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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 동의보감 내경편 - 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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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약선생 작성일13-08-22 21:14 조회2,6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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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강의에서 참으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어느 갑부는 평생 사람 젖을 먹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아흔 살 넘게 장수했다고 한다. 이 소리를 들었을 때 강의실은 당연히 “아이구 참 망측하기도 해라”는 분위기. 그런데 그 순간 아마 '통'에 받아놓고 마셨을 거라고 도담 선생님이 사족을 붙인다. 그러자 강의실 분위기가 아연 활기를 띠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사족이 아주 다양한 상상을 불어 넣었을 게다. 어떻게 매번 그 신선한 젖을 공급했을까하는 의문 아닌 의문, 매일 아랫사람들이 통에다 젖을 모아놓고, 그 갑부가 부르면 젖을 넣은 통(젖-통 ㅡ,ㅡ;;)을 대령하는 그 우스꽝스런 모습, 더군다나 젖은 오래되면 굳어서 먹지 못한다는 염려 아닌 염려, 또 젖-통의 모양은 어떤 모양일까, 금으로 만들어 놨을까....갖가지 상상이 사람들 머리 사이로 유쾌하게 떠돌아다닌다. 이 무더운 날, 젖 하나가 일순간 큰 즐거움이 되었다.  

그런데 동의보감氏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인은 항상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 그래서 항상 따뜻하게 보하는 약을 먹고 몸을 추슬러야 한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그 방법으로 ‘된 죽’을 권한다. 그런데 우리의 동의보감氏는 ‘노인보양’ 단락 말미에 ‘사람의 젖과 우유를 늘상 먹으면 가장 좋다(人乳牛乳 常服最佳)’(<의학입문>)고 아주 담담하게 서술해 놓는다. 또한 그 아래에다 별도 항목으로 ‘사람 젖을 먹는 방법’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기까지 했다. 또 아무 젖이나 먹으면 안 되고, 병이 없는 부인의 젖 2잔과 좋은 청주 반잔을 ‘은그릇’이나 ‘돌그릇’(!)에 넣고 끊여 먹어야 한다. 그것도 매일 오경, 그러니까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에 한 번씩 복용해야 한다. 오호 참으로 못말리는 동의보감씨다. 이게 좀 민망하면 우유로 먹어도 된다. ‘된 죽’이 노인보양에 핵심 음식이니, 사람 젖 대신 우유를 가지고 죽을 끓여 먹어도 된다. 우유 1되에 싸라기를 조금 넣고 죽을 푹 쑤어 ‘늘’ 먹으면 노인에게 ‘아주’ 좋다(最宣老人)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오래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원양 전문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주 다른 양생도 있다. 동기(動氣)가 쇠하면 늙는다. 이 동기는 변화를 고무하는 기다. 또 삼초를 훈증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밖으로는 육음(풍한서습조화)의 나쁜 기운(사기)을 막아내고, 안으로는 모든 생각을 담당하여 밤낮 쉬지 않고 돌아 다닌다(外禦六淫, 內當萬慮, 晝夜無停). 하지만 이 놈이 쇠하면 몸의 기운이 뒤집혀, 울 때 눈물이 나오지 않고, 도리어 웃을 때 눈물이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낮에 졸음이 많고, 밤에 누워도 정신이 말똥말똥하여 잠이 오지 않게 된다. 이게 노인의 병이다.

그것은 동기의 힘이 약해져서 육음이 성하게 되고, 생각의 움직임을 통솔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정과 혈이 모두 소모되어 그리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모된 정혈에 맞게 적당히 육음과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갖고 있는 정혈만큼만 생각해야 한다. 만일 그 이상을 쓰거나 구하면 병이 생긴다. 그래서 혜강은 양성이 어려운 이유로 명리, 희로, 성색, 기름진 음식을 바라는 것을 없애지 못하고, 신과 정이 흩어지는 것 이 다섯 가지를 댄다. 중요한 것은 갖고 있는 정혈(에너지)의 적정한 운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착해지기를 바라지 않아도 복이 오고, 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오래 살게 된다(不祈善而有福, 不求壽而自延)”고 단언한다. 결국 오래 살려는 욕심을 버림으로써 오래 사는 것이다. 사람젖을 구하여 오래 살라고 말하는 동의보감씨와는완연히 다른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은 서로 방향이 다른 양생, 양립불가능한 양생을 천연덕스럽게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양립불가능하고 불규칙한 담론들을 한 지평 위에 품고 있는 동의보감이야말로 동의보감을 동의보감답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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