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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푸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및 최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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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수 작성일13-05-06 19:01 조회3,620회 댓글4건

본문

오늘날 소심하기 짝이 없는 자들은 묻는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유일한 자이자 첫 번째 사람으로서 묻는 바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은 극복될 수 있을까?”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이여, 이 왜소한 덕을, 이 잔꾀를, 이 모래알같은 배려를, 이 개미떼같은 잡동사니를, 이 측은한 안일을, 이 “절대다수의 행복”이라는 것을 극복하라!
고분고분하기보다는 차라리 절망하라
 어떻게 하면 사람은 극복될 수 있을 까는 이 책의 화두입니다. 왜소하고 병든 인간의 최소한의 삶이 아니라 건강해지고 고양된 덕을 가지고 깊고 높은 영혼을 갖는 최대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외부의 가치를 내려놓고 왜소해지려는 자신을 몰락시키는 끊임없는 자기극복을 욕망해야합니다. 이런 열정이 넘치고 영감으로 가득찬 그의 글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앙드레 지드의『지상의 양식』에서 나온 다음 글은 어쩌면 니체를 많이 닮아있습니다.
-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전에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정열이 나의 사후까지 살아 남아서 나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내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것을 이 땅 위에서 털어놓고 나서 더
바랄 것 없는 완전한 절망 속에 죽기를 나는 희망한다.-
 
“완전의 경지에 이른 것, 무르익은 모든 것은 죽기를 바라지!” 네가 하는 말이다. 복되고 복되도다, 가지치기 가위여! 그와 달리 설익은 것들은 하나같이 살아남기를 바라지. 서글픈 일이다!
비애는 말한다.“사라져라! 가라, 너 비애여!” 하지만 고뇌하고 있는 단상자는 한결같이 살아남기를 바라지. 성숙해져 기쁨을 맛보고 연모의 정을 누려보았으면 해서.
 우리는 차라투스트라의 어투에 반하곤 했습니다. 다가오자 말라! 다가오자 말라! 나, 네게는 너무도 깨끗하니... 등의 자기도취적 표현이며 사라져라(꺼져라)! 가라! 등의 직설적 언사로 통쾌하게 상대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데서 카타르시스까지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니체만이 해줄 수있는 선물이라 여기며 문장하나하나에 꽂혀 암기하고 싶어졌고 반복해서 읽고싶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이 가능한가. 그러니 그대들 자신을 뛰어넘어 웃는 법을 배워라. 그대 멋진 춤꾼들이여, 활짝, 더욱 활짝 가슴을 펴라. 건강한 웃음을 잊지 말라!
 진지하고 심오한 것은 늘 무거워야 하는 걸가요? 심오한 니체의 철학책을 읽으며 우리는 무겁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우리를 누르고 있는 가치와 진리체계의 허위성을 깨는 통렬한 문장에서 마음이 참 가벼워졌고 의식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삶이 가벼워지고 밝아지는 것도 느꼈고 삶의 의욕이 생기면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이 책에 감사하며 함께 세미나를 나눈 니푸들 동료와도 행복감을 나눕니다.
 
장장 3개월에 걸쳐 만났던 차라투스트라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좋다! 사자는 이미 여기 와 있으며 내 아이들도 가까이에 와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성숙해졌다. 나의 때가 온 것이다.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의 시작이다. 솟아올라라, 솟아올라라, 너, 위대한 정오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의 동굴을 떠났다. 컴컴한 산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불타는 모습으로 늠름하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끝
 차라투스트라는 떠났습니다. 이제 저희도 책을 덮을 때입니다. 처음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그가 아주 낯설었는데 그를 보내는 지금은 우리들도 반쯤은 차라투스트라가 된 듯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떠나는 심정이 됩니다. 이 작품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니체팬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벌써부터 니체의 다른 모습을 만날 것에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쓰다보니 아침이슬 노래가사가 오버랩되네요.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로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이제 가노라~
댓글목록

poong님의 댓글

poong 작성일

자기극복의 삶을 위해 밤길을 더듬어 모이신 존경하는 학인 여러분들~~  저는 공부라는 허울 속에 내가 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항상 되묻게 됩니다. 멀리 있는 타인(예를 들면, 니체)보다 가까이 있는 타인(예를 들면, 가족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더욱 어려운 이유는 뭘까요? 니체, 푸코, 베르그송...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애를 쓰면서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ㅠ.ㅜ  공부를 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사실이겠지요. 니체를 통해서 고양된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고양시키는 공부로 이어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5분마다 웃음이 터진다는 니푸들세미나에 참석 못하는 아쉬운 마음에 씨앗문장이나마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다음 책도 기대됩니다~~

시연님의 댓글

시연 댓글의 댓글 작성일

풍쌤~~~ 저는 쌤의 댓글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이 댓글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무슨 의미일까?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알아내지는 못했고요(생각이짧아서^^;; )하지만 바로 옆사람을 이해할 수도 없는 공부라면, 그정도의 공부라면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대해서 저도 고민 좀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니체나 푸코, 베르그송을 이해하는 것과 내 옆의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니체를 만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신념이 얼마나 만들어진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고요, 그 과정에서 내가 아닌 니체의 시선으로(물론 그것도 내가 만난 니체이겠지만요)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었어요. 니체와 함께 하는 동안 제게 타자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제 자신조차요.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을 허물 수 있었고(?혹은허물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그 만큼 '나의 옳음'을 주장하지 않게 되는 것. 혹은 옳고 그름 대신 나의 좋음과 싫음, 나의 미감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만큼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고, 그러면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그러면 결국 모든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들었답니다.^^ 쌤의 정성스런 댓글보면서 언제나 많이 배우고있어요~캄사캄사

송씨님의 댓글

송씨 작성일

진짜 대장정이었는데, 역시 샘이 마무리 씨앗문장까지 멋지게 써주셨네요.^^ 니체, 짜라를 만나면서 그동안 내가 감동받았던 것들, 추구해 나갔던 것들의 근원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이 사람이 여기까지 갔었구나! 산에 있는 짜라를 통해 높이를 봤다면, 이제 <아침놀> 땅굴 속에 있는 니체로 깊이를 만나요! 정리 잘 해주셔서 저도 기쁘네요^^

시연님의 댓글

시연 작성일

앗~~드뎌~~기다리던 니푸들 씨앗문장이 올라왔네요. 니체와 아침이슬을 이렇게 묘하게 만나게 해주시다니~~~ 그래서 우리는 다음에 아침놀을 읽는건가요@@ㅎㅎㅎ
씨앗문장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드렸던 "꺼져라, 아니면 배워라!!"가 우리 임수쌤과 만나면 이렇게 부드러워지는군요.(이 문장이 어떻게 쓰여졌을까 궁금해서 씨앗문장을 더욱 애타게 기다렸다눈!!ㅋㅋ)짜라를 만나 촉발된 세포들이 아침놀을 만나면 어떻게 변형될지 벌써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만나봐요~~~"그럼 금욜날 만나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