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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깨달음,이야기-『그리스인 조르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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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파 작성일14-09-16 19:39 조회3,9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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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옥             
 
  오랜만에 고미숙샘이 함께 했습니다. 만두와 김밥 사과 배등 먹는 것이 풍성한 가운데 ‘먹은 값’(만 두값)을 하느라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말했습니다. 곰샘이 가장 많이 먹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많은 말 을 해주셨습니다. 세미나의 실시간 재현은 아니고 제 나름 다시 정리했습니다.
 
 많은 죽음들
  4대 열강 제독을 주무르던 오르탕스 부인이 죽었다. 목 잘리는 암탉처럼 귀청을 찟는 듯한 소리로 신음을 토하고 공포로 질린 눈을 그대로 뜬 채 뻣뻣하게 굳어졌다(378p,열린책들). 씨암말 같이 엉덩이가 팽팽한 젊은 과부도 동네 사람들에 의해 조리 돌림으로 죽었다. 산속의 수도원, 소돔과 고모라라 재현되는 부패의 수도원에서 젊은 수도사도 죽는다. 조르바는 수많은 전장에서 많은 사람의 목을 땄다. 조르바는 노년에 세르비아의 동광(銅鑛)에서 아무런 후회 없이 죽는다. 크레타 섬의 광산 사업파트너이자 우정이 있었던 사랑하는 ‘두목’에게 산투르를 남기고서.
 조르바는 두려움이나 공포에서도 자유를 찾는다. 죽음의 두려움과도 맞섰다. 그가 비정규 전투요원이 되어 불가리아에서 싸우던 때, 그리스인 교장을 살해한 신부(神父)의 목을 따고 귀를 자른다. 다음날 그 동네에서 마주친 것은 신부의 어린 자식들 5명. 조르바는 있는 돈을 다 털어 그들에게 주고 도망친다. “지금도 도망치고 있습니다 .”(325p) 죽음, 특히 살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조국도, 돈으로부터도 있는 족족 짐을 덜어버리고 해탈의 길을 찾는다.
 우리는 흔히 명분을 찾는다.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아주 큰 대의명분이다. 눈앞에 있는 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는 명분이다. 하지만 조르바는 이 명분을 축적하지 않고 분별심을 확 깬다. 신의 이름으로, 신의 명분으로 행하는 일은 항상 옳은가. 보통 사람들은 의문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그 속으로 들어간다.
 개인 안의 편견과 군중 심리는 크레타섬의 한 동네에서 멀쩡한 과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각자 잘 안 풀리는 문제를 ‘누구’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고, 화풀이하는 대상을 찾는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겐 강한 인간의 마음이 살인이 되었다.
 공자는 분노를 옳기지 않는 게 군자의 도리하고 했다.동네 사람들은 과부를 풍속을 어지럽혔다고 합리화한다. 그녀는 벌을 받을 만해서 죽인 것라고 변명한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떳떳하지 않으면 명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안심한다. 이런 마음들이 어느 순간 상식이나 진리가 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같은 관계,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어 버린다. 다음 세대는 날 때부터 영문도 모르고 어른들의 증오를 학습한다. 이 동네에서 바보인 미미코 만이 진실을 외친다.
미미코는 말을 끊고 적당한 표현을 찾다가 말을 이었다, 「돼지들...건달들...사기꾼들...살인자들..」마지막의 <살인자들>라는 말이 그가 찾던 말인 듯했다. (367p)
 4대 열강의 무릎에서 놀던 부불리나, 오르탕스 부인은 조르바와 결혼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요란한 치장은 벗고 주름투성이의 평범한 여인이 된다. 조르바는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내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오르탕스 부인도 진짜 여자 중의 한명이었을까. 소중하게 간직해온 금을 결혼반지로 만들어 조르바에게 선물한다. (난 진짜 여자는 아직 안 된 것 같다. 아직 주는 것에 커~다란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와 같이 사는 남자도 진짜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조르바의 아버지는 쌈지를 꺼내어 물어찢고 침을 탁 뱉은 후 다시는 담배는 입술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진짜 사내란 이런 면을 보인다는데, 노무현이 당선되면 담배를 끊겠다던 남편은 아직도 베란다에서 연기를 피워 올린다.)
 죽음은 동네 가난한 사람들에겐 닭 한 마리를 배부르게 먹을 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죽은 부룰리나가 가진 모든 것을 깨끗히 해체해 버린다. 한 할머니는 설탕, 숟가락을 차지하고 다른 할머니는 스타킹, 커피를 가져간다. ( 죽은 나무를 분해하는 버섯이나 박테리아 같다.) 물론, 한편에선 망자(亡者)의 길에 곡을 해주는 미미코의 숙모 레니오 할머니 같은 사람도 있다.(그녀도 챙길 것은 다 챙긴다) 그들의 죽음과 일상은 분리되지 않는다. 배고프면 먹고 죽은 사람이 남긴 것은 기회가 있을 때 잡는다. 죽음에 잉여가 남지 않는다.
 가끔씩 사진을 찍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사진을 프린트해서 간직하면 누가 간직할까. 내 자식들은 바빠서 부모의 기록을 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남기는 것은 내가 흔적없이 처리하지 못하는 쓰레기를 남기는 것은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식욕과 희노애락이 동행한다. 요즘 장례식에선 문상객은 검정 옷을 입어도 멋을 내고 좋은 옷을 입고 온다고 한다. 어떤 상주는 오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속눈썹을 정리(붙이고)고 상이 끝날 때까지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풀메이크업을 유지했다고 한다(이경아샘이 전한 말) 한편에선 이해가 간다.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는 문상객이 어떻게 나를 볼지 의식이 된다. 처음 보는 남편 회사 사람들, 친구들을 의식한다. 외모가 중요한 시대의 한 모습이다.
 
