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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클래식3> 미사여구 없는 자세한 묘사가 고전이 되다-동방견문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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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파 작성일14-08-29 14:02 조회2,8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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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옥  2014년 8월29일
 이사를 했다. 책장을 주문했다. 28cm이상의 책은 안 들어간다. 우리나라 지도책은 40cm다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 유럽지도책과 함께 버렸다. 구글에서 보면 3D 입체로 지구촌 구석구석이 다 나오니 이제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럽 지도책은 ‘ 언제 다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무거운 지도책을 들고 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버린 후 하루가 지나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침대 밑에 놓고 가끔씩 꺼내 볼 수 있는데. 이번엔 버리는데 너무 과감했다. 종이책은 한 번 만들면 그 당시의 지명이나 건물을 그대로 간직한다. 지도책이 역사책이다.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동방견문록 두 번째 시간은 20여명. 참석한 인원의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읽는 사람마다 끌리는 부분이 다르다. 성풍속도, 전쟁, 결혼, 화장(火葬)제도, 도시의 풍경, 보석, 역참을 비롯한 국가 시스템, 마르코 폴로가 갇혔던 감옥 등. 덕분에 혼자 보면 보이지 않던 내용도 보인다. 로클세미나의 힘이자 집단 지성의 힘!
 먼저, 경금 샘의 발제, 여자들의 성 풍속에 대한 내용이 많아 화제가 그쪽으로 옮아갔다. 땅이 사람의 기질을 만들고 풍습을 만든다. 서북쪽 여자들은 결혼 전 여러 남자들을 거치는 게 더 능력있고 남편에게 인정(?) 받는다. 동남쪽 여자들은 전족한 여자들처럼 걸음조차 제대로 못 걷고 비둘기알로 처녀성을 검사받아야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처녀막 복원술이 발달했다. 가짜인지 아닌지 철저하게 검사했다.
티베트를 비롯한 북쪽과 유목민들은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씨를 받을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남송 쪽은 농경민족, 모여 살아 남들의 이목이 더 중요했을 수 있겠다. 하여 남의 나라 풍습과 윤리를 함부로 재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인도는 손으로 밥을 먹는 것처럼 문화는 그 나라에 맞게 만들어지고 계승된다. 남송의 처녀성 풍속을  왜 이렇게 자세히 묘사했을까?  마르코 폴로가 한참 혈기방장한 시기여서 젊은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였을까? ‘어쩌면 이런 내용까지! (347쪽) 할 정도로 자세하다. 여행을 하거나 여행기를 읽으면 편견을 없애고 내 것만 좋다고 고집할 수가 없다. 열린 마음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는 뼈 속 깊이 상인이다. 그것도 이탈리아 상인. 그가 편견없이 보아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다. 상인은 어떤 종교, 어떤 문화를 차별하고서 교역을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시연샘의 발제였다. ‘신체를 통해 세상을 만난 사람’ 제목이었다. 세계와 몸로 만난 사람, 마르코 폴로가 있다. 몸으로 싸우는 전쟁기계같은 전사들이 있었다. 전쟁을 하는 명분, 전쟁선언, 침묵, 피할 수 없는 백병전을 잘 정리했다. 마르코 폴로가 전하는 전쟁의 실상에서  삶과 죽음은 분리되지 않는다. 일상의 나쁜 시간, 사악한 시간 속에 전쟁이 흘러간다. 다가오는 시간을 거슬러 살 수는 없다. 가족들은 울부짖고 수많은 전쟁고아와 과부가 생긴다. 전쟁묘사에서 나는 무엇보다 군영이 화려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군영은 ‘금실로 장식한 군막과 대단한 부호(富豪)들의 캠프처럼’ 만들었다. 전쟁에 나온 이상 전투 중에 죽거나 승리한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있는 그 장소를 화려하게 꾸민 것은 적들에게 힘있게 보이고, 전장에 나간 왕이 전사들을 위로하는 마음이 담긴 것인가.
 
