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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 동의보감 신형 내경편 15, 16조목-마음에서 떠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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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씨 작성일13-08-10 19:21 조회2,9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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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떠난 마음
 
 
언제나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깨달음의 말로 세상을 떠돈다. 마음은 생기게도 할 수 있는 것이며 또 없앨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무엇이 남을까? 편안한 ‘마음’이 된다. 헛! 그럼 ‘이 마음’과 ‘그 마음’이 다른 거라는 건가? 대체 비워야 할 마음은 뭐고, 비우고 난 뒤 드러난 마음은 또 뭘까? 『동의보감』을 보면, 어떤 마음은 병이 되고, 또 다른 마음은 약이 된다.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 반드시 그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 수양하는 방법에 의지해야 된다. 즉,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의심과 이런저런 생각, 일체의 망념과 불평, 나와 남을 분간하는 마음을 버리고, 평생의 과오를 참회하여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자기의 생각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되도록 한다. 이렇게 오래하여 마침내 정신이 집중되면 자연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정이 화평해진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공허한 것이고, 종일토록 매달리는 궁리가 모두 헛된 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또 나[我身]라는 것도 다 헛된 환영에 불과하고, 화와 복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생사가 한갓 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홀연히 그 이치를 깨닫고 해석하게 되면 마음은 자연히 청정해지고 질병은 자연히 낫게 된다.
(『동의보감』·「신형」, 16)
 
이 치법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태백진인(太白眞人)이라고 불렸던 사람의 주옥같은 멘트다. 『동의보감』의 기획의도가 집약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병이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수양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의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생각해보면 참 낯선 처방전이다. 그런데 그 방법 또한 지금 우리시대의 ‘힐링’이나 ‘테라피’같은 것과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어떤 센터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뭘 사먹는 것도 아니다. 돈이 들어가는 거 같진 않은데……, 다만 좀 ‘쎄’ 보인다. 즉 의사는 그간 환자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를 산산조각 내줘야 한다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판단, 삶과 죽음의 경계, 심지어 그 생각을 하고 있던 ‘나’조차 의심해야할 지경이다. 한마디로 ‘멘붕’하게 만드는 의사가 명의라는 말이다. 결국 태백진인의 멘트를 뒤집어 보면, 병이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통념 속에서 잉태되는 산물이다. 마음에서 비롯된 병, 통념에서 잉태되는 병. 그렇다면 마음이 통념에 사로잡힐 때 병이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담, 좋은 의사란 이런 것인가? 1단계 :어항에 갇혀 있는 줄도 모르는 물고기에게 어항에 갇혀 있다는 걸 똑똑히 보여준다. 2단계 : 어항을 산산조각 내준다. 3단계 : 사실 처음부터 어항이란 건 없었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뭐, 이런 의사가 다 있나싶다. 몰랐던 걸 굳이 알게 만들고, 자기가 알게 만들어 놓고 이게 다 뻥!이라고 말하다니. 무슨 사기꾼 요술쟁이 같다. 의사는 환자에게 믿음과 불신을 오가게 하면서, 지옥과 천국을 오가게 한다. 거의 환자를 다 죽게 만들다가 간신히 살게 하는데, 놀랍게도 환자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즉 병이 나은 것이다. 혹시 여기에 답이 있는 게 아닐까? 아마도 의사의 깨고 부수는 행동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게다. 오히려 고착화된 마음이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병든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맞다. 마음은 시간을 타고 흐른다. 누구나 어떤 때는 인색해지고, 어떤 때는 관대해진다. 관대하고 넉넉한 마음만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지 않은 마음이 나를 아프게 만든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덕(德)에도 온도가 있다. 즉 ‘차가운 덕과 따뜻한 덕’이 있는 것이다.
 
봄철 석 달을 발진(發陳) 발진 : 발생하는 기운이 왕성해져서 묵은 것을 밀어버리고 새것이 생겨나게 한다는 뜻.
이라고 한다. 이때는 천지간에 생기가 일어나서 만물이 소생하고 번영한다. 따라서 … 마음의 뜻도 활발히 하고 봄철의 기운에 따라 생겨나게 하고 죽이지는 말며, 주기는 하면서 빼앗지는 말며, 북돋아주기는 하되 억눌러서는 안 된다. … 여름철 석 달은 번수(蕃秀) 번수 : 양기가 충만해지고, 초목이 번성한다는 뜻.
라고 한다. 이때는 천지음양의 기가 서로 교차하여 만물이 개화하고 열매가 맺힌다. 따라서 … 기(氣)가 빠져나가게 하여 좋아하는 것이 밖에 있는 듯이 한다. … 가을철 석 달을 용평(容平) 용평 : 가을에 만물을 거두어들여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게 평정한다는 뜻.
이라고 한다. 이때는 천기(天氣)는 쌀쌀해지고 지기(地氣)는 맑아진다. 따라서 … 마음의 뜻을 안정되게 하여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를 부드럽게 하며, 신기(神氣)를 거두어 가을철의 기후에 적응하게 하고,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없게 함으로써 폐기(肺氣)를 맑게 해준다. … 겨울철 석 달을 폐장(閉藏) 폐장 : 겨울철에는 음기가 왕성하여 양기를 땅 속으로 감추어 저장한다는 뜻. 이때는 만물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고 땅 속으로 들어간다.
이라고 한다. 이때는 물이 얼고 땅이 얼어 터지는데, 양기(陽氣)를 요동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 마음의 뜻을 굽힌 듯 숨긴 듯이 하여 사의(私意)가 있는 듯이 또는 이미 얻은 것이 있는 듯이 해야 한다.
(『동의보감』·「신형」, 15)

『동의보감』에서는 사계절의 기운을 타고 흐르는 마음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여기서 마음은 어떤가. 마음은 있다가도 없으며, 안에 있기도 하고 밖에 있기도 한다. 만약 내가 위와 같은 명의를 만나 여기가 어항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마음이 남지 않을까. 거대한 흐름이 속수무책으로 나를 덮칠 것 같다는 공포심 말이다. 그런데 『동의보감』을 보면 이 흐름에도 패턴이 있다. 즉 사계절이라는 우주의 리듬이 바로 그것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만물이 들고 나고, 우리의 마음 역시 그 흐름을 타면 된다. 만약 이 흐름을 어기면? 그에 따른 응징(?)이 따른다. 그 역시 하나의 응징이 아니라 철마다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그 여파는 다음 계절까지 간다. 봄에 봄의 마음을 쓰지 않으면 간이 상하고 여름에 한병(寒病)을 얻고, 여름에 여름의 마음을 쓰지 않으면 심(心)이 상하고 가을에 학질이 걸린다. 가을과 겨울 역시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이 리듬을 모르면 일 년 내내, 아니 평생~~ 몸을 병에 바치게 된다. 병이 무지에서 온다는 게 바로 이 말이다. 양생(養生)은 이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생(生)을 기르는 것[養]. 나무 기르듯, 철에 따라 마음도 잘 길러야 한다는 말씀! 붙들고 있는 하나의 마음을 떠나, 이 규칙을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우주라는 바다를 노니는 물고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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