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그몸] 기(氣)가 막혀 죽는 여자 (동의보감 내경편 氣 21~23조목) > 세미나

세미나

홈 > 세미나 > 세미나

[중한그몸] 기(氣)가 막혀 죽는 여자 (동의보감 내경편 氣 21~23조목)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진 작성일13-10-27 08:38 조회5,173회 댓글3건

본문



기(氣)가 막혀 죽는 여자



잠시 잊고 있었다. 지난 번 『동의보감』 발제 때 소설 『홍루몽』 속 ‘가서’ 이야기를 했던 것을. 짝사랑하던 여인에게 홀려 몇 날 밤 정액을 쏟다 싸늘하게 죽어 간 그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런데 이번 발제 범위를 읽다 보니 또다시 불현듯 『홍루몽』 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번에는 남정네들 이야기가 아닌 여인네들의 얘기다. 그리하여 이 발제문에 이렇게 한번 이름을 붙여보려 한다. 일명 ‘동의보감-홍루몽 함께 읽기’ 시리즈 제 1탄 ‘정(精) 때문에 죽는 남자’에 이은 제 2탄 ‘기(氣)가 막혀 죽는 여자’! 참으로 오묘하기도 하지. 양기(陽氣)가 넘쳐나는 남자는 음(陰)에 해당하는 정(精)을 너무 발산해서 죽고, 음기(陰氣)로 가득 찬 여자는 양(陽)에 해당하는 기(氣)마저도 너무 가두어 둬서 죽는다니. 어쨌든 지금부터 제 2탄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한다.


『홍루몽』에서 ‘가서’가 ‘정(精)의 화신’이었다면 기(氣)의 화신으로는 ‘진가경’과 ‘임대옥’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진가경은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인 가씨 집안에 들어와 ‘가용’이라는 작자와 혼례까지 올린, 온화한 성품의 아리따운 여인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죽는 일이 발생한다. 혹자는 갑자기 생긴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고 하고 혹자는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하는데, 진실은 본인만 알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죽기 한두 달 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는 증상으로 집에 의원을 부른 적이 있었다. 그때 의원은 진가경의 맥을 짚어 보고는 남편인 가용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울화가 치솟고 심기가 불편하여 생긴 병 같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부인은 총명하고 신경이 예민한 것 같은데, 그게 병을 만들 수도 있지요” (『홍루몽』 1권 제 10회).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넘길 일에 과도하게 신경을 써서 병이 왔으며, 병을 고칠 방법은 오직 마음을 고쳐먹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진가경이 앓던 증상은 몸의 기(氣)가 막히거나 역류하여 생긴 ‘기통(氣痛)’에 해당한다. “인체의 원기(元氣)는 혈(血)과 같이 순환해야 하는 것인데 (258)” 기가 순환하지 못하고 한 곳에 맺히면 맺힌 부위가 더부룩하면서 통증이 오게 된다는 거다. 따라서 기(氣)가 상초(上焦)에서 막히면 가슴이 더부룩하면서 아프고, 중초(中焦)에서 막히면 배와 옆구리가 찌르는 듯이 아프며, 하초(下焦)에서 막히면 허리가 아프면서 산가(疝溊)가 생기고, 겉에서 막히면 온몸이 쑤시는 것같이 아프거나 부종이 생긴다고 한다. 기가 맺혀서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흔히 이러한 병증을 기울병(氣鬱病)이라고 하는데, 기가 울결되면 습(濕)이 막히고, 이처럼 진액(津液)이 운행되질 못하면 그로부터 열이 나면서 화(火)가 가슴이나 머리로 치솟기 때문에 호흡 곤란과 두통 증세가 함께 오기도 한다. 또한 별다른 통증이 없더라도 허구한 날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한숨만 푹푹 쉬고 있다거나 늘 화만 내는 증상 역시 기병(氣鬱)을 의심해볼 만하다.