깨달음
조르바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풀어내고 거기에 삶의 철학까지 엮어낸다. 말이 곧 진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흔히 경험을 많이 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전제와 단단한 편견을 만든다. 경험으로 으스대고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것처럼 거들먹거릴 때가 있다. 조르바는 겪으면서도 기존의 전제들을 깬다. 우리는 현장 경험을 많이 해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애를 키우는 일상에서도 기존의 전제들을 깰 수 있다. 초보 엄마가 육아책을 보고 얼마나 많이 애들을 잡는가. 그 애에 맞게 키워야 함에도 육아책의 권위에 내용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우를 범한다.모든 전제가 깨지면 분별도 없어지는가? 시시비비를 넘어서면 무관심의 상태로 가지 않을까? 자연과 우주의 생명의 원리 안에서 ‘나’를 봐라. 자연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고 질서 없이 막 돌아가는 게 아니다. 봄 다음에 여름,가을,겨울처럼 차서가 있다. 내가 옳다면 내 마음을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이야기일 수 있고, 글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다. 내 기준이 변하지 않으면 점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 고독사도 옳은 삶은 아닐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 난 조르바같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아 경험부족으로 깨달을 수 없어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우리는 조르바가 될 수도 없고 ‘두목’이 될 수도 없다.
 작가도 조르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부처님처럼 깨달아 간다. 여자들은 흔히 틀 안(결혼,가족)에 들어가 안정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부불리나도 그냥 한 여성으로서 살아갔는데 결혼 앞에서 무너졌다. 어쩌면 가족이 깨달음의 천적이기도 한다. 작은 울타리는 더 큰 울타리(국가,종교)를 필요로 한다. 가족 안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깨는 방법은? 부부사이가 도반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깨달음으로 같이 나아갈 수 있다.친밀한 관계는 애증(愛憎)이 폭발한다. 인욕정진(忍辱精進)이 필요하다. 굴욕감과 온갖 감정을 넘어 그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어야 깨닫게 되고 가벼워지지 않을까.
 
이야기꾼 조르바
조르바는 대단한 관찰력이 있다. 처음 ‘두목’을 만날 때 두목이 수프를 좋아하는지 알아봤다. 또 두목이 가장 좋아하는 꿀 바른 ‘할바’를 칸디아에 갔을 때 사온다. 부불리나를 위해선 핸드백, 스타킹, 빨간 파라솔, 향 수 두 병.젊은 애인과 시간을 보낼 때는 그녀에 맞게 머리도 염색하고 변신을 한다. 먹는 것은 정말 맛있게 먹는다. 같이 먹는 행위는 마음을 터놓게 한다. 그는 말을 재미있게 하면서 말 속에 뼈가 있고 철학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삶의 스토리가 빈곤한 것과 많이 대비된다.
 조르바처럼 재미있으면서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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