  자세한 묘사
 금이나 은 진주 등 보석에 대한 마르코 폴로의 관심도 각별하다. 폴로가 서술한 내용이 허풍과 사실이 혼합되어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황금에 대한 욕망이 있던 사람들은 어떤 위험에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콜럼버스만 떠났을까. 역사책에 한 줄 남기지 못한 사람들도 엘도라도, 지팡구를 꿈꾸며 험한 뱃길을 마다하지 않고 떠났을 것이다. 8세기 버마의 도읍지인 파간에 있는 금으로 도금된 화려한 탑을 보자
 
'탑 하나는 아름다운 돌을 깎아 만든 뒤 그 위를 손가락 하나 두께의 금으로 덮어서, 탑 전체가 온통 금으로만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높이는 족히 10보가 되고 폭은 그 높이에 적당한 정도이다. 위는 둥글고 그 둥근 부분 주위에는 금으로 도금된 종들이 잔뜩 달려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낸다. 은으로 된 또 다른 탑도 금으로 된 것과 똑같은 형식이다.'(344p)
 
문신의 풍습에 대한 묘사도 너무 구체적이다. 그 당시 문신하는 모습을 독자들이 들여다보는 듯 잘 설명했다. 문신을 할 때 고통은 연옥에 있는 듯하고 문신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뛰어나고 멋있는 것으로 여긴다.
인육을 먹는 풍습에 대해서도 이유를 들어 잘 설명했다. 병자를 그냥두면 벌레가 생기고 그 벌레가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지면 굶어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병자를 먹는다. 서유기에서 본 내용도 나온다. 잘 생긴 삼장법사를 먹을려고 혈안이 된 요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서유기를 읽을 때 괴담 수준의 요괴인가 했는데 실제 그런 일이 있다니!
 
  '어쩌다가 누군가 용모가 잘생기고 점잖으며 또 모습이 수려한 사람이 이 지방을 지나다가 어느집엔가 유숙하게 되면 밤중에 독이나 다른 방법으로 그를 죽인다. 돈을 뺏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지닌 훌륭한 외모와 좋은 품격, 그의 지식과 영혼을 자기 집에 남겨두기 위해서다.‘(323p)
 
 이런 묘사들이 나중에 서양 사람들의 동양에 대한 편견, 야만적이고 지저분하다는 편견을 만든 게 아닐까. 반대로 13c 동양에서 서양을 여행하고 이런 기록을 남겼는지 궁금하다. 실크로드를 통해 많은 것이 오고갔지만 동양 시각에서 서양을 이렇게 세세히 묘사한 책이 있는가 궁금해진다.
 
   미련이 남는 책, 책
몽골 칭기스 칸이 1206년 세운 원나라는 쿠빌라이 칸 시절 원제국으로 커졌다.150년 동안 북으로 러시아에서 남으로 수마트라, 동으로 고려에서 서(西)로 터어키까지. 세계를 주름잡던 몽골인들의 나라도 그들이 탄압한 한인들이 세운 명에 의해 무너진다.
원나라도 로마제국처럼 도로를 정비하고 역참제도를 잘 정비했다. 그런데 두 나라의 차이는 뭘까. 원나라는 대카안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린 게 아니었다. 정복당한 나라는 충성을 서약하고 지배자가 원하는 것(조공)을 바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책에도 나오지만 아주 귀한 보석은 대카안이 직접 통제해서 흔한 물건이 되지 않게 철저히 통제했다.
 ‘진주가 나오는 호수가 있다. 그러나 대카안은 아무도 그것을 채취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까닭은 만약 사람들이 거기서 마음대로 갖고 나오면, 진주가 너무나 흔해져서 그 가격은 아무 가치도 없이 폭락할 것이기 때문이다.’(314p ) 투르크석도 마찬가지로 통제했다.
 세계사 공부는 고등학교가 전부인 짧은 지식으로는 비교가 어렵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는 사놓고 한 번도 안 읽고 책장을 장식하고 있다.
 
 이제 지도책을 들고 여행하기보다 스마트폰과 네비게이션으로 낯선 곳을 쉽게 찾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두꺼운 지도책을 보관하는 일이 스마트하지 못할 수 있다. 미사여구가 없지만 자세한 내용의『동방견문록』은 세월이 지나도 지적 자극을 주는 고전이 되었다.
‘다시 지도책을 한 권 살까. 아들 고등학교 때 쓰던 역사부도와 지리부도로 만족할까.’
버린 지도책은 마르코 폴로의 책처럼 몇 백년이 지나도 배터리 없이 볼 수 있는 고전일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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