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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푸들 세미나> 아침놀 4부 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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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수 작성일13-08-17 15:04 조회2,5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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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통해 자신을 아는 법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졸렬한지를 말한다.
“나는 그대의 혐오만을 믿을 뿐, 그대가 제시하는 근거들을 믿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을 하나의 이성적인 추론인 양 자신과 상대방에게 제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미화하는 것이다.”(358)
“어떤 사물이나 인간에 대한 열광이나 도취는 논증이 아니며 그것들에 대한 혐오 역시 논증이 아니다.”(372)
“모든 발명에서 본질적인 것을 수행하는 것은 우연이다.”(363)
 인간이 갖는 감정은 항상적이고 고유한 것이 아니고 자신 속에서 힘들 간의 다양한 활동이 특히 타자들의 힘들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힘이란 관계 속에서만 힘의 크기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힘을 강하게 느끼면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행복이 가져오는 첫 번째 효과는 힘의 감정이다. 힘의 감정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가장 흔한 방식은 선물을 주는 것, 조롱하는 것, 파괴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의 공통된 근본 충동에 근거한다.”(356)
 상대를 조롱하는 데에서는 미묘한 힘의 우월을 느낄 수 있고 파괴하는 데서는 압도적인 힘을 느끼며 심지어 선물을 주는 우호적 행위에 조차 그 본색은 우월한 힘의 확인,‘기분이 좋다’라는 힘의 감정을 느낀다.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힘은 각기 다른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
“자신이 약하고 피곤하게 느낄 때야 비로소 증오한다. 다른 때는 공정하고 너그럽다. 다른 사람들은 복수할 가능성을 발견했을 경우에야 비로소 증오한다.”(362)
“자신의 대의를 훌륭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은 적대자에게 화해적인 기분을 갖는데 반해 자신이 능숙하게 자신의 대의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적대자에게 원한과 화해할 수없는 증오를 품는다.”(416)
 자신에게 능력이라는 힘이 있을 때는 너그러운 감정이, 능력이 없을 때는 증오라는 감정에 빠진다. 인간은 기만적 존재다.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투르기 때문에 즉, 배우처럼 능숙하게 감각을 속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진실을 연기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도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수 십 가지의 충동이 단번에 충족되는 기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상대와의 힘의 배팅을 하는 속성은 자신을 관찰할 때도 자신의 감시자를 세워둔다.
“성공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실패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도덕적으로 유약한 성격이 존재한다.”(400)
 이런 지나친 타자의식을 경계하며 말한다.
“자신의 적을 죽이러 가는 사람은 그 때문에 적이 자기 마음속에서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보자.
 자기 감정의 주인이 누구인가? 적인가, 남인가, 나인가! 그리고 타인에 대한 증오심을 품지 말고 자기의 정열에서 떠날 수 있기를 권한다. 자신의 근거를 남에게서 찾지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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