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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동의보감 내경편 身形 23~24조목: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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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얼음마녀 작성일13-08-13 15:27 조회2,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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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조목 : 단전으로 돌아오는 단련법[還丹內煉法]
24조목 : 섭생하는 데서 금기해야 할 것[養性禁忌]
양생(養生) vs 양성(養性)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듯,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한다. 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원기(元氣)를 기르고 보양하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낸 것이 양생(養生)의 비결들이다. 반운과 복식, 여러 가지 안마도인법을 따라하려면 하루 종일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가면서 신체를 단련해야 한다. 몸을 다스려 기운을 길러 오래 사는 것, 이것이 양생의 목표다. 양생이 잘 살아가기 위한 삶의 토대를 구축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길러낸 기운을 어떻게 잘 쓸까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양성(養性)이다.
 손사막(孫思邈)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에서 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양성(養性)이란 노력하여 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 스스로 선해지면
 노력하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성이 기왕 스스로 선하다면 내외의 백병(百病)
 모두 사라질 것이며, 각종 화란(禍亂)과 재해(災害) 역시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성하는 사람은 단지 약과 음식을 복용할 뿐만 아니라 백 가지 행실을 두루
  살피기 때문에 약과 음식을 끊을지라도 수명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덕행이 부족하면
  설사 옥액(玉液)과 금단(金丹)을 먹는다 해도 수명을 연장할 수 없다. 공자가 이르길
 ‘섭생(攝生)을 잘하는 사람은 산길을 걸어도 호랑이를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로 어리석은 자는 수년간 병을 앓아도 행실을 고치려 하지 않으며 병마에 시달려 치아가
  전부 빠져도 끝내 후회할 줄 모른다.
 
 양성(養性)은 마음을 다스려 선()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할 때도 우선 선량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병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약을 먹는 것은 질병을 잠시 다스리는 수단일 뿐이다. 만약 환자가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럼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까? 동의보감은 포박자(抱朴子)진고(眞誥)를 원용해 이렇게 답한다. 줄여라, 명랑해질 것이다라고.
 

금기 vs 출구
 

  24조목의 제목은 양성금기(養性禁忌 : 양성하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 맨 앞에 그날, 그달, 그해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쭈~욱 열거되고, 마지막에 ‘12가지 줄여야 할 것들이 나온다.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늘 생각하는 것, 걱정하는 것, 욕심을 내는 것, 일을 하는 것,
 말을 하는 것, 웃는 것, 근심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들을 모두 적게 한다.
  
그리고 곧바로 이것들이 지나치면 어떻게 되는지를 덧붙인다.
     
 생각을 많이 하면 정신이 위태롭고 걱정을 많이 하면 의지가 흩어지며 욕심이 많으면 의지
 가 흐려진다. 또한 일을 많이 하면 몸이 피로해지고 말을 많이 하면 기운이 부족해지며
 많이 웃으면 오장(五臟)이 상한다. 그리고 근심이 많으면 마음이 떨리고 즐거워하는 것
 이 많으면 의지가 넘쳐나고 기쁨이 많으면 정신이 혼란해진다. 성내는 일이 많으면 온갖
 맥이 고르지 못하며 좋아하는 것이 많으면 섞갈려서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싫어하는 것
 이 많으면 몸이 마르고 즐거운 일이 없게 된다.
 12가지를 흔히 없애지 않으면 영위(榮衛)가 제대로 돌지 못하고 혈기가 허투루 돌아
  서 생명을 잃게 하는 근본으로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감지할 수 있는 메시지는 되는대로 막 살면 안 돼~’, ‘네가 욕망하는 것을 줄이지 않으면 잘 살 수 없어라는 것이다. ‘욕망을 버리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운을 아껴 지나치게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거로군. 그럼 어떻게 마음이 생겨나고 흔들리는 걸 참아내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앞에서 읽었던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정기는 사람의 신령이며 명랑한 기분은 몸의 보배란다. 여기 나와 있는 것처럼 마음 작용을 참고 억제하면 정기(精氣)를 아낄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명랑한 기분이 생기겠는가. 생각하고, 걱정하고, 욕심내고, 일하고, 말하고, 웃고, 근심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작용을 줄이는 것이 그저 참고 자기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어서는 결코 명랑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다시 잘 생각해보자. ()을 기르고 성()을 기르는 것, 양생과 양성은 오래도록, 잘 살고 싶다는 크고 강렬한 욕망을 선택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다. 줄이고 버리기가 강요된 금욕이기만 해서는 즐거움이 생겨날 수 없다. 명랑해지려면 그것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자기 욕망의 적극적인 실현과정이어야 한다. 금기를 지키는 것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을 구현해갈 수 있다면 소소한 자기 조절에 성공할 때마다 압박감이 아니라 성취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양생과 양성의 비법들이 욕망을 옥죄는 금기가 되느냐, 맞춤한 출구가 되느냐는 각자가 어떤 욕망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묻고 있다. 매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갖가지 자잘한 욕망을 쫒으면서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갈 테냐고. 자기 중심을 잡으면서 생의 의지를 만족스럽게 실현할 방도가 여기에 있다고.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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