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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 동의보감 <내경편, 신형, 정> 3, 4 조목 : 중요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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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씨 작성일13-08-22 14:18 조회2,8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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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깨달음

 
아! 정말 해보고 싶은 실험이 생겼다. 이는 마치 중세 시대, 마녀가 보글보글 끓는 스프에 괴상한 재료를 넣고 국자를 휘저으며 깔깔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실험이다. 그러나 이 실험을 해보기 위해 당장, 롸잇 나우! 재료 구하는 일부터 혈혈단신 처녀의 몸으로 쉽지 않다. 나의 실험정신(?)을 자극했던 것은 바로 이것. “쏟아낸 정액을 그릇에 담아 소금과 술을 조금 넣고 저어서 하룻밤을 밖에 두면 다시 피가 된다.”(『동의보감』「내경편·정」 3) 남에게 빚지기 싫어하는 강직한 성격의 나로서는 차마 이생에서는 힘든 일인 듯싶다. 그래, 눈 질끈 감고 인정하는 거다. 소금과 술을 준비해 뒀건만, 결정적 재료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는다. 젠장! 소금을 안주삼아 술이나 퍼마셔야지. 대신 님들이 해보고 말씀 좀 해주세요. 킬킬킬.

그럼 나는 지적(성적?) 호기심을 접고 학구적으로다가 이 문제에 접근해야겠다. 사실 위의 문구는 “오장에는 모두 정이 있다[五臟皆有精]”이라는 항목에 배치되어 있다. 그 배치 위에서 다시 저 문구를 건전하게 독해해보잣! 
 
한의학에 갓 입문한 사람에게 정(精)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아마도 신장(腎臟)이라고 대답할 거다. 뭐 그럴 수 있다. 기억해보면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정기신(精氣神)으로 이루어진 신체’라는 새롭고도 기이한 전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나마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의 정체를 밝혀놔야 그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지 않은가. 개중 그나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게 정(精)이다. 그렇담 그것의 소속이 고민이다. 대개 그건 어디에 있을까? 정기신 뿐 아니라 혈, 맥, 오장육부 등 한의학에 얼기설기 배치되어 있는 말들의 사이에 정(精)을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까? 지식을 처음 습득할 땐 일단 확실성이 있어야 뇌리에 팍팍 박힌다. 비대칭적 지성이 일단 세팅이 되는 게 옳다. 하여, 정은 그나마 자신의 ‘나와바리’인 신장 속에 뛰어든다. 누구나 이런 식으로 안정적이고 고요해 보이는 한의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곧 크로마뇽인으로 진화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일대일 대응으로 깔끔하고 명확하게 연결되었던 지식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들은 겉으로는 그런 척 했지만 표 뒤에서는 다른 놈들이랑 눈 맞추고, 손잡고 있기 일쑤다. 지식들은 생각보다 지조도 없고 문란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는 이른바 대칭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었던 것. 『동의보감』은 일처일부제에 똥침을 가한다. 이 침을 쑤욱~ 깊이 있게 맞아야 진화할 수 있다.^^ 자, 다들 준비하시고, 쏘세요!!
 
② 『내경』에서는 “신(腎)은 수(水)를 주관하는 장기로서 오장육부의 정(精)을 받아서 저장한다”라고 하였다. 왕빙(王冰)의 주해에서는 “신장(腎臟)은 모아서 관리하는 곳이지 신장에만 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내경편·정」 3)
 
신장에만 정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럼 대체 내 친구, 정(精)의 집은 어디인가?! 실은 전위적인 실험 이야기의 앞에는 바로 이런 문구가 있었다. “오장이 각각 정(精)을 간직하고 있으나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대개 사람이 성교를 하지 않을 때는 정이 혈맥 속에 녹아 있어 형체가 없다. 그러나 성행위를 하게 되면 성욕의 불기운이 몹시 동하여 온몸을 돌아다니는 피가 명문(命門)에 이르러 정액으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이다.”(『동의보감』「내경편·정」, 3) 옳다쿠나! 하초의 어둡고 음한 신장에 얌전히 담겨, 촉촉하게 찰랑거리는 정(精)만을 상상했는데, 사실 정은 일정량만 맞춰놓고, 서로 로테이션을 하며 온몸을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행여나 이 밀월여행이 걸릴까 싶어, 형색을 바꿔 변장을 한 뒤 혈맥으로 잠입한 발칙함까지 갖추었다. 간혹, 어쩌다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되면, 이들은 재빨리 명문으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그들은 명문을 통과하면서 소금기[水氣]를 벗어 담담하게, 알콜기[火氣]를 날려 음(陰)한 본래면목을 드러내게 된다. 
 
정이 온몸에 있기에 정(精)의 처지가 곧 몸의 건강을 말해준다. 이는 손목의 맥(脈)을 짚어보면 알게 된다.
 
① 『맥경(脈經)』에서는 “남자의 맥이 미약(微弱)하면서 삽(澁)하면 자식이 없을 것인데, 정액이 멀겋고 차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내경편·정」 4)
 
이는 명문이 부실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뜨거운 밤을, 게다가 몸의 화력발전소인 명문을 통과하면서 어찌 정(精)이 멀겋고 찰 수 있는 게야! 비록 명문이 논란이 되는 위치에 있더라도,  손목에 손가락 얹는 우아한 행동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빤하게 알 수 있다. 한의학 입문자에서 어느덧 『동의보감』으로 말재간 좀 부려볼 때가 되었다면, 맥을 통해 좀 더 정(精)의 상황을 상세히 알아볼 때가 되었다.
 
② 『맥결(脈訣)』에서는 “유정(遺精)과 백탁증(白濁證)은 척맥(尺脈)에서 살펴보아야 하는데, 결맥(結脈)·규맥(芤脈)·동맥(動脈)·긴맥(緊脈)은 두 병증을 보여주는 징표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내경편·정」 4)
 
척맥. 이것은 신장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맥이다. 온 몸을 돌아다니는 정의 고향인 신장의 맥의 리듬이 고르지 않고, 일정하지 않으면 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미맥(微脈)과 색맥(濇脈:원활하지 못하고 껄끄러운 맥)일 경우 정이 상했거나 고갈상태임을 알려준다.”(『동의보감』「내경편·정」 4) 내 고등학교 친구 중에 자신이 택견 유단자라면서, 사람들 맥을 짚어주는 친구가 있었다. 이 두 분야가 무슨 상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택견 경력을 자기 지식의 중요한 배경으로 삼았다. 이름도 안 까먹는다. 나선희. 거무튀튀한 얼굴, 부스스한 곱슬 단발머리에 노란색 머리띠를 하고 교정기를 꼈던 친구. 그녀는 늘 남자의 손목만을 잡아채었다. 잠시 눈을 감고 맥을 느끼며, 늘 똑같은 멘트를 날린다. “정력이 너무~ 약해~” 17살 여자애가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게, 강직한 성격의 나로서는 정말이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배 찢어지게 웃었을 뿐.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는 맥의 핵심을 짚은 것이었다! 맥으로 정(精)의 상태만 알아도 온 몸의 상태를 훤히 꿰뚫어 본 것 아니겠는가. 이제 깨달았다. 이제부터 나도 맥을, 정말이지 열심히 짚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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