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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서당] 삶의 모습 있는 그대로 4강 '자신에게도 닫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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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맨발 작성일13-07-28 15:12 조회2,83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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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이 얼마되지 않는다고 좋아했다가 괴로워했던 부분입니다. 이 책의 중간 부분부터 참여를 해서 그런지 기본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제하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나 새로운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책의 깊이를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4강 '자신에게도 닫힌 마음'은 1. 안팎으로 일어나고 있는 소외, 2. 나하나로 닫힌 삶, 3. 삶을 나누는 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장에서 계속 언급되는 부분은 '번뇌가 일어나는 순간이 바로 지혜로 바뀌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번뇌가 일어나면 '지금까지 해 왔던 방법대로 되풀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하는 것이 '수행'이며 '수행'이란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살피는 것'이라고 합니다.
 
 
 
 (...) 매순간마다 변하는 우리의 삶을 지속적인 것으로 보는데에 갈등과 긴장이 있게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생성과 소멸, 즉 살아있음과 죽음을 함께 보지 않고, 그 가운데 하나만을 취해서 그것만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보면서 긴장과 갈등이 계속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자신과 타인,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운데에서 죽음을 제외하여 스스로 소외된 모양입니다. 자기 자신 속에서 삶과 죽음의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보지 못하고 스스로 닫혀 있는 마음이 됩니다. 이미 스스로 소외되었기 때문에 관계하는 모든 대상이 절대타자로 있게 됩니다. 이 마음은 철저하게 배타적인데 이것을 닫힌 마음, 생멸하는 마음, 생사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정화스님,『삶의 모습 있는 그대로』, 118-119쪽
 
 
 
  소외라는 것은 마음에서 대상을 배척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삶에서 죽음을 제외하는 것이 소외라는 게 저에겐 참 신선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바라보기도 힘든(?)데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대상에게 배타적일 수 있으며, 닫힌 마음이 된다는 것이 좀 버겁기는 했습니다. '밝음만을 의미 있게 보면 어둠은 의미가 없'듯이 '삶을 이중, 삼중, 사중 구조로 만들면서 그 가운데 들어오지 않는 것을 배척하는 마음으로' 살면 '긴장과 갈등을 흐름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갑게도 이 책에서는 우리의 삶은 '부조화 상태인 현실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려'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긴장과 갈등을 해결하려는 마음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긴장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 '눈을 돌리기만 하면 우리의 삶을 그 자체로 보는 힘이 커'지고 '허구적이고 인위적이며 배타적이며 타율적인 삶들이 없어져'가며 '우리의 삶을 생성과 소멸, 그 밖의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과 함게 어우러진 흐름으로 보게'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분별과 불만족이 없고 자신의 마음이 열릴 때를 '지혜'라고 합니다. 와! 이렇게 스스로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는 힘이 내부에 존재한다니요!
 
 
   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고정된 실체로 보려는 힘 때문'이며 이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무명에 휩싸인 내가 옳다고 인정하는 삶[自證分]과 그것을 사회적으로도 인정하는 삶을[證自證分] 살다보면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채 살게 됩니다. 어느 순간 삶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중년이 되어 보니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삶에 대해 관찰하는 힘이 있는 사람은 깨달음으로 가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업의 흐름으로 가서 '이것이 아닌데'하면서 살게 된다'고 합니다.
 
 
    절대화, 구조화, 타자화 등을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길을 팔정도라고 합니다. 팔정도는 '계정혜'로 줄일 수 있습니다.(戒:밖으로 드러난 행동이나 말 등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것/ 定: 생각과 활동이 열린 세계로 가계 하는 드러나지 않는 고요한 힘 /慧:진리를 깨닫는 것) 수행방법으로는 호흡 관찰이 있는데 '숨을 쉴 때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숨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관찰력이 깊어져 '처음 일어나는 순간을 보게 되면, 연속적으로 보이는 것이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일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염처수행' 방법 중 하나이며 위빠사나라고 합니다.
 
 
 
 
   여태껏 갈등과 긴장을 苦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세상은 苦海'라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들 힘든데 뭐..'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苦를 '무상, 무아의 다른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무상과 무아는 나아가야 할 방향인데 그것이 苦라니요. 세미나를 하면서 그것은 무상, 무아가 되도록 흘러보내야 할 것을 잡고서 흘러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고통과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苦를 제대로 바라보고 흘러보내기만 하면 무상, 무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행복과 불행은 동전 양면이라고 하는 것 처럼 苦도 깨달음과 양면이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더불어 고통을 피하지 말고 잘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처음엔 이 곳에 세미나를 정리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하다보니 발제와 또 다르게 정리가 되는 부분이 있네요.
다음 주는 5강 '참으로 열린 삶'을 박화 선생님이 정리해 오기로 하셨습니다. 벌써부터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달집님의 댓글

달집 작성일

벌써부터 염처수행을 하고 계신가! 신기하게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네. 정화스님이... 번뇌가 지혜를 여는 열쇠라는 것. 고가 우리를 해탈하게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특유의 깨는 질문, 혈자리에서 계속되길 지윤에게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