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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푸 세미나> 언표행위적 양태들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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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우 작성일13-05-23 10:16 조회3,03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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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푸코는 언설이 나타나는데, 상호간의 어떤 얽힘과 필연성이 있어서, 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들로 나타나는 것인지 보고자 한다. 이 다양한 언표들의 행위의 법칙, 그리고 이들이 나타나는 바의 장소를 찾는다.
 
1)첫번째 물음; 누가 말하는가? 모든 말하는 개인들의 집합 속에서 이런 종류의 언어를 취할 수 있는 地位status를 부여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의사의 지위는 사회와 문명에서 단일하고, 법률적으로 정의된 인물이다. 18-19세기 대중들의 건강이 공업사회에서 요구되는 경제 규범들중 하나가 되었을 때, 이 지위가 또한 수정된다.
2)이 언설이 그로부터 그의 합법적인 시원과 적용점을 발견해 내는 제도적 정립을 기술해야 한다. 이러한 장소들은 임상의학에서는 병원, 사적인 실천, 실험실, 도서관, 통계학적 정보들의 무더기를 포함한 장소들이다. 병에 관한 언설에서의 협력기관에 불과했던, 그리고 중요성이나 가치의 측면에서나, 사적인 실천에 양도했던 병원은 체계적이고 등질적인 관찰들, 넓은 계단에서의 대조, 주기와 확률의 수립, 개인적인 편차제거의 장소, 요컨대 병의 출현 장소가 된다.
3)주체의 지위는 그가 다양한 영역들이나 대상들의 집단과 관련해서 처할 수 있는 狀況situation에 의해 정의된다.
임상의학적 언설에서 의사가 질문자, 통합점, 실험실의 기술자로서 존재하게 되었다면 이는 관계들의 다발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임상의학은 , 의학적 언설에 있어서의, 일련의 근본적인 요소들-일부는 의사의 지위에 관계되고, 일부는 그가 그 안에서 말하는 바의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장소에 관계되고, 일부는 자각하는, 기술하는, 교육하는 주체로서의 그의 위치에 관계되는-의 관계맺음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이한 요소들의 이 관계맺음은 (그중 어떤 것들은 새로운 것이고, 어떤 것들은 이미 존재했던) 임상의학적 언설에 의해 실행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들의 체계를 수립하는 것은 실천인 한에서의 언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언설이 통일성을 지닌다면 이는 그것이 이 관계들의 다발을 일정한 방식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언급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언표행위의 다양한 양태들을 주체의 통일성에 연관지우지 않는다. -그것이 합리성을 정초지우는 순수한 심급으로서의 주체이건, 종합의 경험적으로의 주체이든
 
지금까지 진행된 분석에서 언표행위들의 다양한 양태들은 <한>주체의 <그>종합이나 <그>통일하는 기능과 연관되는 대신, 그의 분산(分散)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분석은 이 양태들을 주체가 언설을 취할 때 그것이 차지할 수 있는 부여받을 수 있는 다양한 지위들, 다양한 장소들, 다양한 위치들에 연관 지었다. 결국 우리는 그들을 주체가 그 곳에서 말하는 바의 평면들의 불연속성에 연관 지은 것이다. 그리고 이 평면 들이 관계들의 체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해도, 이 체계는 자기 동일 적인, 말 없는 그리고 모든 파롤에 선행하는 의식의 종합활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言說的 實踐의 특이성에 의해 수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설 속에서 表現이라는 현상을 읽어내기를 거부한다.우리는 언설 속에서 차라리 주체성의 다양한 위치들을 위한 규칙성의 場을 찾아낼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언설이란 사유하는 , 인식하는, (그 언설을) 말하는 주체의 현시가 아니다.; 반대로 언설이란 주체의 분산및 스스로와의 불연속이 그 안에서 규정될 수 있는 집합인 것이다.그것은 구분적인 장소들의 망이 펼쳐지는 外存性의 空間이다. 앞의 절에서 우리는 한 언설적 형성에 고유한 대상들의 규범을 정의해야하는 것은 <말>에 의해서도, <사물>에 의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지적했다.마찬가지로 이제 언표행위의 규범을 정의해야하는 것은 초험적인 주체에의 호소에 의해서도, 심리학적인 주체성에의 호소에 의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이제야 눈꼽만큼 책이 읽히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이해했다고는 말 할 수 없겠지요.
푸코 세미나를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나갈 즈음, 오늘 첫 뒷 풀이를 가졌습니다. 푸코가 말하는 불연속점이 동양 사유와 어찌 연결되는지, 주역의 삼효와 사효를 가지고 약샘이 열강의를 펼치셨습니다. ‘금화교역’처럼,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갈 때 생기는 어려움처럼, 공부하다 어느 날, ‘돈오’처럼 불연속지점을 갑자기 깨닫기를 다 같이 기대하였습니다.
댓글목록

약선생님의 댓글

약선생 작성일

불연속이라는 말이 이제 너무 좋아졌습니다. 오히려 불연속이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우리도 이제 감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계속 읽다보면 언젠가 돈오 하겠지요!