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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 정(精) 때문에 죽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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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진 작성일13-08-28 08:16 조회2,9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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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을 짝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그 여인의 흰 살결만 보아도 정신이 아득해지고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완강한 저항에 손도 한 번 못 잡아보고 애태우기가 벌써 1년 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도인이 그에게 거울 하나를 주고 갔다. 그런데 거울을 들여다보니 자신이 짝사랑하는 그 여인이 요염한 자태로 자신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리와~ 이리와~' 그는 그 즉시 거울 속으로 들어가 그간 못다 푼 한을 담아 한바탕 일을 치르고 돌아왔다. 그렇게 들락거리기를 서너 차례, 이제 그는 더 이상 거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거울을 들 힘이 남아있는 한 남자의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숨이 넘어가기 직전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 한 마디, ‘거울은 가져가게 해줘요!’ "사람들이 달려들어 보니 벌써 숨은 넘어가고 아랫도리는 정액을 잔뜩 쏟아 싸늘하게 질척거리고 있었다" (조설근, 『홍루몽』1권, 나남. 12회 276쪽.).


왕희봉을 짝사랑한 남자, 소설 『홍루몽』 속 ‘가서’의 이야기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 것 같다. 남자들은 이렇게도 죽겠구나. 자기 목숨 끊어지는 지도 모르고 그 일만 하다가 그렇게. 그것은 내가 여지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죽음이었다. 이번에 내가 맡은 『동의보감』 발제 범위는 수많은 ‘가서’들의 이야기다. 욕정을 제어하기 힘들어 흘리고 다니는 남자들. 읽다보니 조금씩 그들의 고충이 전해져오는 것도 같지만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도저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 부분 발제는 아무래도 남자가 했어야했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세미나 남자들은 지난 주에 이미 힘을 너무 많이 썼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가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해보려 하는 수밖에. 그 '정분난' 남자들의 괴로움을 지금부터 따라가 보기로 하자.


우선 내가 맡은 조목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병증은, 이름만 들어도 안타까운 '백음증(白淫證)'이다.

"여자와 관계하지 않고도 정액이 나오거나, 음탕한 말을 듣거나 예쁜 여자를 보거나 생각은 한이 없지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거나 방사를 지나치게 하여 종근이 늘어져서 근위증이 생기면서 정액이 저절로 나오는 것을 '백음(白淫)'이라고 한다." (『동의보감』 내경편, <精>, 12조목. 238쪽.)

그야말로 야한 생각을 조금만 해도 정액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증상인데, 심한 경우에는 귀가 먹고 머리털이 다 빠지기도 한단다. 이러한 증상은 주로 하초에 습열(濕熱)이 많거나 방사(房事)나 수음(手淫)이 지나쳐서 신(腎)이 허(虛)해졌을 때 생긴다. 그래서 이때는 심화(心火)를 내리고 습열을 없애주며 신을 보해주는 약, 즉 사심탕(瀉心湯)이나 가감진주분환(加減珍珠粉丸)과 같은 약을 주로 쓴다. 다만 양기가 ‘충천’한 총각의 경우에는 보하는 약 보다는 청심(淸心)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는, 청심연자음(淸心蓮子飮)과 같은 약을 써야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음증이 꼭 야한 생각이나 성생활을 많이 해서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거다. 무서운 일을 겪고 그것을 풀어주지 않아도 정기(精氣)가 상하고, 정기가 상하면 뼈마디가 몹시 시큰거리고 손발이 여위면서 힘이 없고 싸늘해지며 결국 정액이 저절로 흐르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동의보감』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백음증은 남자 뿐 아니라 여자에게서도 나타난다. 여자의 경우 무서운 일을 겪으면서 정기가 상한다거나 하초에 습열이 많고 성생활을 많이 했을 때 냉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이 또한 백음증의 하나로 본다. 그리고 이때도 습열을 내리고 신을 보해주는 가감진주분환(加減珍珠粉丸)을 주로 쓴다.


한편 『동의보감』은 정을 아끼고 싶은 남자들을 위한 도인법 또한 빠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때를 가리지 않고 정이 흘러내리는 남자들을 위한 치료법 대공개! 우선 첫 번째는 간단하면서도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다. 즉 길이가 짧은 침대나 부들풀로 만든 자리 위에 옆으로 누워 다리를 꼬부리고 잠들게 하는 것. 한 마디로 더 이상 새지 않도록 양 다리로 꽉 묶어두는 방법이랄까 (^^;;). 다른 하나는 더 기괴하다. 밤중에 양물(陽物)이 일어섰을 때(그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지난 시간에 배웠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채 혀끝을 입천장에 닿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허리를 쳐들고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으로 미려혈을 받치고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을 약지 뿌리에 대고 주먹을 쥔다. 또 양쪽 다리를 쭉 펴고 양쪽 발가락 열 개는 모두 세운 다음 숨을 한 번 들이쉬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척주로 해서 뒤통수를 지나 위로 정수리까지 갔다가 천천히 내려와 단전까지 미치도록 한다. 그 다음 허리와 다리, 손발을 조용히 늦추어 놓는다. 만약 위와 같이 다시 하면 양물이 줄어든다. 만일 양물이 줄어들지 않으면 다시 두세 번 더 한다” (『동의보감』 내경편, <精>, 17조목. 244쪽.).


정말이지 곡예가 따로 없다. 이 동작을 하기 위해 집중하게 해서 음란한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 같기도 하다. 하기야 음란한 생각이 뿌리 뽑힐 때까지 이 같은 자세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힘들고 지쳐서라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정(精)을 보하는 데 좋은 단방(單方)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우선 오미자(五味子)는 특히 고약으로 만들어서 수시로 한두 숟갈씩 끓인 물이 타 빈속에 먹으면 남자의 정(精)을 보하고 몽설이나 유정을 치료하는 데 좋다고 한다 (g카페 메뉴에 이 사실을 적어놓으면 왠지 더 잘 팔릴 듯?!^^). 그리고 검정참깨(호마; 胡麻) 역시 정과 골수(骨髓)를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그 밖에 구기자, 산수유, 복분자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므로 패스하기로 하고, 특이한 단방으로는 사마귀알집(상표초; 桑螵蟭)과 누에나방(원잠아; 原蠶), 잠자리(청령; 蜻蛉)뿐만 아니라 누렁이 고기(황구육; 黃狗肉)와 물개의 음경(올눌제; 膃肭臍) 등도 있다. 세상에!


그래도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남자들이 정력 강화를 위해 먹는 비아그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의학을 통해 정(精)이 단순히 정액이 아닌 생명의 근원이라는 걸 배우고 나니 이것들이 왠지 좀 달리 보인다. 하룻밤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다면 조금은 용서가 된달까. 그러고 보면 가서처럼 죽으나 늙어 죽으나 결국 우리는 정(精)이 부족해서 죽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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