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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서당] 폭류처럼 흐르는 삶의 한 끝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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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진 작성일13-08-13 12:32 조회2,85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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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미나나 마찬가지지만 혈자리서당 세미나는 
매 시간 마칠 때마다 그렇게 뿌듯하고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짧다면 짧은 세 시간동안
북드라망에 올릴 글을 같이 읽고, 황보밀의 <침구갑을경>을 두 쪽씩 읽고,
불교의 유식을 공부하다 운슐트의 눈을 통해 의학을 공부하고,
때론 침까지 놓는 이 많은 일을 다 해내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아주 밀도있게!
단지 함께 읽는 텍스트의 종류나 양이 많아서라기 보다도
서로 전혀 다른 느낌의 텍스트들이 몸을 움틀움틀 자극하고
또 그것들끼리 묘하게 오버랩되어 어우러지는 경험이 즐거워서인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엔 특히 이 시대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지요.
지난 번 중한그몸 세미나에서 공부했듯 한창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이에
어느 세대보다 엉덩이를 의자에 오래 붙이고 있어야 하는 이 현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가장 건강해보이는 아이들이 ADHD 진단을 받게 되는 현실과
그들의 변해가는 몸에 대하여
때로는 흥분하며, 또 때로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더랬습니다.
그렇게 조카, 제자, 혹은 어린 시절 내 얘기까지 다 꺼내놓다보니 끝이 없더군요.ㅎㅎ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청소년 이슈를 다룰 때는 겉으로 보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보다 개인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함께 했습니다.

한편, 정화스님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6강에서는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구별하여 아는 식, 즉 전6식에서 나타나는 여섯 가지 심리현상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여섯 가지란 변행심소, 별경심소, 선심소, 번뇌심소, 수번뇌심소, 부정심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여섯 가지는 단지 큰 구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식 30송에는 각각의 심소에 해당하는 수십 가지의 마음상태가 하나하나 열거되어 있었는데,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모습을 얼마나 집중하여 관찰했길래 
이 하나하나를 분별하여 이름을 다 붙일 수 있었을까 싶어 그저 감탄스러웠습니다.

마침 자신의 몸, 느낌, 마음, 법, 이 네 가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름을 붙여가며 관찰하는 '사념처 수행법'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렇게 이름을 붙여가며 지켜보기를 하면 내가 붙인 그 이름과 생성소멸하는 삶의 모습이
얼마나 일치하지 않는가를 여실히 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새삼 이 대목에서 저희가 하고 있는 글쓰기가 떠오르더군요. 
정화스님 말씀처럼 '폭류처럼' 흘러가는 삶의 본질의 한 가닥을 잡아 언어에 가두는 일이 글쓰기일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이번 강에서 인상깊었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후기를 마칠게요.
이번 주 발제는 박경금선생님(유식 7강)과 이영희선생님(의학이란 무엇인가 60~70장)이 해주실 거고요.
열심히 읽어와서 또 하나의 뿌듯한 수요일 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를 내지 않는 나'와 어쩌다 '화를 내는 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매순간의 흐름이 삶의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화를 낸 순간에는 바로 화가 삶의 전부입니다. 행온의 흐름이 '깨어 있음으로 가는가, 아니면 탐심, 진심, 치심으로 가는가'에 따라 무소유의 삶과 소유의 삶이 결정됩니다. (...) 화가 나면 마음만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니고, 몸 전체가 화를 태는 상태로 바뀌어 버립니다. 곧 몸과 마음이 전체적으로 탐진치 삼독을 소유한 상태가 되거나 삼독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은 몸과 마음과 대상이 하나가 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깨어 있음이 되면 될수록 소유가 줄어들고, 몸과 마음 가운데서 자기화되어 있는 영역이 줄어듭니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보시하는 마음이 일어나면서 번뇌가 줄어들어 즐거움으로 가는 것이 해탈의 길입니다." (정화스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법공양. 17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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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님의 댓글

달집 작성일

어제 페르세우스 유성우 보려고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구름이 잔뜩 껴있더니 한시간쯤 지나니 구름이 펴졌습니다. 눈은 점점 아파오고 별들이 가물가물 흐려졌습니다. 산꼭대기에 휴대용 망원경을 설치하고 갈릴레이라도 된냥 별을 관측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별은 꽃이요, 말머리요, 희뿌연 가스덩어리였지요. 언젠가 이렇게 별을 관측했었던 것만같은 데자뷰도 느꼈지요. 데자뷰, 어쩌면 시간이 중첩되어 느껴지는 한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유성우를 봤냐구요? 글쎄요... 유성우를 보더래도 빌 소원이 없었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 진력나게 꽉 찬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소원성취네요.  혈자리 서당의 공부가 깊어지고 있네요. 기분 째지게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