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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뭄세미나] <상한잡병론> 서문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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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약선생 작성일13-06-18 20:24 조회3,7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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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상한잡병론>의 서문 전문입니다. 너무 너무 훌륭한 글입니다. 장중경은 치료만 잘한게 아니라 글도 잘 썼던가 봅니다. 세미나원들이 이 글 전문을 써서 올리라 하셔서 씨앗문장으론 좀 길지만 올려봅니다. 뭐 읽기에는 그리 부담없으니 한번 감상해 보세요~
나는 진월인(편작)이 괵나라 태자의 병을 치료한 것이나 제 환후의 병을 망색으로 판단한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의 뛰어난 재능에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요즘 의사들은 의약에 정신을 두고 방술을 정밀하게 탐구하여, 위로는 임금과 양친의 병을 치료하고 아래로는 빈천한 사람들의 불행을 구제하며 가운데로는 일신을 같이 온전하게 지킴으로써 그 생명을 기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나 권세만을 앞 다투어 쫓고 권세가나 부호들을 발꿈치 세워서 바라보며 바쁘고 힘쓰는 것은 오직 명리뿐이다. 말단을 높이고 장식하면서 근본을 소홀히 하여 버리니 밖은 화려하게 하고서 내부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살갗도 없는데 털이 장차 어디에 붙으랴! 그러다 갑자기 사풍의 기를 만나고 심각한 병에 걸려 질병과 재앙이 이르게 되면 비로소 벌벌 떨며 뜻을 낮추고 절개를 굽혀 무당들을 우러러 바라보다가 수명이 다하였음을 고하고 하늘로 돌아감에 꼼짝 못하고 죽게 된다. 백년의 수명을 타고나 지극히 귀한 보배와 같은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평범한 의사에게 몸을 맡겨 마음대로 하게끔 놔두는구나.
아 슬프고 슬프도다! 그 몸은 이미 죽고 신명은 소멸하여 이물로 변화되어 구천에 잠겼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저 울기만 하는구나. 애통하도다! 온 세상이 혼미하여 전혀 깨닫지 못하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여 이처럼 생명을 가벼이 여기니, 그것을 어찌 영화와 권세라고 말하겠는가. 그리고 나아가서는 남을 사랑하지도 알지도 못하고 물러나서는 자신을 사랑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재화를 만나 몸이 궁지에 빠졌으면서도 어리석기 짝이 없어 굼뜨기가 구천을 떠도는 영혼 같구나. 슬프도다! 속세로만 달려가는 선비들이여. 공중에 뜬 영화에 치달으면서 근본을 확고히 하지 아니하고 몸을 잊은 채 외물을 따라가니 위태롭기가 얼음 얼은 계곡을 건너는 것과 같구나.
내 종족도 본래 많아 전에는 2백 명이 넘었다. 건안 원년 이후로 채 10년도 못 돼 죽은 사람이 3분의 2나 되며 그중 상한에 걸린 이가 열에 일곱을 차지했다. 지난번 종족의 죽음을 통감하고 횡액을 구하지 못한 데 상심하여, 이에 옛적 교훈을 부지런히 찾고 여러 처방을 널리 수집하며 <소문> <구권> <팔십일난> <음양대론> <태려약록> 및 평맥변증을 종합하여 <상한잡병론> 16권을 만들었다. 비록 모든 병을 다 낫게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병을 보면 근원을 알아낼 수 있다. 만약 내가 수집한 것을 잘 살핀다면 반 이상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오행을 펼쳐 만물을 운행하고 사람은 오상을 타고나 오장이 있다. 경락과 부유를 통해 음양이 만나고 소통하니 깊고 그윽하며 미세하고 변화가 무쌍하다. 본디 재주가 뛰어나고 학식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그 이치를 탐색할 수 있겠는가! 상고에는 신농, 황제, 기백, 백고, 뇌공, 소유, 소사, 중문이 있었고, 중세에는 장상군, 편작이 있었으며, 한나라 때는 공승인 양경과 창공이 있었는데, 이 아래로 내려가서는 아직 듣지 못했다.
지금의 의사를 보면, 경전의 뜻을 찾아내어 알고 있는 것을 미루어 생각하지 아니하고 각기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기술만을 전승하여 시종 옛것만을 따른다. 질병을 살피고 묻는 데 있어서 말만 그럴듯하게 하려고 힘쓰고, 잠깐 환자를 상대하고서 곧 탕약을 처방하고, 맥을 짚을 때도 촌은 짚으나 척까지는 짚지 않고, 손을 잡되 발까지는 미치지 않고, 인영맥, 부양맥, 삼부도 참고하지 않고, 맥박 수도 50회도 뛰기 전에 일찌감치 제멋대로 진단을 내리고, 구후는 일찍이 비슷한 게 없고, 명당(코)와 궐정마저 다 살피지 않으니, 이른바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것일 따름이다. 무릇 죽은 것을 보고 살아 있음을 구별하고자 함은 실로 어렵다.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최상이요 배워서 아는 것은 그 다음이라 했으니, 많이 듣고 널리 아는  것은 앎의 두 번째 단계이다. 내가 오랫동안 방술을 숭상했으므로 평생 이 말씀을 따르고자 한다.


