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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푸들] 아침놀 4권 : 내가 미워질 땐, 그냥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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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씨 작성일13-08-17 12:18 조회2,78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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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워질 땐, 그냥 자라
 

  인생 최대 위기의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생을 끝장내는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 그 순간은, 다름 아닌 나 스스로 나의 자존을 지키지 못할 때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를 손가락질 할 때조차 ‘나를 품는 내 안의 힘’, 그게 없으면 생 자체를 지킬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401. 가장 위험한 망각.―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잊는 데서 시작해 자기 자신에게서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점점 협소해지다가 결국 자기밖에 남지 않는 세계 안에 갇혀버린 사람. 그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자신을 혐오하며 쓸모없다는 생각만 되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생을 마치려 한다면 니체는 아마 그 어리석음에 혀를 찰 것이다. 그는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리고만 것이다. 세계는 자신 혹은 타인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과 감정들이 만들어지는 양상을 보라.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보라. 여름에 너무 더운 나머지 힘이 하나도 없는 날, 높은 계단 위에 올라가야 하는 신세가 되면 삶은 그 자체로 저주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갔더니, 시원하고 어여쁜 카페가 있다면? 맛난 팥빙수를 먹으며 삶을 축복하게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거기에 더 이상 해석은 덧붙이지 말자―‘저 사람은 인간을 모른다’라는 말이 문맥에 따라 천박함 혹은 비범함으로 해석되는 예처럼(373).
 364. 환경의 선택.―우리는 위엄 있게 침묵을 지키고 우리의 보다 고상한 차원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불만과 욕구, 우리가 겪은 곤경의 역사 전체 외에는 말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환경에서 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자신에게 불만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환경에 불만을 느끼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을 항상 불평가로 느끼게 되는 역겨움을, 우리를 불평하게 만드는 이러한 환경에 덧붙이게 된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에 대해 생각하겠는가! 우리는 자신의 ‘불운’에 대해 말하면서 ‘불행한 아틀라스 같은 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재빨리 장소를 바꿔주는 것! 자신에 대한 연민 혹은 비난에 빠져있을 때, 재빨리 자각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지금 나를 불평하게 만드는 조건을 바꿔야겠다!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곳, 그곳으로 가야겠다! 실제 니체는 건강이 악화되자 강의를 중단하고 제네바로, 제노바로, 질스마리아로, 로마 등지로 거처를 계속 옮겨 날씨도, 숙소도, 만나는 사람들에도 변화를 준다. 이 지리적인 이동이 곧 그의 인생과 사상의 변곡점이 된다. 그 길에서 살로메를 만났으며, 그 길에서 ‘영원회귀’ 사상도 번개처럼 만났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런다고 정말 인생의 고통이 사라질까? 아무리 요리조리 피하려 들어도, 어쨌든 저기서 아픈 몸이 여기서 완전히 회복될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니체는 여기에 인간의 강인한 인내심이 있음을 강조한다.
 
354. 괴로움에 대한 용기.―현재 우리가 그런 것처럼, 우리는 상당히 많은 불쾌를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위는 이 무거운 음식물[불쾌]를 소화하는 데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마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식사 시간을 무미건조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고통을 기꺼이 견디려는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기쁨을 놓칠 것임에 틀림없다!
 
 
  맞다. 외부의 음식물을 받아들여 내 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위(胃)가 있는 한 우리는 고통마저도 기꺼이 소화시킬 수 있다. 생각해보라. 정말이지 가기 싫었던 약속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만나 대활약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 이 정도를 고난이라고 취급할 수 없다면, 다시금 생각해보라.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여러 번의 인생의 고비들.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순간순간들.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희비의 변폭을 넘나들었다. 이것 자체가 인생인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고통을 소화하여 즐거움으로 바꾸는 능력을 터득했던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우리는 문제보다 더 큰 존재다.^^
  그러나 때론 위(胃)에도 병이 날 때가 있다. 먹은 음식이 체하거나 위에 열이 있거나 할 때는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설사를 하거나 토하거나 한다. 고통을 넘길 힘이 없을 때, 나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그대로 소멸될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일까? 니체는 이 절규 앞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큰 손으로 어깨를 뚜덕뚜덕거려준다. 그리곤 피곤해 보인다며 잠을 푹 자두라고 말해준다.
 
376. 많이 자는 것.―피로하고 자신에게 싫증이 났을 경우에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가장 좋은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든 비유적인 의미로든 많이 자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아침을 맞게 될 것이다! 삶의 중요한 지혜는 어떤 의미의 잠이든 적시에 잘 줄 아는 것이다. 
 
 
  이럴 땐 쉬는 것이 약이다. 힘들이 옥신각신하며 다툴 적에 몸이 버텨주지 못하면 ‘몸붕’사태가 생기고 이는 곧 ‘멘붕’사태가 된다. 따라서 적시에 잠을 잘 줄 아는 것, 자신이 쉴 때를 아는 것, 눈을 감고 잠깐 세계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이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니체는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은 진리의 몫일 뿐. 대신 니체는 다시 “굳 모닝!”을 외칠 수 있도록, 언제나 최고의 컨디션으로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모든 지혜를 동원한다. 친구들하고 속상한 얘기하면서 많이 듣던 말인데, 니체가 하면 좀 다르긴 하다. 이런 걸 ‘니체빨’이라고 하나?^^; 아무튼! 만약 괴롭거나 피곤하거나 절망했거나 미움이 싹트거나 했을 때 기분 전환도 먹히지 않는다면, 잠을 푹 자면서 쉬길! 이는 가장 평범하고도 위대한 충고다.
 
댓글목록

나디아님의 댓글

나디아 작성일

이 글 다시 읽으니, 또 새로워요~ㅎㅎ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귀찮아 괴로워하다가, 문득 이게 몸의 문제일수도 있겠다라는
깨달음을 새삼 또 주네용~ㅎㅎ

시연님의 댓글

시연 작성일

고통마저도 소화시킬 수 있는 위장~ 정말 위대한 건강이군.
한 숨 푹자고 그래! 좋아! 다시 한번!을 외쳐보는 거지?
니체의 큰 손바닥을 비비며 함께 할 칭구들이 있어서 좋네요^^
즐거운 후기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