그렇다면 『홍루몽』에서 평소 특별히 아픈 곳 없이 멀쩡하게 잘 살아오던 진가경이 갑자기 이러한 증상을 앓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의보감』에서는 모든 기병(氣病)의 원인을 단 세 가지로 축약하여 말하고 있다. 칠정(七情), 음식(飮食), 육기(六氣)가 그것이다. 즉 감정을 쓰는 것,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거나 한 가지 음식을 지나치게 먹는 것, 너무 덥거나 추울 때 혹은 바람이나 눈비가 심할 때 밖에 나가 사기(邪氣)에 감촉되는 것이 기울(氣鬱)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기병(氣病)의 십 중 아홉이 칠정(七情)에 의한 것이라고 할 만큼 감정을 쓰는 회로와 기의 흐름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홍루몽』 속 진가경의 증후 역시 칠정상(七情傷)에서 비롯된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확실한 서술은 없지만 『홍루몽』의 몇몇 구절들은 진가경이 몸져 눕기 바로 전날 시아버지인 가진에게 강간을 당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수치심에 혼자 끙끙 앓다가 병사했거나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진가경을 찾았던 의원이 어떤 처방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의보감』에서는 이러한 경우에 매운 성질의 약을 써서 뭉친 기를 흩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증상에 따라 처방에 차이를 둔다. 오래된 병이 아닌 경우에는 맵고 더운 약을 써서 담음을 잘 풀어주어 순환시키되, 기울병(氣鬱病)이 오래된 나머지 화(火)로 바뀌어 상초로 치밀어 오르는 경우에는 맵고 찬 성질의 약을 써서 화(火)의 뿌리부터 제거해야 한다. 특히 기울(氣鬱)에 쓰는 방제로 『동의보감』이 소개하는 것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이름도 오묘한 ‘교감단(交感丹)’이다. 장류수에 2일간 담갔다가 꺼내 볶은 향부자 1근과 복신 4냥을 꿀에 반죽하여 만든다는 교감단은 수화(水火)를 잘 오르내리게 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체의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로 감정이 생겨 답답한 것, 명예나 재물이 뜻대로 오지 않아 억울하면서 고민스러운 것”에 교감단이 신기한 효험을 보인다고 『동의보감』은 적고 있다 (262). 이름 그대로 ‘감정(感)을 교통(交通)시키는 약’인 셈이다.


마음에 병이 든 진가경에게 필요했던 것도 결국 이처럼 감정을 흘려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교감단보다도, 의원이 말한 것처럼 ‘마음을 고쳐먹는’ 길이 빨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청나라 최고의 가문인 가씨 집안의 가풍과 진가경의 성정은 그런 ‘교감’을 허용할 만큼 유연하지는 못했나보다. 지난 번 ‘정(精)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남자들을 보며 놀랐었는데, 이번에는 감정의 씀씀이로 인해 ‘기(氣)가 막혀’ 죽을 수도 있는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있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후자 역시 내가 여지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동의보감』과 『홍루몽』이 그리고 있는 죽음은 그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대단한 사고라거나 죽을 병 때문에 오는 무언가가 아니다. 일상에서 불시에 일어난 자잘한 욕망과 감정들의 부딪힘, 그것이 『홍루몽』 속 주인공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 ‘사고’이자 ‘병’이었다.


댓글목록

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감정을  흘려보내는게 능사가 아니라  ....
좋으면  탱큐겟으나.....그게 아니라면  싫다라면  그상황을 벗어날    탈출구가  잇어야....그래야  그게 진정한  해결책이  아닐런지요....
싫으면  피해달아나거나  아니면  힘을 길러  적을  제거하거나.....

매일  얼국맞대면서  염불을  외우면....그리고 교감단을 복용하면  해결되나요?...

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아무리 교감단을  만들어  평생 복용한다 치더라도....
그 분노  내지 수치심이  치료가 될까요?.....

분가를 하거나 혹은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가출  아니 출가를  해서 그 역겨운  시애비를  만나지않는다라던가...즉  탈출구가  잇어야..숨을  쉬지않을런지요....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저런 정조관념?/\! 자체를  교육받지말던가.......
아니면 생겨먹기를  그런 수치심자체가 없는  성격유형이던가....

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물론  말을  못해  생긴 기울증이겟으나...
그보다는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햇음에도  ..그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상황을  (장소, 처지.)벗어날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하니  ...
더 나아가  행여  또 다시  그런  ,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게다라는.....
막막함....내지 불안함이   
결국 존재를  갉아먹은게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