장중경이 살았던 시대(동한 말년 서기 150년 ~ 219년)에는 전쟁과 천재지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생산력과 생활수준은 자연히 저하되고, 더불어 사람들의 저항력도 약화되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전염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죽지 않은 사람마저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끈다. 개체의 힘을 극도로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서에서는 “당시 백성들이 전쟁 때문에 죽지 않으면 질병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 또 “광활한 중원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이 벌어져 곳곳에 백골이 널려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장중경은 스스로 말하길 자신의 가족이 200명이 넘을 정도로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과 천재지변이 계속되자 10년도 되지 않아 2/3가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끔직한 죽음과 아픔이 곳곳을 휩쓸고 있었다. 이런 때 장중경은 “선인들이 남긴 의서의 이론을 깊이 연구하고...경험과 처방을 널리 수집”한다. 이때 참고한 의서들이 바로 <소문(素問)>, <구권(九券)>(후에 ‘영추(靈樞)’로 이름이 바뀌는데, 이 두 책이 바로 <황제내경>의 양대 편명이다)같은 것들이다. 또한 <팔십일난>(편작이 지었다는 <난경>으로 지금도 전해짐)도 있다. 아울러 <음양대론>, <태려약록>(산부인과, 소아과, 약물치료)도 있다. 드디어 그는 이런 대량의 고대 서적을 참고하고 자신의 경험과 실천을 통해 <상한잡병론> 16권을 완성한다. 위의 글이 바로 이 책의 서문이다. 이 책은 최초로 저자의 이름을 밝혔고, 개인적인 집필 동기를 그 서문에 실었다. 야마다 게이지 같은 사람은 이를 <난경>과 함께 의학의 개인화 시대가 도래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화염이 가득한 곳에서 탄생한 책이어선지, <상한잡병론>은 당대 의사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장중경이 보기에 당대 의사들은 명리에만 탐닉하고 있다. 그래서 '밖'만 번지르르하고 '안'은 초라한 의사가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럴듯한 말만 할뿐, 진짜 병은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사들만 있으면 "살갗이 없는 곳에 털을 붙이려 하는" 꼴이라고 장중경은 조롱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와서 장중경은 아주 기이한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역설적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영화와 권세의 입장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권세와 영화를 추구하지만, 역설적으로 권세와 영화와 멀어진다. 생명이 위태로운데, 어찌 영화롭다, 권세가 있다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장중경은 이렇게 말한다. “나아가서는 남을 사랑하지도 알지도 못하고 물러나서는 자신을 사랑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이쯤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것은 나와 남을 사랑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나를 사랑하고 알려고 한다면 우선 생명을 알고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뚯이다. 바로 사랑하고 아는 것이란 생명을 존중하는 것과 다름없다. 구체적이고 개체적인 생명과정이야말로 매우 중대한 앎의 대상이 된 듯하다. 특히 그에게 "병의 전변과정"은 개체의 생명과정을 독특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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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경이 <상한잡병론>을 저술할 당시 고대 의학계에서는 병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였다. 하나는 외부에서 온 발병 요인으로 풍, 한, 서, 습, 조, 화의 사기를 들 수 있다. 여기에 전염성 발병 요소가 만들어낸 병증을 포함해 ‘상한’이라고 부른다. 이 병증을 제외한 나머지, 칠정육욕(七情六欲)이나 음식의 부조화가 일으킨 병증 등을 ‘잡병’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상한과 잡병은 당시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병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래서 책 제목 <상한잡병론>은 이 세상 모든 병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중경은 이 두 병의 치료에 모두 능했다. 특히 장중경의 '개체화 치료법'(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부르고 있지만, 나는 명칭을 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은 현재  ‘변증론치’로 불린다. 여기서 ‘증’은 환자의 복통, 기침 같은 증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변증론치란 의사가 환자의 증상, 체징, 설태, 맥상(맥의 상태) 등을 종합한 연후에 분석하는 것이다. 즉, 병리 변화가 어디서 일어났는지, 오장인지 육부인지, 오장 중 어디인지, 어느 부위인지 등을 분석한다. 병의 부위를 분석한 뒤에는 다시 그것의 성질, 찬지 더운지를 분석하고, 또 정기와 사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여기서 ‘정기’는 개인의 생리 활동 능력(특히 소화계통 기능), 병에 저항하는 능력, 병에 걸린 이후의 회복 능력 등을 통칭한다. ‘사기’는 병을 일으키는 모든 요소를 가리킨다. 외부에서 왔든지 내부에서 생겼든지 상관없이 모두 다 사기라고 부른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만일 다른 사람, 다른 단계, 다른 임상 결과라면 다른 처방을 내린다. 거꾸로 ‘이병동치(異病同治)’, 즉 다른 병이지만 같은 방법, 심지어 같은 처방을 내려서 치료할 수도 있다. 

장중경은 이런 변증의 엄밀함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치료 방법론을 체계화하고 있다. 그전까지 경험적인 사실들로서만 고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것들을 문서화하고 프로세스화한 것이다. 맥을 짚을 때도 촌뿐 아니라 척까지 짚어야 하며, 손만 잡으면 안되고 발까지 잡아야 하고, 인영맥, 부양맥, 삼부도 빠짐없이 참고하여야 하고, 맥박 수도 세밀히 관찰해야 하며, 구후, 명당(코), 궐정 등등 모두 다 살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병리 변화가 어디에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부위가 정확히 어딘지 알아낸 후에 한열 상태를 파악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정기와 사기가 어떤 식으로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 바로 그런 사실들을 알아내고 처방을 내는 프로세스를 변증론치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중경의 변증론치는 <황제내경> 이래 구성되어 온 한의학 이론에다 실제적 치료 방법론을 보강해줌으로써, 동아시아 의학을 비약적으로 고도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장중경의 변증론치는 한의학에 찾아온 최초의 하이라이트이다. 전쟁과 천재지변이 만든 독특하고 아름다운 절정의 사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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