 정법과 비슷한 상법(像法)이 유행한 시대로 가르침과 수행만 있고 깨달음이 없는 시기다. 부처님의 시대는 부처님말씀을 듣기만 해도 즉문즉각할 수 있었다. 다음 세대는 승가(僧家)공동체에서 불법(佛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깨닫는 것과 다르다. 세대를 내려가며 성(聖)이 속화(俗化)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하향 평준화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있어야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을 직접 만날 수 없으면 책을 통해 보고‘ 내가 깨닫는 게 진리인가’ 탐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경전토론이 들불처럼 번졌고 진리에 대한 탐구 열정이 엄청났다. 중국에서 선문답이 6조 혜능 때부터 나온 것은 과격한 방법으로 깨달음에 다가간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의문이 하나 들었다. 현장법사는 우주의 모든 만물은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있지 않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몰랐단 말인가.
 현장스님이 도착한 날란다 사원은 학문의 중심지였다. 대학(大學)의 모델이다. 대학은 인류 보편적 진리를 배우는 곳이다. 날란다도 사원이면서 일반 지성을 다 다뤘다. 그 속에서 스님은 공부해야 한다. 스님은 원래 공부밖에 할 게 없는 사람이다. 요즘 한국 스님들은 너무 바쁘셔셔 공부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신도 상담하랴 불사 중창하랴 대내외 행사 다니랴 얼마나 바쁘신가.
 그 당시 인도에서도 목숨 걸고 (정말 목을 내놓고) 토론했고 그 전통은 계속 이어오고 있다. 우리 대학은 중요한 것은 빼고 가르친다.(말하기와 글쓰기) 하버드 대학도 토론, 유머가 필수다.
 
진리에 다가가는 노력들
 한편, 쿠마라왕과 계일왕은 중국의 실체는 몰라도 중국 문화를 먼저 접했다. 종교의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을 알아보았다. 종교는 통치의 기본철학이다. 지금의 화폐중심의 물신사상은 진보도 아니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그들은 한 수 위라고 판단되면 바로 조공을 바치며 배우려고 했다.
 현장법사는 여러 왕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왕들에게 인정을 받는 다는 게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좋은 것은 자기 곁에 두려고 한다. 진리를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권세를 위해 이용한다. 하지만 현장스님은 어떤 왕과도 결탁하거나 진리를 한 곳에 가두지 않았다.  부자들이 도사, 풍수지리학자, 점성술사 관상가들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재벌이건 국왕이건 종교지도자를 찾아간다. 90년대에 대*그룹회장이 비행기에 김용*교수님을 태우고 다닌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재벌이나 백만장자는 그 방면에 조금 더 부지런해서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마음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시절인연을 만나 ‘대박’을 친 것이다. 빌게이츠는 전 세계인에게 다 필요할 거라는 예지력을 지니고 ‘윈도즈’를 만든 게 아니다. ‘겨울연가’를 보라. 눈물 멜로를 만들었는데 우연히 일본 전체(특히 일본아줌마들)가 빠졌다. 그냥 어느 날 히트 친 것이다. 우리는 그런 능역에 속는다. 갑자기 성공한 사람들은 종교인들을 옆에 두려 한다. 그들이 볼 때 진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완전 소중한 것이다. 당 태종도 불법 출국했던 현장법사를 열렬히 환영한다.
 현장법사가 훌륭한 점은 환영식에 나가지 않고 조용한 시간을 가진 점이다. 아니면 연예인 놀이에 빠져 빨리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홀로 관사 건물을 지키고 앉아서 청정한 분위기 속에 한가로움을 즐겼다. 물의에 빠져들까 두려워 그런 자리에 임하지 않았다.」(P558)
 
 맑고 깨끗한 정신을 유지하는데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현명한 그에게도 오점은 있다. 그는 부와 권세, 인기는 버렸지만 자기 영역은 못 버린다.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은 버릴 수 있다. 그는 학승이고 번역가였다.
 「 그의 번역 기풍은 직역도 아니고 의역도 아니다. 올곧은 원전의 뜻을 녹여서 하나로 융화시켰다. 새로운 기풍을 스스로 창조하여 중국 번역사상 하나의 새로운 정상에 도달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P593) 지센린 선생말씀.
 
 현장법사는 후세에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복생이라는 승려가 역경사업을 벌이자 산스크리트 경전을 모조리 빼앗고 장안에서 내쫓는다. 자기 분야의 자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현장스님의 약한 고리이며 물러설 수 없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한편, 당나라 때는 도교가 불교보다 우선이었다. 당나라 황실은 이민족의 혈통과 비천한 출신을 감추기 위해 도교의 시조인 노자 이이(李耳)를 자기네 조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도교 ,유교 불교 순으로 질서를 매겨 놓고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서열에서 불교를 가장 낮은 자리에 놓았다. 불교는 외래 종교였다. 쉽게 국가 종교로 하기 힘든 점이다.
 당나라 때는 노자의 무(無)와 불교의 공(空)을 혼동해서 많이 썼다. 삼교 중 유가(儒家)는 유연성이 있다. 유연함은 온건함과는 다르다. 유연함은 다른 사람과 연결하고 공생한다. 수많은 급진파, 예를 들면, 묵자(墨子)같은 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순세외도, 데바닷타도 급진파로 과격했다. 급진 개혁파들의 말은 다 맞는 말인데 유연성이 없다. 한 끼만 먹자는 강령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누가 더 철저하게 지키나?’ 로 싸운다. 혁명이 도그마가 되는 지점이다. 속세의 인연을 끊고 진리를 추구하는 불교도 <부모은중경>이 있다. 신이든 진리든 삶을 추구해야 한다.
 내 생각에 ‘맞는 말’은 진리가 아니다. 그걸 주장한 사람에게나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이 지키기 너무 힘들어 처음엔 혹하지만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아니면 처음부터 맞는 말은 없거나. 요즘 스마트폰에 ‘좋은 말’들이 떠돈다. 오면 바로 지운다. 영혼도 없고 힘도 없는 말이다. 이상적인 ‘말’은 그림일 뿐 현실은 아니다.
 
공부는 신체성. 몸에 새길 때까지
 <유가사지론>한 강좌를 배우는 데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 인도에서 학습 방법은 경전을 한 송 한 송씩 소리내어 낭독하고 학생들이 따라 외우는 것이다.(P408) 현장 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 차례나 배웠다. 5년을 끊임없이 긴장하고 공부했다. 몸에 새길 때까지. 죽을 때까지 번역하고 배웠다 .끝까지 한 게 훌륭한 점이다. 곰샘은 그것이 최고의 삶이며 부처님이 원하는 삶이라고 한다.
  현장법사는 자신의 구법 여행을 본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타협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공부할 수 있을까. 두꺼운 로드 클래식 책을 읽다가 현장법사를 닮아가는 건 아닐까.( 19년 찾고 19년 글을 쓸 수 있다면.) 현장스님이 그렇게 찾던 <유가사지론>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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