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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 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났는가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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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진 작성일13-10-27 08:34 조회3,1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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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잊고 있던 발제문 업데이트 ^^

문득 중한그몸 세미나 방을 따로 하나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ㅎ

아무튼 올립니다~



박원재, <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났는가> (예문서원, 2001) 8장 


덕치와 전제


얼핏 보기에 '덕치(德治)'와 '전제(前提)'는 서로 대치되는 정치 용어처럼 보인다. 덕치란 도덕적으로 훌륭한 성품을 가진 통치자가 자신의 덕을 피통치자들에게 두루 미치게 하는 정치를 뜻하는 반면, 전제주의라 하면 대개 한 개인에게 집중된 권력이 그의 의도에 따라 남용되는 경우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덕치와 전제는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통치 구조를 설명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덕치든 전제든 어쨌든 한 사람의 군주에 의한 중앙집권을 상정한다는 점에선 지향하는 바가 같기 때문이다. 다만 덕치가 이 같은 통치 방식의 이념적 측면을 말한다면, 전제는 그 제도적인 측면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통 전제 정치의 폐단이라 여기는 것들은 그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제도의 주체가 되는 통치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 둘 사이를 쉽게 혼동하여 덕치는 '선', 전제는 '악'으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한나라 초기의 유학자들은 덕치와 전제라는 두 개념을 하나의 틀 안에 결합시켰다. 이러한 결합은 앞서 보았듯 새로 탄생한 통일 제국을 어떻게 질서 있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그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컨대 동중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가 국가인 근거는 덕이며 군주가 군주인 근거는 힘이다. 따라서 덕과 힘은 나누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군주된 자는 그 덕을 굳건히 지켜 백성들이 떠나지 않게 해야 하며 권력을 굳건히 지켜 아랫사람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147쪽에서 재인용).

여기서 '국가의 국가인 근거'가 '덕'이라는 말은 한제국이 지향해야 할 정치 이념이 '덕치'라는 말이고, '군주가 군주인 근거'가 '힘'이라는 것은 한제국이 채택하고 있는 정치 체제가 곧 모든 권력이 군주에게 집중되어 있는 '전제' 체제임을 인정하는 말이다. 그리고 덕과 힘이 나누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은 결국 국가의 힘을 장악하고 있는 군주가 덕까지 지켜야 한다는 말과 같다. 즉 덕치의 실현과 전제의 유지는 비록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궁극적으로 모두 군주 한 사람에게 달렸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덕치와 전제를 하나의 틀로 결합하기 위해 한초 유학자들은 어떤 논리적 도구를 사용하였는가? 간단히 말하면 '도道와 술術', '상常과 변變', '경經과 권權'이라는 범주쌍이 그것이다. 우선 도道와 술術부터 살펴보자. 동중서를 비롯한 한초 유학자들은 인간의 도가 자연의 도에 기반을 두고 행해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도는 하늘의 도도 아니고 땅의 도도 아니며,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길이고 군자가 밟아 나가야 할 길"이라고 했던 순자의 시각과는 다른, 오히려 선진 유학의 도론에 가까운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 또한 자연의 도에 근거하여 행해져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때 덕치란 곧 자연의 도를 인간 세계에 가장 잘 구현하는 정치를 뜻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덕치라는 불변의 목표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사용된 것이 바로 '도'와 '술'의 개념이다. 육가는 시간의 변화에 관계없이 항상 추구되어야 하는 규범을 '도'라고 하고, 그것을 현실적 여건에 맞게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술'이라 정의했다. 즉 '도'를 목표라고 한다면 '술'은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소위 육가의 '현실 중시의 역사관'이다.


그렇다면 덕치를 한나라 초기 정황에 맞추어 구현하기 위해서 유학자들은 어떤 방법을 택했을까? 그들은 덕치에 맞게 현실을 개조했다! 그들은 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반란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한 대응책이 곧 전제 체제의 강화였다. 즉 전제라는 정치 체제는 덕치라는 정치 이념(도)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요청된 현실 대응책(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들의 논의는 '상常과 변變'의 논리로 보다 세련화된다.

"도는 본래 항상된 것(常)도 있고 변화하는 것(變)도 있다. 변화의 도리는 변화하는 형세에 적용되고 불변의 도리는 불변하는 일에 적용된다. 이 둘은 각자의 영역에 쓰이므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 (동중서, 157쪽에서 재인용).

위에서 '상'과 '변'은 서로 고유한 영역이 있어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함은 육가의 현실 중시 역사관에서처럼, 결국은 '변' (혹은 술)에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다. 다시 말해 한나라의 전제 체제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논리인 것이다. 이에 따라 한초 유학자들은 전제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예禮'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적 질서를 국가 전체에 확대하여 적용하는 방법이었다. 즉 군주를 가장으로 하고 관료를 가형(家兄)으로 하여 피통치자를 자식으로 삼는 가부장적 위계 질서를 세움으로써 국가의 구성원들은 통치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이른바 '가부장적 군주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대에 특히 『효경(孝經)』이 중시된 것이나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논리는 바로 이러한 통치 질서를 정당화시키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여기서 '술/변'은 어디까지나 '도/상'의 영역에 있어야 한다는 점, 즉 전제 체제는 어디까지나 덕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으로서만 의의를 지닌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동중서가 사용하는 것이 '경經과 권權'의 개념이다.

기물의 명칭은 그것을 처음 만든 사람이 붙인 이름에 따르고 땅의 명칭은 그것을 마지막에 소유한 사람이 부르는 호칭에 의거하는 것을 법도라고 한다. 이것이 권도權道의 근본이다. (...) 일시적인 변통(權)이 비록 항상된 법도(經)애 어긋나더라도 그것은 결국 그것이 설정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지 그러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벗어난다면 죽더라도 그러한 변통을 행해서는 안 된다" (동중서, 158쪽에서 재인용).

상황에 따른 대응책(權)은 항상된 법도(經)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는 위와 같은 논리는 덕치를 잊고 전제 체제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쉬운 통치자의 경향성을 견제하기 위해 나놓은 이론적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가 보여주었듯 덕치와 전제의 결합, 즉 도덕과 권력의 결합은 대부분 권력에 의한 도덕의 지배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초 경학의 운명도 이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이후 중국 역사 속에서 '덕'이 '힘' 앞에서 좌절된 예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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